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극은 감소한다
호모 사피엔스는 적응의 동물입니다.
새로운 자극은 신선한 경험으로 다가오지만, 반복되는 자극은 곧 적응으로 수렴됩니다. 오감이 작동하는 방식과 뇌로 이어지는 신경전달 현상은 유사한 외부 자극을 하나로 묶어버리게 됩니다. 어찌 보면 시간이 빨리 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도 유사한 행위나 기억들이 큰 덩어리들로 그룹핑되면서 벌어지는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새로 구입한 스마트폰도 처음에는 필름도 붙이고 애지중지하다가 몇 달만 지나면 침대에 툭 던지는 그냥 그저 그런 폰이 됩니다. 머리를 새로 하는 것도 2~3일을 넘기기 힘들지요. 기간의 장단이 있을 수 있겠지만, 거의 대부분의 경험은 빠른 순간 익숙해져 버립니다. 사람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불타는 사랑도 채 몇 년을 가지 못하고 부부는 가족이 되어버립니다. 오래된 친구도, 익숙한 물건도, 친근한 관계도 모두 빛이 바래집니다.
새로운 자극을 다시 찾거나, 더 강한 쾌락을 찾아 헤매게 됩니다. 나의 현재와 주위보다는 가지지 못한 혹은 경험하지 못한 것에 관심이 더해집니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는 말도 있고, 자신이 가진 행복의 즐거움도 이내 곧 잊혀버려 지는 대상이 됩니다.
디자인은 어떨까요? 매번 새로운 자극과 쾌락을 추구하는 것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요? 소비심리에 대한 이러한 특성을 집요하게 노리는 자극적인 디자인과 마케팅을 우리는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구매욕구나 말초적인 자극만을 위한 콘텐츠가 트렌드라는 말로 자리바꿈 해서 산업의 중심에 앉아있습니다. 삶 속에 녹아서 자연스럽게 함께 생활되는 디자인이 아닌 것의 가치와 주기는 짧을 수밖에 없습니다. 오로지 상업적 성공이라는 단 하나의 가치만을 위해 앞만 보고 달리는 단말마 같은 디자인들 때문에 디자인이 단지 도구로서만 존재했던 시기도 있었지요. "디자인은 마케팅의 시녀다"라는 표현도 같은 맥락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물론,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살아남기 위한 디자인산업계의 눈물 어린 노력과 현실과의 타협점이 분명 존재했으리라 생각합니다. 과디자인이라고 불리는 디자인 결과물. 트렌드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자극적이고 쾌락 중심적인 오브제들. 2년마다 바꾸지 않으면 고물 취급되는 휴대전화와 짧은 수명주기의 취향 위주 제품들.
그리고, 버려지는 소모성 디자인들. 또다시 급한 목마름에 바닷물을 퍼 마시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합니다.
목마름은 언제쯤 해소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