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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기연 Jan 30. 2023

디자인은 존재의 산업이다.

인지혁명의 끝판왕, 디자인

디자인의 의미는 시대에 따라 변화되고 있다. 또한, 기술의 발전, 트렌드, 사회현상 등 다양한 환경에 맞춰 영역을 확장하거나 변화하면서 살아 꿈틀거린다. 과거, 외형을 예쁘게만 꾸미던 단순 심미적 역할에서 이제는 사회문제해결을 위하 대표 솔루션으로도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는 한 시대의 언어가 지속적으로 바뀌고 변화하면서 그 생명력을 확인하는 것과 유사한 현상이다. 디자인은 전통적인 산업문제 해결과 새로운 사회문제 해결이라고 하는 두 가지 큰 영역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주소다.


이렇게 디자인의 의미가 바뀌는 대상과 역할에 따라 변한다고는 하지만 원래 디자인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성질은 바뀌지 않는다. 그것은 바로 존재의 산업이라는 것이다. 디자인의 근원적인 속성은 무엇인가를 존재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 대상이 2가지다. 하나는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이미 존재는 하고 있으나 그 실체가 모호했던 것이다.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존재하게 만들고, 모호했던 것은 또렷하게 한다. 그렇게, 세상에 아직 나오지 않은 어떤 것을 여러 과정을 거쳐서 비로소 존재하게 만들어낸다. 그 대상이 과거 물건의 형태 위주로 나타났다면 지금은 눈에 보이지 않는 시스템이나 행정으로도 만들어진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서는 호모사피엔스의 농업혁명 전에 인지혁명이 있었다고 했다. 눈에 보이지 않던 믿음이나 개념, 사상 따위를 설명하고, 공유함으로써 동일한 것을 믿게 하는 것에서 인지혁명이 폭발적으로 생겼고, 이것이 공동사회를 형성하는 농업혁명의 시초가 되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디자인이 과거 인지혁명의 현대버전이라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산업혁명과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인류사에는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을 통한 생활수준의 향상이 이어졌다. 이에 따라 많은 생활제품들이 새롭게 그 의미를 가지고 태어났으며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완전히 세상에 없던 가전제품군들이 폭발적으로 쏟아졌다. 미국을 중심으로 기술기반의 발명품들은 초기 제품디자이너들에게는 형태를 정의하고, 거기에 생기를 불어넣어 비로소 그 이름을 부여했다. 이 시기에 만들어진 다양한 신문물은 그 기능에 따른 형태를 부여받았고, 이는 대중의 삶에 깊이 관여하게 됐다. 라디오가 그랬고, 전화기가 그랬다. 선진국을 따라 하던 개발도상국에서도 저마다의 정체성을 가진 제품들을 일부는 카피하면서 만들어냈다. 


증기기관, 전기, 반도체, 통신, 데이터로 이어지는 기술의 진보는 세상에 없던 제품의 형태를 부여하는 것에서 발전하여, 이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시스템과 정책을 만들어 내고 있다. 여기에 사용자인 호모 사피엔스의 경험까지 만들어내면서, 물리적 존재에서 출발하여 뇌 속 시냅스와 해마의 기억과 경험까지 만들어내고 있다. 세상에 없던 것을 눈에 보이고, 손으로 만져지는 존재로 만들던 것이 어느 정도 그 힘을 다해가자 이제는 눈에 안 보이는 존재들의 무궁무진한 영역으로 들어선 것이다. 디자인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존재를 만들어내는 주체이자, 애매한 무엇인가를 가시화하여 시각화해 내는 주체 그 자체행위이다. 


존재는 참된 속성을 가진다. 그 속성은 참이어서 다른 개념은 존재할 수 없다. 칼의 속성은 자르는 것이지 누군가를 해하는 데 사용되는 칼은 그 속성이 참이 될 수 없다. 디자인은 존재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 이는 없던 것을 만들어내고, 확실하지 않은 여러 것들을 조화롭게 조합하고 용융하여 확실한 정체성을 부여한다. 흔히 디자인이 도대체 무엇을 하는지 경계가 뚜렷하지도 않고, 매번 새롭게 대두되고, 분화되는 속성으로 이해하기 힘들다고 한다. 만약 그렇다면 존재의 주체로서 디자인을 이해하는 것을 권한다. 그런 일을 하는 디자이너는 그냥 매뉴얼대로, 조건대로만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실체화하면서, 존재하게 하는 일을 수행한다. 존재자로서의 디자이너는 단순한 메이커라고 할 수 없는 것이 이런 이유라 본다. 지금 이 순간도 디자인은 각 산업분야에서, 학문분야에서, 사회분야에서 존재의 가시화를 위한 산고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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