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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현 Oct 18. 2023

원감의 언어

고구마맛탕과 팥죽

"여보세요, 네에 뭣 좀 여쭤보려고요... 저희가 A-003 제품 12일까지 받아봤으면 하는데 배송이 그때까지 가능할까요?"

".... 아 네에... 그러니까 그 상품은 추석배송 때문에 지금 주문하면 어려울 수도 있다는 말씀이지요?"

"네 그렇지요... 그날 꼭 받아야 저희가 다음날 쓸 수가 있거든요. 네네... 아 출고는 가능한 배송 때문에 백 프로는 장담할 수가 없다는 말씀이네요. 아 네 그럼 배송가능한 다른 상품을 사이트에서 찾아보고 다시 전화드려도 될까요? 네... 네...

오늘 4시까지만 출고가 가능하다고요? 그럼 저희가 상의해서 4시 전까지 주문하면 가능하겠지요?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확한 발음과 신뢰감이 드는 목소리에 버벅거림 없는 유창한 말솜씨는 원감의 주특기이다.

그녀는 누구든 말로 설득시키거나 제압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다.


처음엔 그녀가 대화에 능하고, 소위 말하는 일잘러인 줄 알았다. 그런데 점점 이상했다.

분명 흠잡을 때 없이 또옥 떨어지게 하는데 그녀와 일을 하면 단순한 일도 번번이 꼬였다.



한 번부모 재능기부 때 카페를 하시던 어머니 한분이 이들과 크로크무슈를 만드는 요리수업을 하기로 했었다. 식빵에 햄과 체다치즈 모차렐라치즈를 올려 오븐에 굽는 비교적 쉬운 요리이긴 했지만, 50개를 오븐에 구워내는 건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내겐 미리 말도 하지 않았었다.


그녀는 인터넷에 나온 레시피에 한 개당 조리시간 2분 30초라는 것만 갖고 두 개씩 구우면 25번이니 얼추 한 시간 정도로 계산을 했던 것이다.

실제로 두 개를 구웠을 때  분이 걸리는지 테스트해봐야 하고, 꺼내고 넣고 하는 시간도 리는데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던 거다.

그 시간은 내가 오후간식을 만드는 시간이었다. 좁은 주방에서 나와 동선이 겹쳐서 애를 먹었다. 

결국 내가 다 할 수밖에 없었고, 끝나고서야 엉망이 된 주방을 보며 그녀는 순진한 표정으로 말했다.

"2분 30초면 된다 해서 금방 될 줄 알았죠..."


나는 그 후로 그녀의 지능을 페이퍼 지능이라 여기고, 노가다 지능으로 계산해서 매번 풀어 설명해 주었다.



그 후에도 그녀의 엉성함은 여러 곳에서 발견되었으나, 그래도 학부모와의 통화나 업체와의 대화에서는 아나운서 같은 말투로 야무지게 말을 해냈다.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저렇게 야무지게 말을 하고도 매번 성한 결과를 낸다는 게.

그러다가 그녀의 전화통화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우리의 일반적인 전화통화는 옆에서 들으면 이해가 때가 많다. 

.... 어... 어... 그렇지.... 그거지... 니가 말한 대로만 된다면.... 그러니까 그냥 거기서 만나...

이런 식으로 대화의 반쪽만 들을 수 있고, 당사자들이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은 대명사로 처리하거나 생략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통은 내용을 머릿속으로 생각하느 말에 많은 에너지를 쓰지 않는다. 콜센터직원이 아니라면 말이다.

업무상 상대방에게 설명해줘야 하거나 다툼의 소지가 없도록 중요 부분을 강조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그런 걸 감안하더라도 그녀가 전화기에 대고 하 말은 내용너무도 완벽했다.


의문이 들었던 나는 그녀의 전화통화 유심히 들어 보았다. 사적인 통화에서는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주변에 사람이 많을수록 특히 원장이 있을 때 유독 그런 현상이 심했다.




원감의 대화방식에는 특징이 있다. 바로 질문이다.

교사실에서 여럿이 점심을 먹을 때 자신이 좋아하는 반찬을 더 먹고 싶으면 나긋하게 내게 묻는다.

"조리사님 이 샐러드 더 없어요?"

"이 나물  더 없어요?"

"상추 더 없어요?"

"고구마맛탕 안 묻힌 거 없어요?"

"국물 더 없어요?"


"... 없어요..."

몇 초의 어색함과 난처함이 느껴진다.

사람은 보통 "없어요"라는 부정적 대답을 꺼리는 심리가 있다. 없는 걸 없다고 하는 순간 말이 주는 궁색함이 마음까지 미치기 때문이다.

이럴  "없어요"가 아니라 그냥 "네"라고 대답하면 된다. 그녀의 질문이 요구란 걸 알지만 언어로만 처리하는 거다.

"조리사님 이 샐러드 더 없어요?"

"네"

이제 어색함난처그녀에게로 가게 되어 있다.

밥을 먹으며 하는 그녀의 질문이 많이 줄었다.




패턴은 읽힌다는 걸 그녀는 모르는 듯하다.

지난겨울 동짓날 팥죽을 끓였다. 전날 팥을 불리고 다음날 살짝 삶아 떫은맛을 다음 찹쌀을 넣고 오래오래 삶아냈다. 그 자체도 고소해서 있지만 갈색설탕을 조금 넣어 달달맛이 있어야 아이들은 좋아한다.

간을 보니 적당히 달고 맛있었다.

아이들 것을 내주고 원장과 원감도 갖다주었다.

두어 숟갈 먹던 그녀가 또 질문을 했다.

"조리사님, 팥죽에 설탕은 언제 넣나요?"

"왜요?"

"설탕을 안 넣은 건 없어요? 나한테 너무 달아요.... 다음에 할 땐 설탕을 넣지 말고 각자 넣어 먹을 수 있게 하면 좋겠어요... 아이들은 달달해좋아하겠네요."

나는 그녀에게 배운 대로 질문을 했다.

"누굴 위해서요?"

"호호호 그러고 보니 저를 위해서네요..."

그녀는 민망한 듯 웃으며 대답했다.

"이건 아이들 간식이에요. 그냥 드세요."


아이들이 좋아하는 달달한 맛탕과 팥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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