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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현 Oct 09. 2023

조리사의 한글 가르치기

앞치마 활용법

요즘은 아이가 한글을 일찍 깨치는  대놓고 자랑하는 엄마는 없는 듯하다.

자연스럽게 글을 받아들이기를 바라지만,

그래도  시기가 언제인첫 아이라면 궁금할 것이다.

아마도 글 모르는데 글을 읽고 싶어  때가 아닐까 싶다. 우리 원의 6세 반 아이들처럼.



조리사인 나는 흰 조리복에 모자를 쓴다. 조리복은 급식관리지원센터에서 지원되는 물품이므로 내가 개인적으로 구입하지 않아도 된다.

간지 나지 않는 복장 때문에 급식조리사가 싫었던 나는 앞치마로 나만의 차별화를 두었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글자를 수 놓아주는 앞치마를 파는 곳이 있었는데 거기서 두 개를 주문하여  

"얘들아 밥 먹자" 그리고 "얘들아 사랑해"라고 수를 놓아달라고 했다.  그 옆에 수저포크와 하트모양의 수까지 부탁하니 정말 예쁘게 놓아주셨다.


이 글씨로 아이들과 한글공부를 시작하다


나는  앞치마를 번갈아 입고 매일 아이들의 밥을 하고 아이들을 만난다.

그즈음이 이었다. 봄 중에서도 연둣빛 초록이 온 땅을 덮을 무렵이었던 것 같다.

6세 반에 교실에 갔더니 지아가 내 앞치마에 쓰여 있는 글씨를 보고는 손가락으로 짚으며

"조  사 선  님"

이라고 읽는 듯 말하는 거다.  옆에 있던 오승이가 "아니야, 조     마"

하다가 글자수가 안 맞으니 헤헤 웃었다.


(우리 원의 모든 아이들이 나를 조리사님 또는 조리사선생님이라 부른다. 보통은 얌얌선생님 또는 발음이 쉬운 사물이름을 붙여 부르는데, 내가 이름을 고르고 고르는 동안 아이들이 먼저 적응해 버렸다. 발음이 어려운대도 4세 아이들까지 조리사님이라고 정확히 불러준다.)


이때부터 6세 반아이들과 한글 읽기놀이를 하였다.

"애  아 밥  " 한 자 한 자 짚어가며 알려주고

"힌트는 수저포크야"

다음날은

"얘  아 사  "

"선생님 마음이야. 힌트는 하트 알겠지?"

아이들은 손가락을 짚어가며 읽는 걸 재밌어했다.

이날 이후 아이들은 나와 마주치앞치마의 글씨읽어냈다. 실은 틀린 적이  더 많았다.

6세는 따라 하는 걸 너무도 좋아하는 시기라 한 명이 읽으면 모두들 손가락으로 내 앞치마의 글씨를 읽고 가곤 했다. 

아는 글자 몇 개만 있으면 말을 만들어 엉터리로 읽기도 했다. 손가락을 짚으며 말이다.


평소 말수가 적줍음이 많은 시은이가 내 분홍색 앞치마를 보더니 자신 있게 손으로 짚으며 읽어갔다.

 "얘 들 아 밥 먹 자"

아이들 몇 명이 또 따라 읽었다. 아이들의 표정에 똑같이 자신감이 묻어 있었다.

 반 샘과 나는 키득대며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아침에 입었던 베이지색 앞치마에 뭐가 묻어 분홍색으로 바꿔 입었는데도 아침과 똑같이 읽는 것이다.


복도에서 만난 7세 반 시우가 내 앞치마를 보더니 시시한 듯 한 번에 읽어 냈다.

"아들아 사랑해?"

이중모음이 아직 다 안 됐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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