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천국의 맛

영혼을 갈아 넣었어

나의 요리비법은 따로 있다

by 시현

9시 반쯤 오전 간식을 담은 카트를 복도에 세워 둔다.

이제 막 등원한 아이들은 옷과 가방을 사물함에 넣고는 내게 와서 묻는다.

"오늘 간식은 뭐예요?"

같은 질문이어도 5세와 6세 7세는 각각 다른 뉘앙스가 있다.

7세 반 정운이의 질문에는 약간의 불안이 숨겨있다.

' 당근이면 어쩌지?' 7세답게 당근이 나올 때가 됐다고 추측한 것이다.

지난주엔 6세 반 지호가 묻길래

"세 글자인데 앞으로 읽어도 뒤로 읽어도 똑같아. 빨간색이지"라고 힌트를 줬더니 바로 토마토라 대답했다.


5세 반 아이들의 그 질문을 나는 제일 좋아한다.

바트를 쳐다보는 얼굴엔 순도 높은 호기심이 가득하다. 동자를 한 바퀴 크게 돌려 떨구곤 한 번 더 "뭐지?"하고 혼잣말을 하며 카트를 쳐다본다.

나는 일하러 들어갈 수가 없다.

"뭘까? 맞혀봐."

스무고개를 시작한다.

" 두 글자인 채소인데 녹색이고 길어"

"사과요"

대재가 대답한다.

"채소고 녹색이야"

" 아보카도!"

다호가 확신에 찬 듯 대답했다.

"두 글자고 그것보다 길게 생겼어"

"......."

"아삭아삭하지"

내가 씹는 시늉을 보이자 세명이의 아이들이 한 번에

"오이"

하고 합창을 했다.

"딩동댕"

아이들은 폴짝폴짝 뛰며 좋아하며 담임샘을 따라 교실로 들어다.

천국을 느끼려면 약간의 훈련이 필요하다.




샐러드나 덮밥, 비빔밥이 나올 때면 나는 시험 답안지를 끝까지 붙잡고 있는 수험생다. 트엔 어떻게 담을지, 어떻게 배식할지를 지막까지 생각한다.

지난번 불가리아 음식인 숍스카 샐러드는 많은 음식을 접했던 나조차도 생전 음 들어보는 음식이었다. 간략한 레시피가 공되긴하지만 이럴 땐 검색해 는 편이다.

불가리아의 국기 색인 빨강, 초록, 흰색의 재료로 만들어 먹는 국민 샐러드인데 흰색에 치즈를 넣는다고 나와 있었다.

어떤 채소를 쓸지, 치즈와 드레싱은 어떻게 맞출지 계속 생각다가 슈레드치즈 토핑에 발사믹 드레싱으로 정했다.


수박의 경우도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았다.

일반적인 수박 썰기 형태로 나갔더니 윗부분만 조금 베어 먹은 수박이 잔반으로 가득 나왔다. 또 입과 손에 수박 물이 묻어 샘들의 손이 한 번 더 갔다. 깍두기 모양으로 썰어 포크를 내줘보기도 했다. 쩐지 그건 맘에 들지 않았다. 먹을 때 손에 단물이 묻지 않으면서도 아이들에게 수박의 형태를 알려주고 싶었다.

결국 녹색 껍질을 잡고 한 입씩 또각또각 먹을 수 있게 잘라냈다. 아주 맘에 든다.

샐러드와 과일은 더 예뻐야한다.

내가 음식을 예쁘게 만드는 이유는 훌륭한 요리사가 마지막까지 완벽하고 싶은 욕심처럼 부수적인 게 아니다.

그건 내 음식의 원천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요리하는 사람임에도 후각과 미각이 좀 떨어진다. 홍시맛이 느껴져 홍시인 걸 안 장금이도 생각보다 많았고, 냄새만으로 식품의 신선도를 척 알아내는 예전 동료도 있었다. 나는 아니었다. 각각의 맛이나 냄새는 정확히 구분되어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내가 의존하는 건 시각이다. 예쁘게 썰고 다양한 색을 담아내려고 한다. 가장 예쁜 순간이 가장 맛있다고 난 믿는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우리네 속담을 떠올리며 일종의 플라세보 효과라 생각하겠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우리가 느끼는 아름다움이란 대칭과 비례와 비율, 그리고 색의 조화를 말한다.

적당한 크기의 정육면체로 썰어진 당근과 감자를 넣은 카레는 한 국자, 한 숟가락에도 재료가 균형 있게 들어갈 확률이 높다. 여러 재료가 골고루 들어갔다면 맛도 균형이 있을 것이다. 또 료의 크기는 익는 정도를 좌우해서 다시 맛에 영향을 준다.

색 또한 그렇다.

식품의 색깔과 영양소에 대한 연구는 최근에 밝혀지고 있는데 다양한 색감의 재료는 다양한 영양소와 맛을 의미한다. 색감이 잘 맞으면 대체로 맛의 조화도 영양소의 궁합도 좋다. 예쁜 음식은 맛있다


나는 예쁘게 만드는 것 외에는 특별한 비법이나 만능 양념장, 나만의 레시피 이런 건 없다. 킥이 몇 가지 있긴 한데 항상 떠들고 다닌다.

예들 들면 양념장을 만들 때 양파찹을 먼저 담가 둔 후에 양념을 하면 짜지 않고 깔끔한 양념장을 만들 수 있다.

카레를 만들 때 양파 캐러멜이나 연유를 넣으면 카레의 짠맛을 잡아내고 한결 부드럽게 해 준다.

슈가파우더, 파슬리가루, 발사믹 그레이즈만으로도 근사한 플레이팅을 연출할 수 다. 전분물만 있으면 어떤 종류의 덮밥도 가능해진다.




나의 요리 비법은 따로 있다.

주방에서 나를 도와주시는 보조 샘들이 가장 자주 하는 말은 이 많은 걸 언제 일일이 하냐는 것이다.

두부조림은 두부를 가능한 작게 썰어 약한 불에 바싹 구워낸 후 심심한 간장 양념에 조려내면 쫄깃한 고기 같은 식감이 된다.

단체급식에서 거의 보기 힘든 오므라이스를 할 때도 그랬다. 달걀로 감싼 볶음밥인 오므라이스를 아이들에게 제대로 해주고 싶었다.

들은 진짜 다 할 거냐 물었다.

크리스마스니까 했다.

특별한 날에 특별한 음식으로

거의 모든 음식은 다 '일일이' 한다.

그러면 결과적으로 맛이 다.

우리 원은 샘들 음식을 따로 하지 않고 있다. 아이들 음식을 샘들이 맛있게 먹어주니 고맙다.

"맛있어요, 조리사님"

샘들의 말에 내가 하는 말이 있다.

"맛없는 건 못해 난"

이 뻔뻔한 대답에 샘들은 웃어준다.

오므라이스이 좀 어려운 걸 만든 날엔 이렇게 다.

"음... 영혼을 갈아 넣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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