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은 우리를 모아놓았다

by 시현

크리스마스날 아침

불타는 이브를 보내고 새벽에야 집에 기여 들어온 지홍이는 해가 중천에 뜨도록 자고 있었다.

나는 혼자 산책을 나섰다. 한 낮임에도 기온이 차가웠는데 볕이 좋아 걸을만했다. 얼어붙은 저수지위에 며칠 전 내린 눈이 그대로 쌓여 있었다.

오는 길에 빵집과 마트에 들러 시폰케익 하나와 딸기, 생크림, 치즈와 와인을 사 왔다. 케익을 만들며 크리스마스 저녁을 보내기 위해서다.

언제부턴가 크리스마스에는 지홍이와 케익을 만들었다. 별거 없다. 시폰케익을 사다가 휘핑한 생크림을 바르고 그쯤이면 나오는 딸기로 데코레이션을 하는 게 전부다. 단순하지만 제법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집에 들어오니 오후 햇살이 남아 있었다. 환한 볕이 드는 안방 침대 위에 몽이를 안아 눕혔다. 햇빛을 너무도 사랑했던 몽이였다.

"몽이야 햇님이가 왔네 햇님."

몽이가 제 앞에 비친 을 보고도 눈만 껌벅껌벅하고 있는 걸 보니 마음이 짠했다.

오후햇살이 집안에 들어오면 벽에 아지는 빛을 잡으려고 몽이는 고 핥고 그랬다. 그러다가 장마철이 되면 벽을 쳐다보고 "끄응"하며 햇님이를 기다렸던 몽이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몽이가 쓰러진 지 일주일이 되었다.

뚜앙이가 짖어대고 있지만 우리집은 고요해졌다.

꽹과리가 빠진 사물놀이같다고 할까?

아침저녁으로 바닥에 말라붙은 오줌도 사라졌다. 지난주에 사 온 사료는 아직 반도 줄지 않았다. 몽이에게 했던 내 잔소리는 사랑스러운 말로 바뀌었다.

대신 아침저녁으로 둘의 약을 챙겨 먹여야 해서 아침이면 나는 분주해졌다.

몽이는 목도 마비가 돼서 주둥이가 벌려지지 않아 차수저로 젖은 사료를 아주 조금씩 먹여야 했다. 몽이의 아침밥을 먹이는 건 지홍이가 맡았다. 몽이 밥을 먹이고 나면 힐링이 된다 했다.


움직일 수 없는데도 몽이는 자기가 누워있는 곳에 똥오줌을 싸진 않았다. 또 낑낑대는 소리가 나서 가보면 뭔가를 표현했다. 물을 주면 목말랐다는 듯 물을 먹고, 배변패드에 올려 놓으면 오줌을 누었다

제법 싸인이 잘 맞아 몽이가 전혀 움직이지도, 짖을 수 없어도 필요한 걸 해 줄 수 있었다.


뚜앙이는 이제야 몽이의 변화를 알아 차린 것 같았다.

몽이에게 무슨 소리가 나면 제일 먼저 달려가고 눈에 보이지 않으면 한 번씩 가서 보고오곤 했다.

뚜앙이는 평소대로 발랄했다. 자기 새끼가 반신불수가 되었다고 하늘이 무너지진 않는 듯했다.

생각보다 우린 잘 해내고 있었다.




해가 중천을 지나 곧 저물 시간이 되어서야 지홍이는 일어났다. 나는 이른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

시폰케익을 돌림판에 올려 지홍이에게 건네주었다.

휘핑크림과 휘핑기도 같이 건네 주자 지홍이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익숙하게 휘핑을 친다음 빵에 바르기 시작했다. 그동안 나는 파스타를 만들고 피자를 구워냈다.

지홍이는 생크림을 빵에 두텁게 골고루 발랐으며 딸기데코레이션도 잘했다.

우리는 사진을 찍고 먹기 시작했다.


저녁을 다 먹고 지홍이가 바닥에 앉아서 몽이를 무릎에 올려놓았다. 그러자 뚜앙이는 어디서 털머리끈을 물고 와 지홍이한테 장난을 걸었다. 물고 뺏고 던지고 다시 물고 와 당기고... 둘이 노는 모습을 난 흐뭇하게 보고 있었다.

그때 무릎에 있던 몽이가 갑자기 크게 소리를 냈다. 짖는다기보다 괴성에 가까웠는데 쓰러진 이후 처음 내는 소리였다. 우린 짝 놀라 눈을 마주치고는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몽이야 너도 놀고 싶었어?"

"놀고 싶대"

몽이는 한번 더 힘겹게 짖었다. 우리는 또 놀랐고 까르르 웃었다.

나와 지홍이 그리고 뚜앙이까지 몽이를 둘러싸고 들여다 보았다. 몽이의 눈이 촉촉해졌다

"엄마, 몽이 눈물이 나나 봐"

이제까지 볼 수 없는 눈빛이었다. 이제까지 느끼지 못했던 감정을 느낀 것이다.

우리 모두가 그랬다. 그 순간 정말 우리가 가족인 것처럼 느껴졌다.


두번의 시련의 파도는 부서지며 우리를 통과했다. 아무도 사라지지 않았다.

시련은 다시 우리를 모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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