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회비빔밥과 비구니

금기된 유혹에 대하여

by 송기연

우리는 일정한 기준에 의해 살아간다. 제도화된 성문법(成文法, written law)이 그렇고 사회적 암묵적 불문법(不文法) 이 그렇다. 물론, 이는 대부분 문명화된 사회에서는 서로 크게 차이가 없을 것이다. 둘의 불분명함은 문명사회를 증명한다고도 할 수 있다. 본디 인간은 본능대로만 살아가면 가장 편하다. 배고플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는 것이다. 힘의 우위로 강자가 약자를 취하고, 모든 것은 이기적인 자신이 중심이 되어 움직인다. 간단하면서도 많은 인류가 가진 본능이다. 선진화된 사회일수록 강자는 약자를, 남자는 여자를, 젊은이는 노인을, 정상인은 장애를 가진 이를, 권력자는 일반 시민을 보호한다. 이는 어찌 보면 철저히 본능을 거스리는 일이다. 본능을 거리 스면서 타인을 배려하고, 사회를 존중한다. 이것이 수준 높은 사회인 것이다.


그러나, 본능을 거스르는 일이 단순히 큰 목적이나 행위만을 뜻하지 않는다.

개개인이 맞닥뜨리는 작은 삶의 순간순간에 본능적인 유혹은 도사리고 있다. 에덴동산의 뱀처럼 이런 욕망을 종교의 입장에서는 금기했다. 이는 다른 관점에서 보면 철저한 이분법적 세계관을 통한 지배자의 시선이기도 했다. 기독교의 10 계명은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절대(?) 지킬 수 없는 것으로 가득하다. 자주적 사고력을 가진 주체인 인간이 어찌 그 계명 중 하나라도 정확히 이행할 수 있단 말인가. 중세 종교지도자들이 정치를 겸하면서 생성시킨 이런 시민의 고해는 이미 예견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고정관념이 나쁜 것으로 대부분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경우 고정관념은 편하고 유익하다. 인간이 직립보행을 하면서 매번 내닫는 다리의 힘과 방향을 설정할 수 없으며, 의사결정 시 효율을 위한 프로세스나 매뉴얼화는 반드시 필요하다. 개인 간 인식의 차이가 나쁜 것과 좋은 것을 나눌 뿐이다. 문화가 그렇고, 종교가 그래 왔다. 여기에 사회도 한몫을 차지한다.


금기된 것만큼 자극적인 것은 없다. 거리에 침을 뱉으면 안 되지만, 사소하고 작은 일탈은 누구나 한다. 개인의 도덕적 잣대 그 길이만큼이나 다른 기준은 스스로를 옭아매기도 하고 또는 익숙하게도 만든다. 유혹을 유혹으로 보지 않고, wants로 보는 것은 마케터만의 숨겨진 무기가 아니다.


자신의 세계관에 속한 우주는 무한하다. 내 우주에서는 내가 중심이 된다. 어떤 다른 가치가 나의 판단을 좌지우지하지 않는다. 다만, 내 생각만이 존재할 뿐이다. 하고 싶은 것을 하려면 해야 할 일을 한다. 내가 원하는 것은 내 안에서는 善이 된다. 남을 害하지 않고 추구하는 나의 행동은 충실한 진실 그 자체가 되는 것이다. 육회비빔밥집에 들어온 비구니 스님은 오늘 자신에게 진실한 자가 되었다. 자신의 우주 속에서 그 자신이 가장 큰 존재가 되어 위치한 것이다.


우리는 오늘도 욕망하고, 또 적응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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