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는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근거였다.
큰 변화 없이 순환을 반복하던 삶에서는 경험이 가장 확실한 선택의 기준이었다. 그래서 나이가 많다는 것은 경험이 많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상징했다. 하지만 현재의 삶에서 과거의 경험은 더 이상 미래를 예견하지 못한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Nobody Knows가 유일한 진리인 시대가 되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내일을 준비해야 할까.
인공지능은 말 그대로 가십이었다.
가끔 영화나 소설 등 상상력 속에서 자주 등장하던 이 주제에 대한 인식은 이랬다. 언젠가는 사람의 지능과 유사하거나 혹은 뛰어넘는 기계지능이 나오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딱 이 정도가 아니었을까? 인공지능이 세상을 지배하고 인간이 아닌 존재에 의해 인간이 거부당하는 현실은 상상 속에서나 가능할 뿐이었다. 하지만, 2022년 11월 30일 챗지피티가 세상에 나오면서 상상은 조금씩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언젠가 이 인공지능 역시 발전의 속도가 진정되고 안정세(?)에 접어들 것이다. 언제일지 모를 그때를 향해 미친 폭주 로켓처럼 달려가고 있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멀미가 날 지경이다. 앞으로 AI는 어떤 모습으로 변할까?
인공지능의 발전은 오로지 인간을 위함이다.
이 말 역시 오로지 인간의 입장에서만 주장하는 것이다. 머지않아(혹시 이미) 인공지능이 입력된 데이터에 의한 답을 말하는 수준에서 넘어선다면, 이 전제에 대해서도 의문을 가질 것이다. 신이 만든 인간 역시 신과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의문을 가졌듯이 말이다. 인공지능은 삶의 전체를 바꾸고 있다. 그중에서도 먹고사는 문제인 직업과 관련된 부분은 더욱 민감하게 다가온다. 나처럼 디자인을 하는 사람은 이 명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아주 소수의 디자이너만 인공지능의 발전속도를 겨우 맞춰가고 있을 것이다. 이마저도 조만간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수준의 격차가 발생할 것이라는 점에는 누구도 반론을 가지지 못할 것이다. 그럼 질문은 하나로 모아진다. 도대체 나는 뭘 어떻게 해야 하는가?
디자인이 대표하는 키워드는 독창성, 기발함, 아름다움, 센스, 조형, 편리, 혁신 등이 있다.
모두 아름답지만 도전적이고 주관적인 표현들이다. 때에 따라 상대적으로 해석되며 명쾌한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 영역이다. 그래서, 인공지능이 아무리 발전한다고 해도 디자인을 위시한 예술 분야는 가장 나중이 되어야 인공지능의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지금 관점으로 보면 허황되고 나이브한 예측을 했었다. 아까 말했던 챗지피티가 세상에 존재를 드러낸 지 채 3년 하고도 한 달이 지났다. 세상이 어떻게 변했는가? 이 변화의 물결을 몸으로 체감하지 못하는 사람도 아마 감각적으로는 이 변화의 물결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무어의 법칙이 있었다. 반도체 IC의 직접회로 성능이 2년마다 두 배씩 성장한다는 1965년도의 발견 비슷한 것이었다. 그 당시에도 놀라운 기술의 발전속도를 대변하는 유명한 주장이었다. 21세기 밀리니엄이 끝나고, 불과 20여 년이 지난 뒤 세상은 가속에 가속이 더해지고 있다. 이제 창의산업뿐만 아니라 컴퓨터를 이용하는 대부분의 산업에서 인공지능이 관여하지 않은 곳을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진짜로 호모 AI 시대가 열린 것이다.
우리는 인공지능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은 터미네이터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했다.
그나마 영화 속에서는 인간을 지배하는 존재로 인공지능이 그려지는 단일한 형태로 정착한 것으로 묘사되었지만, 현실에서는 그 입장이 서로 다를지도 모르겠다. 호모 사피엔스의 세상에서도 다양한 경제, 정치, 문화, 종교로 서로 나뉘어 대립하고, 협력도 하고, 죽이고 담합하면서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그보다 훨씬 뛰어난 지능을 가진 존재라면 현실보다 더욱 세분화된 세상을 만들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인공지능을 대하는 인간의 인식은 단순히 컴퓨터를 뛰어넘는 도구보다 유기체로서의 삶을 영위하는 가이드가 되지 않을까. 영국 TV드라마 블랙미러 시리즈에서 묘사되는 조금은 어두운 세계. 첨단기술이 우리 삶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것이 아니라 빛의 속도로 똬리를 튼 모습이 상상된다. 이질적이지만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듯한 블랙미러 속 가까운 디스토피아적 미래라면 그나마 조금은 통제가 가능한 현재의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가는 방식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