하고 싶은 말을 전달하는 방법
영화 랑종을 봤습니다. 코로나 이후 뜸했던 극장 나들이를 지난주에는 블랙위도우, 어제는 랑종이었습니다. 스크린을 세팅해서 본 넷플릭스 2편을 포함하면 이번 주는 3편의 스릴러와 함께 한 셈입니다. 넷플릭스에서의 선택은 메이헴과 8요일의 밤이었습니다
부산 롯데백화점 본점에서 혼영을 위해 도착한 상영관은 랑종 크레딧이 올라가는 상황이었고, 상영관에는 맨 먼저 들어가게 됐습니다. 10분 정도를 혼자 앉아있었는데, 공포영화를 보기 위한 최적의 상황이었습니다.
나중에 들어오던 아가씨들한테는 괜히 미안해지네요. 극장 안에 아무도 없는 줄 알았다가 시커먼 옷을 입은 아저씨 혼자 앉아있는 모습은 아마 예상외였을 거라 생각합니다.
영화는 기대보다는 의외였고, 끝나자마자 후기를 찾아봐야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2시간 남짓의 영화를 본다는 경험은 오로지 '재미'라고 생각합니다. 장르적 다양함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두운 공간에서 진행되는 완전히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고, 나오면서 재미있었다는 경험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나치게 복잡하거나 어려운 영화는 저에게는 불친절한 영화이고, 영화를 전달하고자 하는 감독과 소통을 하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내공이 높아서 어떤 어려운 영화나 심오한 주제를 전달하는 것을 기가 막히게 알아듣는 사람들한테는 예외일 거라고 생각하지만 말입니다.
영화는 감독의 놀음입니다. 이번 영화에서 나홍진 감독은 제작이라고 한 발 뒤로 빠져있지만 충분히 영향을 미쳤을 거라 생각합니다. 디자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디자인을 하는 디자이너들의 놀음입니다. 영화감독 역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존재하고, 제작에도 다양한 전문가들이 함께 합니다. 디자인도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함께 합니다. 그러나 영화의 최종 책임은 감독이고, 디자인의 최종 책임은 디자이너입니다.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관객이 바로 이해 못한다고 하면, 그건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복선이나 영화적 장치들을 여기저기 숨겨놓고, 전문가들을 통해서 비로소 드러나고, 혹은 열린 결말이라고 하는 다소 무책임한 결론을 지음으로써 많은 의견들이 난무하는 것을 즐기는 것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영화나 디자인이나 특정한 대상, 혹은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기도 합니다. 표현을 잘해서 영화나 디자인에서 하고자 하는 주제나 의도를 관객이나 수요자가 바로 알아차리고 공감을 하면 제일 좋지만, 어떤 의도나 기획은 겉으로 바로 드러나지 않고 복선을 두기도 합니다. 나중에 알아차릴 때는 더 큰 감동으로 다가올 수도 있습니다. 이른바 반전 영화들이 그랬었고, 나이트 샤말란 감독은 그 분야의 대가로 불렸습니다. 전성기 이후 제작한 그의 영화에는 숨겨진 반전 의도보다는 감독의 강박증이 보이는 듯하기도 했습니다.
감독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관객이 바로 알아차리면 자존심 상하는 일일까요? 2시간 남짓 집중되는 그 시간 동안 감독의 의도를 숨기고 비유하고, 그 비유와 숨김이 어렵고 복잡할수록 명장 같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상업영화를 하지만 사람들에게 온갖 결론과 복선에 대한 이슈를 이끌어내어야 한다는 강박은 없을까 생각합니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테넷 역시 너무나 어려운 이야기는 보통 사람들은 서너 번을 봐도 이해를 못합니다. 대중예술을 하는 사람으로서 어느 정도의 선이 적절할까 생각해봅니다.
디자인 역시 난해한 결과물들을 자주 접합니다. 예술과 디자인의 경계가 모호한 패션이나 공예 등에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순수 예술작가와 디자이너가 혼용되어서, 특정분야의 사전 지식이나 공감이 없이는 일반인의 시각에서는 그냥 괴랄한 결과물일 뿐입니다. 효과적인 전달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 스킬을 익히고, 표현방법을 통해 수요자와 공감하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반면, 영화 같은 분야에서는 소위 '예술영화'라고 불리는 아주 주관적인 영화가 존재합니다. 어떤 이들에게는 이런 종류의 영화가 장르적으로는 가치가 있다고 판단합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영화나 미술이나 평론가라는 직업의 존재가 불필요하면서도 어떤 면에서는 필요한 메신저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반드시 평론가 같은 메신저의 친절한 해석이 곁들여져야 하는 결과물과, 그런 것 없이 기본적인 공감은 가능한 결과물 중에서 누구의 손을 들어줄 수 있을까요. 개인적으로는 후자 쪽에 마음이 갑니다. 디자인도 마찬가지입니다. 특정한 대상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선에서는 사용성, 미학적 쾌감 등은 즉각적으로 전달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아무리 심오한 철학을 담고 있거나 깊은 통찰을 다양한 방법으로 숨겨놓아서, 전문적인 식견을 가진 평론가들이 봐야 그 의미를 발견하고 전달할 수 있다면 대중산업분야인 '디자인'에서는 불친절한 디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평론가들도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니 참 삶이 불편할 거라 생각합니다. 본인들한테는 보일 테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음식평론가들도 참 힘들 것 같습니다. 대충 간만 맞으면 다 맛있는 저에 비해서는 얼마나 삶이 힘들까요. 입에 넣는 순간 본능적으로 분석이 되어버린다면, 그런 삶도 다른 곳에서 행복을 반드시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랑종은 맛있게 매운맛을 기대했는데, 그럴듯하게 포장된 밍밍한(?) 일 회용 캡사이신 희석액만 먹은 기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