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죽음의 징조는 없었다.
몽이가 쓰러진 날처럼 그냥 보통의 저녁이었을 것이다. 사실 난 그날 저녁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날밤 내가 기타를 막 내려놨을 때 지홍이가 현관문을 열였던 것 같다. 귀에 익은 말이 들였을 것이다.
"응응 뚜앙아 알았어. 언니 가방 좀 내려놓고..."
녹음버튼이 눌러진 건 이때부터였다.
"엄마 몽이 왜 그래? 몽이 몸이 차가워."
나는 졸다가 깬 것처럼 벌떡 일어나 몽이 있는 쪽으로 갔다. 그리고는 빨강 쿠션을 깔아놓은 바구니 안에서 눈을 뜬 채 누워 있는 몽이를 들어 안았다.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촉감이었다. 이 온도가 죽음의 온도인지 나는 확신할 수 없었다.
수의사는 몽이를 살피더니 얼마 안 있다가 짧게 말했다.
"죽었어요 몽이."
"왜요? 왜 갑자기 이렇게 죽어요?"
"..... 몽이가 지난겨울 풍을 맞은 거잖아요. 기력이 다한 거죠.... 죽은 지 좀 됐어요..."
진료할 때와는 사뭇 다른 그녀의 말투은 가벼웠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 녹음버튼을 누르기 이전 시간을 떠올려 보았다. 갑자기 뒤죽박죽 섞여버린 내 기억을 믿을 수가 없어졌다. 지홍이가 들어온 시간은 9시 15분이었고 나는 보통 5시 45분쯤 집에 들어온다. 3시간 반동안 나는 무엇을 했을까? 몽이는 언제 죽었을까? 나는 그날 저녁 몽이가 살아 있는 모습을 보긴 한 걸까?
거북이처럼 기어 다니던 몽이가 다시 걷게 된 건 이른 봄날이었다. 앞다리에 힘이 생기면서 앉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뒤다리를 세우고는 휘청휘청 걷는 것이다.
나를 따라 집안을 가로질러 몇 번이고 걸었는데 그날 지홍이와 나는 너무 신기하고도 기뻐서 죽을 뻔했다.
몽이는 걷게 되자 다시 나를 쫓아다녔다. 앞발의 힘도 돌아오고, 비록 "멍"이 아니라 "꺄악"소리였지만 다시 짖게 되었다. 한 달쯤 지나자 예전의 날쌘돌이 몽이의 모습은 아니지만 쓰러지기 전과 비슷하게 돌아왔다.
달라진 건 나를 믿게 되었다는 거다.
그건 몽이 목욕을 시키면서 알 수 있었다.
개들 목욕을 시킬 때 뚜앙이는 얼굴에 샤워기를 갖다 대도 가만히 있는다. 그건 이 불편한 과정이 결국 안전하게 끝날 것이라 믿어서일 게다. 반면 몽이는 물을 좋아하면서도 목욕할 때 얼굴에 물 대는 걸 너무도 싫어했다. 코나 눈으로 물이 들어갈까 봐 두려운 거다.
나와 애착형성이 잘 안 되었던 몽이는 이 두려움을 번번이 이겨내지 못했다. 나는 최대한 이 과정을 빨리 끝내려고만 했고, 그 스피드는 몽이를 더 두렵게 했던 모양이다.
욕조에서 도망가고 샤워기를 밀어내고 그러다 샤워기를 놓쳐 난 물벼락을 맞고... 몽이를 씻길 때마다 한바탕 소동이 벌어져야 했다.
그러던 몽이가 언제부턴가 나를 믿으며 조금씩 얼굴을 내주기 시작했다. 두려움이 남아 있긴 했지만 애쓰고 있었다. 나는 몽이의 노력을 느낄 수 있었다.
또 혼자 말풍선을 만들며 낄낄대었다.
"엄마를 믿습니까?"
"믿습니다."
"할렐루야"
기적같이 느껴졌던 하루하루도 일상이 되어갔다.
나는 6개월 전과 똑같이 소주 한 병을 앞에 놓고 반려견 장례식장을 검색해 보았다.
몽이가 걷게 되자 집에 뒹굴던 반례견 장례식장 브로셔를 버려버렸다. 나의 구린 마음이 묻어있는 것 같아서다.
그 사이 변한 건지 기본형에 옵션 추가 형태로 장례식장마다 가격은 천차만별이었고 전화를 해보면 일단 화장 예약을 해놓고 자세한 건 와서 설명하겠다고들 했다.
얼추 잡아도 만만치 않은 비용이었다.
나는 남아있는 뚜앙이의 치료비와 죽은 몽이의 장례식 비용의 가치를 저울질해 보았다.
어디까지 해야 할까?
반려견을 어디까지 돌봐야 할까?
지난 10개월간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가니 내 마음이 심각해져서 개들을 보면 한숨이 나올 때가 많았다. 살랑살랑 가볍고 뭐 모르던 예전이 차라리 그리워졌다.
이젠 이불킥으로는 해소되지 않는 무지와 어리석음을 들추어 내봤자지만, 묵묵히 가기도 힘들었다.
그러다가도 하루종일 나를 기다리다 반기고 안기는 개들을 볼 때면 괴로운 행복이 느껴졌다.
얘네들은 천사일까 악마일까?
장례식장은 김포 안쪽 깊숙이 있었다.
입구 한쪽에 케이지, 쿠션, 이불들이 쌓여 산더미를 이루었다.
"슬프다"
지홍이 말을 듣고서야 나도 슬퍼졌다.
우리는 병원에서 준비해 준 종이관에 몽이를 데려와서 그곳에 버리고 갈 것이 없었다. 다행이었다 하나 더 올려놓고 가지 않게 돼서.
내가 간 곳은 기본장례에 화장비용과 기본 유골함이 포함되었고 거기에 추가하는 관이 기본형 10만 원부터, 별도의 유골함은 5만 원부터 수의는 10만 원부터 시작되었는데 상한가는 기억 안 나지만 입이 벌어질 정도였다. 요즘엔 메모리스톤이라 해서 유골을 압축해 돌처럼 만들어 반지나 목걸이로 간직한다고도 설명해 주었다.
몽이는 자기가 자는 곳에 들어가서 눈을 반쯤 뜬 채로 죽었는데 지홍이를 기다렸는지 현관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지막까지 눈을 뜬 채 관속에 누워있는 몽이는 이름을 부르면 당장이라도 일어날 것만 같았다.
관에 담긴 몽이에게 마지막 의식을 치른 후 몽이의 관은 불속으로 들어갔다.
화장 절차는 사람의 것과 동일했고 시간만 30분 정도로 짧았다. 화장이 끝난 후 유골을 수습해 유골함에 담아 주는 걸로 모든 절차는 끝났다.
장례식장을 나오는데 커다란 쿠션 위에 죽은 개를 안고 울며 들어오는 가족들과 마주쳤다. 나는 죽은 개보다 그 큰 쿠션이 눈에 들어왔다. 저 쿠션이 그 위에 하나 더 쌓이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차에 올라탔다.
내가 퇴근하고 현관문과 중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내 무릎언저리를 긁으며 나를 맞이 한 뚜앙이와 그 옆에 앉아있던 몽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뚜앙이를 쓰다듬고 몽이를 들어 안아 베란다로 나갔다. 분명 몽이를 안았었다. 꼬리 윗부분의 촉감이 기억났다.
내가 집에 들어왔을 땐 살아 있었다.
베란다로 간 나는 식물들을 살피고 물조리개에 3번 정도 물을 담아 화분에 주었다. 30분 정도 걸렸을 것이다. 베란다에 있는 의자에 잠시 앉아 정성하의 기타 연주곡을 들었다.
그때도 내 발밑에 몽이가 앉아 있었다.
그 후 주방에 있는 냉장고 앞에 몽이 것으로 보이는 똥을 보고는 그걸 휴지로 들어 올렸을 때 몽이가 옆에 앉아 있었던 것도 기억났다.
" 왜 여기다가 쌌어?" 라고 하자 몽이가 민망한 듯 고개를 돌렸다. 7시까진 몽이는 살아 있었다.
습관적으로 사료를 담아 주었을 것이고, 9시 반에 약을 먹일 때까지 나는 별 다른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날 나는 저녁을 먹고 식집사의 유튜브를 봤는데 그걸 보고 집안의 화분위치를 바꾸었다. 대략 8시쯤이었다.
몽이는 내가 저녁을 먹을 때쯤 죽은 것 같다.
그 순간을 혼자 있게 내버려 둔 것이 너무 미안했다.
지홍이 때문에 태어나게 한 것도...
잘해주지 못한 것도...
날짜를 헤아려보니 몽이는 처음 쓰러지고 정확히 6개월을 더 살다 갔다.
그렇게 내 옆에 더 있어준 것이,
다시 걸어준 것이,
내 마음을 알아준 것이,
고마웠다.
"잘 가렴 몽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