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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빨리 일부터 합시다"

급할 거 1도 없습니다.

by 송기연

우리가 살면서 접하게 되는 서로 다른 반대 현상들은 경계가 있다.

그러나, 모호한 것이 대부분이다.


용기와 무모함.

소심함과 진중함.

집착과 관심.

쿨함과 덜렁 거림.


일을 진행할 때는 누구나 자기만의 방식이 있어야 한다. 매번 새로운 일은 하더라도 같은 산업군 내에서

발생하는 일이라고 하면 어느 정도 반복하다 보면 패턴이 생긴다. 나름 효율적이고, 편한 방식이 본인의

스타일이 된다. 디자인도 마찬가지다. 내가 경험해온 방식으로 보면 일은 다 다르다. 같은 방식이라고 해도

클라이언트가 다르거나 환경이 다르다. 그래서, 일을 진행하는 데는 별다른 방식을 고집하지 않는다.

일은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탄력적이다. 그때그때 맞춤형으로 진행하는 것이 좋다.


그런데, 일을 하기 전 단계에서는 좀 고집스럽게 하나하나 체크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사실 일을 하기 전에는 보통 견적이나 일정, 간단한 RFP정도만 챙기는 것이 보통이다. 특히, 디자인 과업을 진행하다 보면 무작정 싸게, 빨리 일하자고 하는 경우가 많다. 얼마 전 제품디자인 개발 견적을 하나 보냈었는데, 비슷한 경우에 또 해당되었다. 만약 일부터 빨리하자는 제안에 응했다면 중간에 문제가 많았을 터였다.

보통은 시간과 예산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바늘허리에 실 못매쓴다는 말이 딱 맞다.


일은 지금까지 해왔고, 앞으로도 할 거라서 대충은 어떤 식으로 흘러갈지 알 수 있다.

일을 에러 없이 정확하고 빨리 끝내려면 조건이 명확해야 한다. 의외로 사람들은 머릿속에 있는 생각이 잘 정리되어서 본인이 지금 말한다고 느낀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

생각이 말로, 글로 변환되면서 많은 것이 정리된다. 적어야 한다. 써봐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처음에 과업을 출발할 때는 허허하면서 일 자체를 즐긴다는 인상을 주고 싶을지도 모르겠으나 뒤가 깔끔하지 못하다.


놀랍게도 RFP자체가 모호한 경우도 허다하다!

뭘 얼마나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아주아주 정확하고 명확하게 서로 얘기되고 합의가 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많은 경우 이런 주제가 허술(?)하게 다루어진다. 그래서, 클라이언트와 디자이너가 서로 다른 생각과 목표를 가지고 일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고, 대개의 경우 뒤가 깔끔하지 못하게 된다.




그럴지 몰랐다, 왜 이렇게 하느냐, 다시 생각하자.. 고 하면서 그 유명한 멘트를 한다.


"다른 사람은 다 내 맘만 못하네"


이건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린 말이다. 중립기어 넣고 양측의 말을 다 들어봐야겠지만, 누구나 한쪽은(최악의 경우에는 양측 다) 명확하게 말을 안 했을 경우가 많을 것이다. 명확하게 과업의 출발 전에 조건을 맞추는 것은 무엇보다 원활한 업무 진행을 위해서는 필수다. 계약 단계에서 많은 얘기가 오가야 한다. 업무는 업무로 풀 수 있지만, 조건이나 진행, 서로의 목표 수준이 안 맞다면 과업기간 내내, 과업이 끝나고 나서도 앙금이 된다. 처음 출발이 조금 늦어도 결승전에는 더 빨리 들어갈 수 있다.

초기 레벨링(Leveling) 작업은 업무 못지않게 중요하다. 오늘도 다시 깨닫게 된다.




디자인하면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 중 하나가 계약을 잘하는 것이다.

무조건 높게 예산을 받아내라는 것이 아니라, 업무의 큰 틀을 정확히 파악하고, 계약기간 중 내가 해야 할 일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그래야, 해야 할 일과 내야 할 결과, 수준을 알 수 있다. 그렇지 않은가?

그래야 계약내용보다 조금 더 노력해서 클라이언트에게 일반적인 만족이 아니라 감동을 줄 수 있는 정도로 과업의 수준을 조절할 수 있게 된다.

모든 것이 컨트롤 가능한 범주 내에 들어야 마음이 편해지고, 계획이 잡히며, 투입될 정성과 자원이 결정된다.

아무것도 아닌 듯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다. 경계하자. 마음의 소리든 클라이언트의 소리든.


"일단, 빨리 일부터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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