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소 야채다지기
낚시는 손맛이라고 한다.
다른 사람 말처럼 쓴 이유는 내가 낚시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부산에 살아도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어릴 때 생선을 좋아하지 않은 이유도 있겠지만 아무튼 그렇다. 그러다가 10여 년 전에 디자인 기업모임에 참여하게 됐는데, 낚시를 체험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단순 체험으로 한 시간 정도 작은 간이낚싯대(이름을 정확히 모르겠다)로 미끼를 끼워서 바다에 던졌는데, 초짜 강태공에게 작은 고등어 한 마리가 걸렸다. 건지고 보니, 손바닥 정도되는 크기였는데 나름 파닥거리는 손맛(?)을 느낄 수 있었다. 아, 이래서 낚시에서 손맛이라고 하는구나라고 생각했지만 그때뿐이었다. 여전히 낚시는 나하고의 거리를 허락하지 않았다.
요리까지는 아니지만 가끔 음식을 한다.
그러다 보니, 야채는 자주 등장하는 음식재료다. 파, 양파, 마늘, 당근, 무, 버섯등을 만나게 된다. 보통 요리를 위해서는 야채를 다지는 일이 많다. 번거로운 일이다. 그래서, 손질된 비싼 야채들이 있나 보다. 세상에는 다양한 요리도구가 있는데, 오로지 다지기만을 위한 것도 많다. 이 중에서 내가 만나게 된 것은 다이소 야채다지기다. 이 제품은 방식에 따라 당기는 핸들형과 누르는 푸시형 2가지가 있는데, 나의 추천 픽은 핸들형 야채다지기였다. 크기도 2가지인데 큰 것은 5,000원, 작은 것은 3,000원이다. 확신이 없을 때는 작은 예산을 쓰는 것이 답이다. 야채가 다져지는 원리는 간단하다. 야채를 안에 넣고, 뚜껑을 닫은 뒤, 뚜껑과 실로 연결되어 있는 손잡이를 뒤로 당기면 연결된 내부의 칼날이 회전하면서 야채를 다지는 방식이다.
제품의 첫인상은 도통 신뢰가 가지 않는다.
문방구에서 파는 애들 장난감같이 생겨먹었다. 이게 제대로 작동이나 하겠나 싶다. 아무것도 넣지 않은 상태에서 손잡이를 당겨보면 잘 움직이는 것 같기는 하다. 혹시 잘 안되면 3,000원은 떡 사 먹은 거다. (이런 경우 왜 떡을 사 먹었다고 할까). 좋은 시도였다고 퉁칠 수 있을 정도의 가격대다. 이게 모르는 제품을 부담감 적게 도전해 볼 수 있는 다이소만의 장점이다.
아무튼, 준비를 해본다.
뚜껑을 열고, 3중 칼날을 투명한 몸체 바닥에 살짝 튀어나온 돌출부에 꽂고, 야채를 넣은 다음 뚜껑을 닫으면 스탠바이가 끝난다. 당기기만 하면 된다. 두근거리는 기대감으로 줄을 당겨보자. 아마 처음에는 칼날에 야채가 턱턱 하고 걸린다. 그걸 무시하면서 끝까지 당겼다가 살짝 놓으면 줄은 다시 말려들어간다. 처음엔 힘들게 당기던 줄이 점점 부드럽게 움직인다. 그에 따라 제품 내부에 있는 3중 칼날의 회전이 느껴진다. 당길수록 야채는 작게 부서지고, 점점 더 쉽게 잘려나가는 손맛이 살아난다. 쾌감이다. 손으로 느껴지는 쾌감. 그리고, 비로소 아무것도 걸리지 않고 당겨진다면, 이제 뚜껑을 열어보고 감탄을 하면 된다.
다져지는 것에는 지위고하가 없다.
단단한 당근부터 낭창거리는 김치까지 다양하다. 만약 김치볶음밥을 한다면 햄을 김치와 함께 넣어보자. 일타쌍피의 효율을 경험할 수 있다. 알량한 나의 의심으로 큰 야채다지기를 사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비슷한 역할을 하는 믹서기의 경우에는 뭔가 내가 관여하는 느낌이 적다. 재료를 넣고 버튼만 누르면, 요란한 소리와 함께 오로지 믹서기 혼자 처음부터 끝까지 일한다. 그렇지만, 이 작은 채소다지기는 오롯이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관여해야 한다. 인간의 원초적인 감성을 깨워주는 맛이 있다. 재료가 내 손에 의해 갈려나가는 생생한 프로세스를 손으로 체감할 수 있다.
누가 이런 제품을 처음 만들었을까.
요리는 좋지만, 그 과정은 번거운 것이 사실이다. 그런 귀찮은 과정 중 하나를 재미있는 경험으로 바꿔주는 다이소의 야채다지기는 참 재미있는 제품이다. 어른만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이 아니다. 집에 아이가 있다면 이 줄을 한 번 당기게 해 보자. 놀이처럼 재밌게 요리에 참여한 아이는 아마 의기양양하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엄마(아빠), 또 다질 거 없어요?"
낚시는 손맛이다.
다이소 야채다지기도 똑같다. 줄을 당기고 걸리는 느낌을 손끝으로 느끼면서 '다져지는 맛'을 경험한다. 그리고, 그 비용으로 우리가 지불해야 할 금액은 단돈 3,000원이다. 다이소의 작은 기쁨은 이런 곳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