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디자인에 개성이 필요한가?

무색무취(無色無臭)의 디자인은 이제 그만.

by 송기연

디자인에는 방법론과 원칙이 존재한다.

이것은 디자인을 할 때 큰 기준으로 제시하는 것이지 여기에 얽매이면 안 된다. 만약 모든 디자인이 추구해야 하는 결과가 동일하다면 어떨까? 아마 대부분 디자인 결과물이 대동소이해질 것이다. 자동차나 컴퓨터 용품, 패션이나 레스토랑 브랜딩, 운동기구나 공공 디자인 시설의 디자인이 모두 한 방향만으로 간다면 결과는 비슷비슷한 결과물들로 마무리될 것이다. 마치 전체주의 디자인 같지 않겠는가?


사람은 저마다 개성(personality)이 있다.

여기에 취향, 철학, 관심사, 능력 등이 더해지면 모든 사람은 개별적으로 독립된 인격이다. 디자이너도 마찬가지다. 동일한 교육기관에서 같은 교수에게 공통된 커리큘럼으로 지도를 받았어도 모두가 조금씩 다르다. 지극히 당연한 말이다. 그래서 동일한 프로젝트를 해도 각자 다른 방식의 결과물이 나오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렇지 않다면 디자인이 자판기와 다른 점이 없다.


하지만 현재 디자인이 추구하는 목표는 유사하다.

기능주의와 합리주의 디자인이 그것이다. 정해진 예산안에서 최대한 저렴하고 생산이 용이하게, 그리고 잘 팔릴 수 있어야 한다. 철저히 시장 원리와 트렌드에 따라야 하며, 쓸데없는(?) 장식성 같은 개별 디자이너의 개성은 클라이언트의 상업적 이익보다 우선할 수 없다. 이런 명확한 현실적 기준은 대부분 디자인 요구조건에 공통적으로 들어간다. 그러다 보니 디자이너 개인의, 혹은 디자인 에이전시만의 독특한 개성을 기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정 그런 것을 원한다면 클라이언트가 없는 자체 상품을 개발할 때 시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습관이 되어서 그런지 에이전시의 자체상품 개발에도 그런 경우도 찾아보기 힘들다.


그럼 공장에서 찍어내는 듯한 천편일률적인 디자인은 가치가 전혀 없을까.

그렇지는 않다. 아직도 많은 산업영역이나 공공부문에서는 디자인의 비중이 그리 중요하지 않다. 디자인 외에 더 중요한 가치가 요구되는 영역은 분명히 존재한다. 아쉬운 마음이 있지만 충분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가치가 모든 산업영역으로 확대되는 것에는 분명히 반대한다. 몰개성의 디자인에는 경쟁력이 없기 때문이다. 디자이너의 개성이 없는 디자인은 존재 의미가 없다. 디자이너만의 독창적인 세계관과 개성은 다른 디자이너와의 구분도 가능하게 하고 세상에서 디자인을 통한 제품과 서비스의 변별력을 가능하게 한다. 모든 디자이너가 다 똑같은 수준의 디자인을 한다면 굳이 디자인에 별도의 예산을 쓰지 않을 것이다. 굳이 필요하다면 가장 저렴한 단가의 디자이너를 찾는 것이 합리적이다.


반면, 세계적인 디자이너는 자기만의 세계가 확실하다.

결과론적으로 성공한 디자이너가 안되더라도 디자이너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항목이다. 모든 정수기 디자인이 큐브 형태라면 굳이 디자이너가 왜 필요한가? 모든 마우스가 둥근 조약돌 형태여야 한다면 마우스 개발에는 디자이너가 없어도 된다. 여전히 세상에는 경쟁자들이 있고 제조사나 클라이언트는 그것을 뚫고 시장에서 일어서기를 원한다. 만약 디자이너의 유니크함이 일반적인 수준이 아니라면 그것의 판단의 세상의 몫이다. 모든 경쟁시장에서 살아남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는 존재한다. 알렉산드로 멘디니, 자하 하디드나 카림 라시드, 하이메 아욘, 스테파노 지오반니니의 디자인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가. 디자이너만의 색깔은 물론 상업적 성공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원하는 양쪽 날개를 모두 가진 케이스다. 자신만의 디자인 세계를 구축하는 것은 디자이너의 존재가치를 설득해 준다. 적어도 디자인에 대한 평가는 받을 수 있다.


개발자들은 이스터 에그 같은 방식을 사용한다.

지금도 그렇게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엔지니어들도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기본적인 인간의 욕망이다. 보편성에서 벗어나려지 않으려는 태도는 디자이너의 자세는 아니다. 억지로 튈 필요는 없지만 무사안일의 태도는 좋은 디자인의 덕목이라 할 수 없다. 설사 이도저도 아닌 기계적 평균 수준의 디자인은 절대 현실에서는 평가의 기회조차 가질 수 없다. 디자인을 하는 이유는 눈에 띄고, 돋보이기 위해서가 아닌가. 클라이언트는 세상의 평가가 필요하다. 냉혹한 비즈니스의 세계에서 소리소문 없이 조용히 사라지는 제품과 서비스는 한 둘이 아니다. 반면 롱런하는 디자인을 보면 어떤 식으로든 개성을 갖고 승부를 걸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쩔 수 없이 선택을 해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유일한 존재다.

디자인을 하는 디자이너 역시 마찬가지다. 클라이언트 입장에서는 최소한 자신의 제품이나 기술이 시장에서 정당한 평가를 받기 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치열한 경쟁시장에서 평가의 대상으로 우선 눈에 띄는 것이 우선이다. 가장 효율적인 전략은 디자인의 힘을 빌리는 것이다. 거기에 더한다면 디자이너의 개성이 들어가야 조금 더 확률이 올라간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물에 물 탄듯한 밍밍한 디자인은 세상에 너무나 많아 감당이 안될 정도다. 최소한 한 번 정도는 승부를 걸어봐야 하지 않겠는가.


개성 없는 어중간한 디자인은 아니함만 못하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왕성한 호기심과 관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