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에 다시 글을 쓰게 해 준 건 몽이였다.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내가 만약 병에 걸리거나 큰 시련을 겪게 되어도 그걸 글로 쓰며 살아가면 된다는 철부지 같은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몽이가 많이 아파 죽을 뻔했을 때도 그랬다. 눈물이 철철 나는데도 '이것도 나중에 글로 써야지'하는 생각이 나는거다. 그러고 나니 '내가 이렇게 정신줄을 놓고 있으면 안 돼지... 글로 쓰려면 모두 기억해야 되잖아'하며 정신을 차렸던 것 같다.
그런데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점점 이상한 게 감지되었다. 전처럼 일상이 잘 돌아가지 않는 것이다.
밥벌이와 살림을 하고 두 마리의 개를 챙기고 딸한테 가던 손이 좀 줄고 나니 조금의 여유가 생겼다. 내 주위도 보이고 내 마음도 보였다. 글이 쓰고 싶어졌다.
어렵지 않게 브런치에 글을 쓰게 되었는데 그 흔한 sns도 안 하는 내가 공개되는 글을 쓰려니 쉽지 않았다. 그래도 어찌어찌 스무 편 남짓 발행을 했는데 그러면서 내 생활은 엉망이 되었다.
요리에 대한 글을 쓰는 동안에는 주방에 설거지가 쌓였다. 딸 먹을 밥만 겨우 하고 나는 책상에 앉아 대충 끼니를 때우기 일쑤였다.
어린이집 이야기를 쓰는 동안은 아이들보다 브런치를 더 들여다보고 있었다. 몽이 얘기를 쓸 땐 개들은 주말에 종일 집에만 있게 되는 날이 많아졌다.
만약 우리 집 식물들에 대한 얘기를 썼다면 걔네들은 다 말라죽었을지 모른다.
모든 에너지가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그 정도의 글을 쓰면서도 말이다.
몽이의 얘기를 쓰던 어느 날 개들이 짖는 소리 때문에 짜증을 내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펜을 내려놨다.
글쓰기와 일상을 다시 생각해 보기로 했다.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오히려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마저 증발되는 느낌이었다.
나처럼 보여주는 글쓰기가 초보인 경우 대부분 이 지점을 통과하게 되는 모양이다. 그러다가 떠나기도 하고,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기도 하고, 글쓰기에 좀 더 몰입해 일정한 성취에 달성하고서 그 성취로 일상을 재구성하는 이들도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일단 일상으로 복귀했다. 일상을 더 탄탄히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더 명료해지고 더 풍부해지면 퇴고의 시간이 줄것이다.
곧 돌아올 줄 알았는데 그 건 쉽지 않았다.
두 달 만에 다시 글을 쓰게 해 준 건 또 몽이였다.
<완전한 가족>을 쓸 때 나는 세 개의 가족에(친정 시댁 내 가정) 둘러 쌓여 있었던 나의 14년간의 결혼생활보다 (지금처럼 스무 살 딸에게서 자비로움을 기대할 만큼 궁색 맞지는 않았던) 딸과 두 마리의 개 그리고 반려식물, 반려물건들과 나름 잘 살아가고 있는 지금 나의 가족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제목이 (그때보다 더) 완전한 가족이다.
전형적인 가족의 모습이 아니어도 괜찮다고, 개인이 가족에 매몰되지 않아야 한다고, 이혼을 했든 한부모가정이든 반려동물, 식물 혹은 물건과도 같이 씩씩하게 잘 살 수 있다고, 가족으로 인해 힘든 이들을 응원하고 싶었다. 실은 나에게 하는 주문과도 같은 글이었다.
초고는 거의 다 써놨고 후반부는 이혼 후 나의 홀로서기가 담긴 글이다. 그런데 어찌하다 보니 글 속에서 튕겨져 나온 상태가 되었다.
이젠 써놨던 글을 이어서 발행할 수가 없다.
지홍이와 나 뚜앙이 몽이를 데리고 가족사진을 찍는 게 올해 나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는데, 그 사진을 마지막 글의 이미지로 쓸 생각이었는데,
이제 그럴 수가 없다. 몽이가 죽었기 때문이다.
몽이가 죽고 나서 우리 집은 몇 가지 달라진 것들이 생겼다.
사료는 이제 5킬로짜리 대용량이 필요 없다. 동물병원에 전화해 우리 집에서만 주문한다고 했던 ㅇㅇㅇ사 저지방 사료 5킬로짜리는 이제 안 가져다 놓으셔도 된다고 말했다.
뚜앙이와 몽이가 같이 쓰던 큰 물그릇은 치웠다. 몽이의 밥그릇을 씻어서 물을 담아 뚜앙이 밥그릇옆에 놔주었는데 뚜앙이가 물그릇을 보더니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이상한 것이다.
"엄마 왜? 이거 몽이 밥그릇이잖아." 하고 묻는 것만 같았다.
오줌패드도 작은 걸로 바꾸었다. 몽이가 마지막까지 누워 있었던 바구니도 치웠다. 약통과 약을 먹이던 주사기도 정리했다. 이제 그리 많은 주사기가 필요 없다. 뚜앙이의 목줄은 가슴줄로 바꿔주었다. 혼자인 뚜앙이 산책은 그리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 이제 뚜앙이는 나와 매일 산책을 한다.
나는 두 번씩 했던 모든 걸 한 번만 하면 된다. 뚜앙이도 이제 개껌을 느긋하게 먹을 수 있다.
하지만 이젠 뚜앙이가 나한테 와서 내 무릎을 두 발로 치며 몽이가 물고 있는 개껌을 빼어달라고 조르는 걸 볼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