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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디자인대학 생활

과제가 너무 많아요

by 송기연

과제.

디자인 전공을 한 사람이라면 지긋지긋한 단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과제는 보통 1주일을 계기로 수업마다 존재합니다. 중간, 기말고사를 과제로 대체하기도 하고, 이른바 '과제의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는 학기 마지막 조별 과제 등 여러 분류가 있습니다. 이미 졸업한 사람들은 재학 시 과제 분량을 과장해서 말하면서, 마치 군대나 낚시꾼처럼 라테를 연발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디자인 전공자들에게 과제는 부담스러운 의미로 다가옵니다. 여기에 공모전이나 다양한 산학 프로그램과 교수님들마다 진행하시는 단발성 프로젝트 등이 더해지면 그야말로 '대환장 파티'가 벌어지게 됩니다.


실무능력과 마찬가지로, 학교를 다닐 때도 이런 과제의 홍수 속에서 희한하게 과제의 우선순위를 잘 정하고, 빨리빨리 해내는 친구들을 볼 수 있습니다. 특별히 배우지는 않았지만 일의 전체를 보는 눈과 그것을 잘 배열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감시간에 맞춰서, 중요도에 따라서 깔끔하고도 세련되게 과제를 마무리합니다. 이것은 사회에 나와서도 중복되는 업무들의 우선순위와 중요도 등을 파악해서 정리하는 역량을 발휘합니다. 대학을 다니면서, 디자인학과의 과제를 잘하는 방법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한 번 생각해볼까요?


대학에서의 과제는 곧 사회에서의 업무에 비유됩니다. 아래 세 가지 조건과 원칙을 따르면 됩니다.


첫 째, 모든 과제를 동일시하는 것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모든 과제는 중요도에 따른 우선순위, 비중, 완성 시까지 소요되는 시간, 투입되는 요소 등이 모두 다릅니다. 아니, 비슷해도 억지로라도 다르다고 생각해야 됩니다. 이를 단순히 제출일자로만 보지 말고, 제출일자와 중요도, 투입요소(시간)에 대한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과제의 우선순위가 눈에 보일 겁니다. 순서와 분류만 잘해도 반 이상은 진행된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현재 상황을 고려합니다. 알바 등 정해진(변경할 수 없는) 스케줄이 있다면 피해서 계획을 잡아야겠지요. 눈치챘는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스케줄과 일정을 그룹핑하고 유사한 것끼리 자원을 고려해서 순서를 정하는 것은 실무의 연습 버전입니다. Affinity Diagram이나 MECE 분류라고 이름 붙이지 않아도 대학에서 과제를 배분하면서 이는 자연스럽게 몸에 익혀지게 됩니다. 어느 하나 빠질 수 없지요.


둘째, 대부분의 수업 과제는 비슷한 패턴을 가진다는 겁니다. 반복되는 업무에는 반드시 패턴을 찾아내서 시스템화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불필요한 업무가 그룹핑되면서 단순해집니다. 전체적인 과제의 양은 비슷하지만, 실제로 수행하는 입장에서는 단계가 축소되면서 적어집니다. 이 과정을 자연스럽게 터득하면 제일 좋지만, 그렇지 않다면 고민하면서 정리해 볼 가치는 있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적절한 자원을 배분합니다. 보통은 시간을 말합니다. 과제의 중요도에 따라 분류한 뒤에는 과제에 맞는 적절한 자원을 써야 합니다. 과제를 수행하는 도구로 칼을 비유해 볼까요? 능숙한 셰프라면 요리 종류나 과정에 따라 다양한 기능의 칼을 가지고 있습니다. 방울토마토 자르는 데, 고기 자르는 칼을 쓰지 않습니다. 과제에 따라 적절한 칼(자원과 도구)을 쓸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적절한 자원을 쓸 수 있습니다. 낭비가 없는 효율적인 활동이 가능하다는 말입니다.




위 3가지 조건과 원칙이 주어졌다면 이제 과제를 최대한 빠른 시간에 마무리하면 됩니다. 빠른(Rapid)한 진행은 글쓰기의 초고(草稿)에 해당합니다. 세계적인 거장 헤밍웨이는 "모든 초고는 쓰레기다라고 했습니다. 위대한 작품은 쓰레기인 초고에서 숱하게 고쳐나가면서 완성됩니다. 위대한 디자인 역시, 처음에는 초고 같은 디자인에서 출발합니다. 최대한 빠른 과제의 마무리, 그리고 완성도를 높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빠른 완성을 위해서는 과제가 발생하는 순간 해치워야 합니다. 오늘 나온 과제는 오늘 끝냅니다. 완성도가 엉망이라도 오늘 끝냅니다. 최대한 빠른 시간에 마무리까지 합니다. 그리고, 최종 제출일까지 다듬어 나갑니다. 천천히 다듬지 말고 다듬는 것도 최대한 빠른 시간에 1회, 2회, 3회.. n회 이렇게 나가는 것입니다. 대단한 원칙이랄 것도 없지만, 학교에서 과제를 처리하는 것을 보면 사회에서의 업무처리도 예상할 수 있습니다. 학부에서 전공지식을 배우고 익히는 것과 함께, 미래 업무처리방식도 함께 배우고 익히는 것입니다.


과제를 밀리지 않고 해 낼 수 있는 방법, 슬기로운 디자인 대학생활의 첫걸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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