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의 용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프로이트가 제시한 개념이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영웅 오이디푸스는 어머니를 차지하기 위해 아버지와 대적한다. 이는 극단적인 비유지만, 아버지로 상징되는 기존 질서에 대응하는 새로운 질서와의 관계를 상징한다. 아버지는 권위를 상징한다.
어린 아들에게 아버지라는 존재는 강력한 대상이다. 아들은 어느 순간 결심해야 한다. 강력한 아버지에 대항하거나 혹은 순응하거나.
디자인은 태생적으로 아들의 입장이다.
기존 시장의 관점에서 보면 새로운 디자인은 풋내기일 뿐이다. 위협적 디자인일지 순응적 디자인인지를 스스로 표현해야 한다. 어중간한 디자인 전략을 잡을 수도 있지만 그건 좀 비겁하다고 생각한다.
순응하는 디자인의 수명은 오히려 짧다.
어설프게 착한 디자인은 기존 질서에 순응하는 디자인이다. 자기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숨죽이고 남의 눈치를 보는 것이다. 딱히 지적할 것은 없지만 밋밋하고 개성이 없다. 안정적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위험한 선택이다. 노키아는 한때 세계 휴대폰 시장을 지배했었다. 하지만 스마트폰 패러다임이 전 세계를 휩쓸 때 기존 피처폰의 성공에만 안주했다. 변화보다 안정을 선택하는 전략은 살아남지 못한다. 디자인도 마찬가지다.
반면, 기존 질서에 대항하는 디자인의 운명은 둘 중 하나다.
즉시 사라지거나 오랫동안 살아남는다. 중간은 없다. 차별화가 된다는 것은 승부를 걸어볼 수 있다는 의미다. 새로운 디자인은 새로운 질서고 새로운 문법으로 신선한 충격을 줄 수 있다. 애플의 사례를 보자. 컴퓨터 회사의 이름이 '사과'다. 도발적인 이 회사는 기존 시장의 관점에서 볼 때는 풋내기였을 것이다. 하지만 기존질서에 대항하는 디자인으로 브랜드, 운영체제, 아이덴티티등 모든 것을 독자적으로 구축했고 결국 살아남았다. 아니 살아남은 정도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다.
대항하는 성질은 디자인의 운명이다.
디자인에 예산과 시간을 쓴다는 것은 기존 질서의 시장에서 승부를 걸기 위함이다. 실패할까 두려워 뒤로 물러나서 안정만 도모한다면 그저 그런 디자인이 될 것이다. 아무런 차별성도 없는 밋밋한 디자인은 그 존재 자체를 의심받을 것이다. 실패가 두려운 것은 마찬가지다. 아버지에 대항하는 아들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것이 무서워 순응하는 디자인만 한다면 결과는 자명하다.
디자인은 그렇게 쓰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