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한 번 안아 줄걸..... 오늘 늦게 일어나서 몽이 얼굴도 못보고 그냥 나갔단 말이야 흐흐흐."
몽이가 죽었다는 수의사 말을 듣자 지홍이가 꺼이꺼이 울며 한말이었다.
나도 그랬다. 며칠 전 산책을 나갈까 말까 하다가 관둔 게 못내 마음에 걸렸다.
핑계지만 개 두 마리를 혼자 산책시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몽이는 산책을 할 때 15분 정도 지나야 비로소 전진이라는 걸 한다. 그전에는 갈 지자로 왔다 갔다 해서 두 개의 개줄이 엉키지 않으려면 나는 줄을 뛰어넘고 돌기도 해야 한다.
둘 중 한 마리가 똥을 쌀 때면 상황은 더 험난해진다. 싸는 개, 앞으로 가자는 개 그리고 벌려지지 않는 비닐봉지까지. 하지만 그 정도는 잠시 내 스타일이 구겨질 뿐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일단 나가기만 하면 말이다.
난관은 집을 나서는 데 있다.
두마리의 목줄을 채우는 일이 가장 큰 난관이다.
한 마리 목줄을 채우려고 하면 서로 자기가 먼저 차겠다고 머리를 디민다.
"기다려" 라는 말이나 간식으로도 통제가 안 되는 개판이 된다. 몽이가 쓰러진 것도 이런 순간이었다.
하나를 방에 가두고 해보기도 했다. 자기 혼자 두고 나갈까 봐 문을 박박 긁는데 잠시지만 그것도 못할 짓이었다.
궁여지책으로 생각해 낸 것이 목줄을 늘 채워 두는 거였다. 재빨리 고리만 걸면 돼서 그 혼돈의 시간을 줄일 수 있었다.
개들의 산책은 늘 내게 숙제 같았다. 몽이가 쓰러지기 전에는 뚜앙이 하나면 우아하게 산책도 자주 할 텐데... 하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몽이가 죽고 나서 나는 내 말을 지키기로 마음먹었다. 미안함이 남아 있을 때 매일 저녁 뚜앙이와 산책을 하는 것을 습관으로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살아보니 변화해야 할 시점이 있다.
이사를 해서 주거환경이 바뀔 때, 이직을 해서 업무과 일하는 환경이 바뀔 때, 아프거나 다쳐서 몸상태가 달라졌을 때, 그리고 큰 사건으로 감정이 크게 움직였을 때이다. 이때 습관을 바꾸면 효과가 크다.
지금 바꾸지 않으면 바뀌지 않을 것이다.
매일 저녁 뚜앙이와 산책을 다녀와서 가볍게 목욕을 시켰다. 뚜앙이 속내는 어떤지 모르지만 뽀송뽀송한 털에 비누냄새가 나는 뚜앙이는 전보다 나아 보인다. 이제야 다른 집 개들처럼 살게 된 것이다.
불가 한 달 전 일인데 뒤를 돌아보면 아득하게 느껴지면서 몽이의 부재도 점점 일상이 되어 갔다.
몽이 얘기가 있는 지난 일기장을 읽어 보았다.
3월 20일 제목은 <삶이 감격스럽게 느껴진 날>이었다.
그날의 감정은 유독 기억이 났다.
볕이 좋은 이른 봄날 일요일 오후였고,
베란다에서 보는 일몰이 너무도 아름다웠다.
뚜앙이와 몽이는 내 무릎에 앉아 쉬고 있었다.
그 순간 충만한 감정이 느껴졌다.
뚜앙이 몽이 모두가 죽을 고비를 한차례 씩 넘기고 이렇게 평온한 시간을 우리가 함께 할 수 있음이 감사했다. 울컥해서 눈물도 났다.
사춘기소녀도 아니고 기껏 개들과 지는 해를 보며 감격해서 울었다는 게 좀 오글거리고 웃기다고 생각했던 기억도 났다.
그런데 그 별 거 아닌 일상이,
늘 있을 것만 같은 그날의 감정이 지금 생각해 보니
매우 특별한 것이었다.
처음이었고 그게 마지막이었다.
삶에서 소중한 순간들은 대단히 거창한 것이 아니라
이렇듯 늘 할 수 있는 것들이리라.
그리고 마지막은 언제든 예고 없이 올 것이다.
그러니 미루지 말자.
할 수 있을 때 기꺼이 하며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