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 조리사의 업무범위
국공립어린이집 조리사 6년 차인 나의 업무는 남들보다 조금 더 많다.
매달 15일이면 급식관리지원센터에서 보낸 다음 달 식단표를 확인한다.(영양사가 없는 원아 100인 이하의 어린이집은 급식관리지원센터의 식단지도를 받아야 한다)
이 초안에서 선택사항을 정하고 정부지원 과일이 있으면 그 일정을 반영해서 수정한다.
안 매운 부대찌개와 비엔나소시지볶음이 있으면 쇠고기샤부샤부국과 동그랑땡으로 바꾸고,
채소전과 우유는 채소전과 매실청으로 변경하며 식단을 다듬어 나간다.
원의 큰 행사가 있는 날은 아이들이 선호하는 메뉴를 짜 넣고 급식관리지원센터의 최종 감수를 받는다.
이 작업은 원장이나 원감 또는 급식담당샘이 하는 경우가 많은데 매번 내게 물어와서 그냥 내가 하게 되었다.
일률적인 식단을 상향된 기준으로 조정하는 것으로도 급식의 퀄리티를 높일 수 있다.
이일을 조리사가 하게 되면 급식에 대한 기여도가 높아지고, 원장은 자신의 업무를 덜어줘서 은근히 좋아한다.
공지한 식단에 따라 식재료 발주를 하게 되는데 나는 보통 일주일치씩 하는 편이다. 식재료의 양과 발주금액 조리방법 등을 생각하며 해야 돼서 꽤나 까다로운 작업이다.
미리 발주한 식재료가 당일 아침 도착하면 검수를 한 뒤 조리에 들어간다.
보조조리사가 있을 땐 전처리를 돕긴 하지만 조리는 온전히 조리사인 내 몫이다.
그다음은 조리가 끝난 음식을 반별로 분배해서 크기를 조정해 준다(전문용어로 조사준다고 한다)
어렵지 않은 일이지만 반별로 먹는 양과 선호도를 반영해야 해서 세심한 관찰이 필요하다.
반별로 담은 음식을 배식카트에 실어 내주는 것으로 내 업무는 일단락이 된다.
그다음은 보육교사가 이어받아 각교실에서 아이들에게 배식을 한다.
엄마들은 가득 채워진 식판을 좋아하지만
그런 가득 채워진 식판을 스스로 다 비우는 아이는 한 교실에 몇 명 되지 않는다.
반이상은 좋아하는 반찬과 국 조금, 밥을 반정도 먹고는 식판 앞에서 멍 때리기가 일쑤다.
적극적으로 밥을 먹여주는 샘들도 있지만 그마저도 조심스러워한다.
보육교사는 아이들과 어렵게 식사를 마치고, 아이들의 식판이 더 이상 줄지 않으면 슬슬 정리하기 시작한다.
가득 채워진 식판은 엄마들의 기대처럼 아이들에게 모두 도달하질 못한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채소를 안 먹는 아이, 너무 천천히 먹는 아이, 스스로 먹지 않는 아이, 김치 안 먹는 아이, 흰밥만 먹고자 하는 아이, 매번 조금씩 남기는 아이중 하나이다.
그래서 누군가의 적절한 개입이 필요하다.
하지만 보육교사 혼자만의 지도로는 개입의 효과가 떨어진다. 아이들에게는 잔소리처럼 느껴져서다.
이럴 때 친근한 조리사가 개입하면 좋은 변화를 기대할 수 있다.
아이들이 반쯤 먹은 식판 앞에서 사투를 버릴 때쯤 점심을 빨리 먹은 내가 들어간다.
나는 일단 식습관이 좋은 아이에게 눈길을 주며 칭찬을 한다.
"하윤이는 시금치를 다 먹었네?"
내 말에 하윤이는 나머지 밥을 싹싹 긁어 씩씩하게 입에 넣는다.
"조리사님 저도 시금치 먹었어요."
서우가 입을 벌려 입안에 있는 시금치를 보여줘서 담임샘과 나는 웃음을 참아낸다.
"얘들아, 샘이 뭐라 그랬어 시금치는 몸을 튼튼하게 해주는 좋은 음식이라고 했지? 맞죠 조리사님?"
"그러엄... 하준이도 조금만 먹어볼까?"
내가 시금치 한 조각을 들어 하준이 입에 넣어주니 마지못해 씹고는 인상을 찌푸린다.
아이들 식판에는 김치가 공통으로 남아 있다.
"얘들아, 김치 잘 먹는 사람 손들어봐."
만 2세부터 5세 아이들은 이 질문에 무조건 손을 들게 되어있다.
"저요." "저요." "저요."
"저는 집에서도 매일 김치 먹어요. "
이럴 때 놀란 표정으로
"진짜?"
라고 한마디만 하면 된다.
아이들은 식판에 남은 김치를 입안에 한 번씩 넣는다.
"조리사님 저는 김치 두 번 먹었어요."
"와~ 조리사님 저희 반 아이들 김치 잘 먹죠?"
"진짜 너무 잘 먹는다."
아이들의 표정은 자신감이 가득 차 있다.
"그럼 우리 오늘 싹싹이 한번 해볼까?"
"얘들아 오늘은 남기지 않고 다 먹는 거야. 할 수 있지?"
"네."
아이들의 밥 먹는 속도가 빨라질 때쯤
나는 엄지척을 해주고 나온다.
그 반의 잔반은 아주 적었다.
아이들은 이렇게 조금만 도와주면 먹는 양이 늘고 편식도 준다. 스스로 잘 먹는 아이가 되어 갈 수 있다.
이게 이전 편 <조리실 안과 밖에서>의 끝부분에 얘기했던 보육교사와의 팀플레이다.
어린이집 급식하면 부실급식 잣대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어 가득 찬 식판을 급식의 완결처럼 여귄다.
하지만 중요한 건 아이들이 얼마큼 잘 먹었느냐이다.
급식이 도달해야 할 곳은 식판이 아니라 아이들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