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산학협력의 허와 실

좋은 의도와 그렇지 못한 결과를 방지하는 길

by 송기연

항상 좋은 의도가 좋은 결과를 낳지 않는다.

협업이나 협력, 공동이라는 키워드는 아주 이상적인 형태다. 서로가 가진 것을 나누고 부족한 것을 메꾸면서 최상의 결과를 도출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이상에 가깝다. 모든 주체들은 저마다 효율을 생각하기 때문에 대학에서의 팀 작업과 회사에서의 팀 플레이 등은 늘 그렇듯 만족하지 못하는 경우가 즐비하다. 그렇다면, 이런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아니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어떤 것들이 전제되어야 할까.

서비스디자인 역시 디자인의 전 과정에 이해관계자들 간 참여와 협업이 필요하다. 말마따나 참여형 디자인 개발과정이 되겠다. 문제는 어디에 방점을 찍느냐 하는 것이다. 공동 vs 협업 vs 참여 중에서 어떤 것에 중점이 있느냐에 따라서 문제가 되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기도 한다. 필자가 생각하기에는 현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은 학력 수준도 높고 크게 손해 보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 없거나 없고자 한다. 스스로가 생각은 그렇게 해도 생각대로 행동을 옮기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생각대로만 하라고 하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굳이 손해를 보고자 하는 사람이 있을까. 만약 해결해야 할 문제나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가 숭고한 목표이거나 공동의 선이라고 하면 이타적인 사람은 반드시 존재한다.


협력은 형식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다른 사람은 항상 내 마음만큼 되지 않는다. 그건 서로 마찬가지다. 제목으로 든 산학협력의 예를 들어보자. 산학협력은 말 그대로 산업과 교육의 만남이다. 산업체와 대학과의 만남이다. 서로 가진 것을 나누기보다는 서로 부족한 것을 메꾸면서 최상, 최고의 결과를 도출하는 것이다. 이런 이상적인 레토릭이 좋은 결과를 도출하려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는 전제조건이 있으며, 근래 그것은 동일한 형태로 나타난다. 부족하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어떤 문제일까. 물론, 문제는 그야말로 즐비하다. 문제를 제외하고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문제가 있지만 상대적 개념에서 산과 학이 상대적 보완관계가 되어야 한다. 즉, 이 말은


산의 문제를 학이 해결할 수 있어야 하고, 학의 문제를 산이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단순한 명제지만 아주 명쾌하다. 이 조건이 상호 만족되면 협력의 당위성이 생긴다.


- 산(기업)의 문제 : 기술, 발상

- 학(학교)의 문제 : 경험, 취업


산학협력의 차원에서 본다면 더욱더 문제는 명쾌해진다. 특정한 동일산업 분야가 있을 때, 예전에는 학교(대학)에서의 정보나 기술이 뛰어났다면, 이제는 기업의 기술이 뛰어날 경우가 제법 있다. 당연하게도 기술이 발전하고 정보가 공유되는 시대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더욱 이런 현상을 두드러질 것이다. 물론, 일반적이지는 않다. 아닌 사례도 충분히 존재한다.


근래, 대학에서의 문제는 명확하다. 산업 응용 분야 학과에서는 "취업을 염두에 둔 실전 경험과 정보"이다. 산업계와 학계를 두루 걸쳐있다 보니 보고 듣고 경험한 내용을 토대로 본다면, 순수학문을 제외한 나머지 전공의 문제는 단순하다. 캡스톤, 산학협력 등의 다양한 용어로 쓰이는 이런 형태의 협업은 자칫 의도한 순수한 것에 미치지 못하는 결과를 대부분 가져온다. 보통은 상대에 대해 필요 이상의 기대를 갖는 것에서 출발한다. 기업은 학교가 놀라운 기술이나 노하우를 알려주거나, 참여하는 학생들이 정성을 다하고 최선을 다해서 프로젝트를 수행할 거라 본다. 그러나, 보통의 경우에는 그냥 과제일 뿐이다. 생각해보라. 고르고 고른 뛰어난 신입사원도 가르칠 것이 많은데, 학부의 일반적 학생의 수준은 큰 기대를 가지기 힘들다. 학교 역시 마찬가지다. 기업이 학생들에게 적극적으로 참여할 기회를 주고, 신기술이나 제품, 상품개발 과정에 참여시키면서 교수들이 해야 할 무거운 짐 하나를 제대로 덜어줄 것이라 기대하지 않은가. 기업 입장에서는 귀찮은 숙제일 가능성이 크다. 서로 최선의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서는 솔직해져야 한다.


보여주기 위한 산학협력은 아주 많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럴듯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서로 잘 알고 있다. 알고 있으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시간낭비, 자원낭비, 마음 낭비를 하는 것이다. 학교는 결코 기업이 가진 문제를 명쾌하게 해결할 수 없다. 학교는 학교다. 그리고, 기업 역시도 그들이 가지고 있는 심도 깊은 문제를 결코 말하지 않는다. 그저 해결할 만한, 혹은 해결된 문제를 슬쩍 포장해서 제시할 수 있다. 학교도 정신을 차려야 한다. 학교가 가진 자원인 교수의 기술이나 지식, 학생 인력은 이제는 시장에서 그렇게 매력적이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산학협력 형태의 일이 진행된다면 반드시 상호 명심해야 한다.


기업은 원하는 바를 명확히 말하고, 학교는 그것을 실습 차원에서 행한다고 말하라.

학교는 가진 자원을 명확히 말하고, 기업은 그것을 참고용으로만 본다고 말하라.


반복하지만 위의 주장은 보통 수준 산업 응용분야의 산학협력일 경우에 해당한다. 더 고차원적이거나 의미 있는 산학협력의 형태도 많을 것이다. 이것을 판단하는 것은 쉽다. 기업이 먼저 학교에 요청할 것이다. 학교는 요청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다시 해당 기업에 요청하지 마시라. 시장이 좋으면 고객이 찾게 되어있다. 그러나, 아쉬운 고객이 먼저 조건을 내밀 수도 있다. 뭐가 문제겠는가.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지 않으면 인위적 커브도 만들 수 있다. 이상적인 산학협력은 서로의 문제를 명확하게 해소시키는 것에서 출발한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학교와 교수의 뛰어난 경험과 지식을 사업에 접목해서 발전하거나 문제를 해결하고, 미래 유망인재나 고객들에게 자신의 비즈니스 모델을 검증받을 수 있게 된다. 학교는 현재 진행 중인 기업의 문제에 동참하면서 학생들에게 교과서 밖의 현실과 체험을 가지는 귀한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


이상은 현실과 멀리 있지는 않다. 다만, 계속해서 가까워지고자 노력해야 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디자인 메타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