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이는 의식이 또렷해요

by 시현

지홍이가 내 옆에 막 누은 듯했는데 몽이가 낑낑대는 소리가 들렸다. 지홍이가 나를 깨웠다

" 엄마, 몽이한테 물도 줘보고 안방(배변) 패드에 올려놨는데도 계속 낑낑대기만 해."

나도 잠결에 다른 방법이 생각나지 않아 지홍이가 한 것을 다시 해보았다. 침대에 올려놓고 쓰다듬어 주었는데도 계속 낑낑대기만 했다.

혹시나 해서 거실로 나가 거실 배변패드에 올려놓았다.

그랬더니 거기에다 오줌을 싸고는 안방에 데려오자 조용히 자는 것이다. 몽이는 거실패드에서 오줌을 누고 싶었던 거였다.


2주 전 응급실에서 데리고 나와 동물병원에 갔을 때 몽이는 사람으로 치면 식물인간상태였다. 몸뚱이와 다리는 강직과 경련이 있어 움직이지 못했다. 고개도 자유롭지 못했고 입도 벌릴 수 없으며 아무런 소리도 낼 수없는 듯했다. 숨만 쉬고 눈만 깜박였다.

나는 이런 상태의 개를 본 적도 주위에서 들어 본 적도 없어서 죽은 거와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동물병원 수의사는 몽이의 상태를 달리 말했다.

"몽이는 의식이 또렷해요."

몸과 분리된 개의 의식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난 달리 물었다.

"의식이 또렷하지 않으면 어떤대요?"

"반응이 없어요. 눈빛에 초점도 없고 허공만 보져"

"....."

"몽이는 모든 걸 다 반응해요. 의식이 아주 또렷해요."

말은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차이 이해되지 않았다.

의식이 있어도 눈만 움직일 수 있다면 의식 없는 상태와 뭐가 다르단 말인가? 그것도 사람이 아니라 개다.

그때 나는 아무것도 움직일 수 없는 개의 의식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




몽이가 살아서 다시 집에 돌아오게 되자 지홍이와 나는 몽이가 다시 새끼로 태어난 것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몽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고 몽이도 그걸 느끼고 있는 듯했다.

몽이가 우리의 마음을 알아차린 것도, 우리가 몽이의 그 알아차림을 알아차린 것도 다 의식 때문이었다.


그날부터 몽이는 살려고 애쓰는 듯 보였다.

퇴원 후 처음엔 입이 벌려지지 않아 굶다시피 했다. 그러다가 지홍이가 몽이 입을 조금이라도 벌릴 수 있는 자세를 알아냈고 겨우 죽 같은 사료를 조금 먹을 수 있었다. 그다음 날부터 퇴근하고 오면 아침과는 다르게 누워 있었다. 그리고는 아주 조금씩 굼벵이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며칠뒤 이름을 부르자 몽이는 고개가 천천히 움직였다. 똥을 눈 건 5일 만이었는데 처음에 우려했던 그런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


일주일이 되던 날 몽이는 소리를 냈다.

자기 딴에는 짖는다고 내는 소리인 듯했지만 일반적인 "멍멍"과는 거리가 한참 있는 괴성에 가까웠다.

그래도 소리를 낼 수 있게 되자 욕구와 감정을 표현했다.

배고프니 밥을 달라는, 오줌이 마렵다는,

목이 마르다는, 나 혼자 두지 말고 나도 데려가라는, 가지 말고 같이 있어 달라는 표현도 다했다.

어젯밤처럼 나는 거실패드에 오줌을 누겠다는 표현도 말이다.


이틀 전부터 조금씩 이동하기 시작했다.

다리를 펴서 서지 못하지만 마치 거북이처럼 아주 천천히 움직였다.

내가 퇴근하고 현관에 들어오면 뚜앙이가 뛰어와 내게 안기고 안방에 있던 몽이가 기어 나오기 시작한다. 한 오만 년이 걸린다. 기다리고 서 있으면 마침내 몽이가 내 발 밑에 와 있다. 아프기 전에는 날라다녔던 몽이였다.


물론 이 모든 변화는 여러 약물 치료 덕분이라 할 것이다. 개들은 몸에 농이 퍼져 죽기도 하고 농을 제거하면 말짱하게 살아나기도 한다.

약반응도 빠르고 회복도 빠르다. 사람의 1년이 개들에게 7년이라고 하는데 시간뿐 아니라 모든 게 7배씩인 듯싶었다.


하지만 나는 이 모든 변화가 몽이에게 있는 의식의 힘이라 생각한다. 의식은 욕구를 만들고, 구는 감정을 갖게 하며 행동해야 할 이유를 끊임없이 공하기 때문이다.

의식은 기억을 끄집어내어 자기 고유의 스타일과 고집도 가능하게 한다.


수의사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몸은 저래도 몽이의 의식은 또렷해요."


어쩌면 몽이는 다시 걸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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