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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현 Nov 17. 2023

어린이집 왕국에서 나는 범법자가 되었다

원감과 조리사의 격돌 2

원감과 나는 원장 앞에 나란히 앉았다.

평소 차분한 대화를 원내 분위기삼아왔원장이니 이틀 전 일에 대해 한소리  거라 예상은 했었다.


원장은 대화를 강조했다.

조용히 대화로 풀어야 했는데도 어린 교사 앞에서 감정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그 시간은 아이들이 있는 시간이어서 혹시나 들었다면 아동학대 소지가 있다고도 했다.

그런 걸 지도해야 할 원감이 그 행동을 했다는 것은 넘어갈 일이 아니라며 살을 붙여 길게 얘기했다.


매사에 차분한 대화로 갈등을 풀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나는 생각해 보았다.

대화와 대화 아닌 방법, 

이 두 가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

대화가 항상 자신한테 유리하게 끝나는

실은 허리에 찬 총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원장의 긴 설교 말미에 나온 말은 뜻밖이었다.

".... 원감은 30프로 조리사님은 10프로 이달에 감봉할 거고요. 이의신청은 오늘까지 하세요."




이틀 전 교사실에서 나와 퇴근하려는 나를 원장이 불러 세워 얘기 좀 하자 다.

내게 자신도 정신이 없어 현장학습얘기를 미리 전하지 못했다고 시인했다.(나는 원장에게 감수과정을 3번이나 보고했었다) 원감의 신경질적인 말투에 자기도 좀 놀랐다고도 했다.

나는 원감을 조심스럽게 고자질했다.

전달사항이나 변경된 것들을 미리 말해주지 않아서 몇 번씩 일할 때가 많다고,

휴지나 세제 같은 소모품 구입도 제때 해주지 않아 늘 세네 번씩 같은 말을 해야 한다고,

일 자체보다 이런 과정에서 업무스트레스가 싸인다고 했다.

원장은 원감이 그런 면이 있다고 수긍했다.

원감의 약점은 원장에게도 지분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 내 토로가 원장의 불쾌감으로 연결되지 않는 선까지만 해야 했다. 

현장학습 도시락은 최대한 간단한 걸로 준비만해주자기가 한다고 하길래, 사실 조리가 힘든 게 아니라도시락은  테니 걱정 마시라 했다. 

나를 배웅하며 원감을 따로 불러 얘기하겠다고 했다.




"... 이의는 있는데요... 지금은 오후간식을 해야 해서.... 이따가 말씀드릴게요."

주방에 들어온 나는 멍해졌다.

감봉이라니...

이 순간을 내 생각 어디쯤에 꽂아놓아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새로운 국면의 예감으로 받아들여야 하는지,

고비나 시련으로 처리해야 하는지,

끝을 알리는 신호로 해석해야 하는지...



퇴근시간이 되었다. 

타이핑을 하고 있는 원장이 보였다.

원장의 말대로 이의신청을 해야하는 시간이었다. 원점에서 다시 얘기를 시작해 시시비비를 가리든, 지면으수긍할 수 없다고 표현하모두 에너지가 많이  일이었다. 

다음날 아침부터 치러질 행사 일정이 떠올랐다. 

나도 원장도 이틀을 내달려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일단 이틀연속 행사는 끝내자, 끝내 놓고 얘기하자. 나는 원장을 지나쳐 말없이 어린이집 문을 나섰다.


문득 내가 나온 곳이 왕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이집 왕국....

여기에 오면 어린이집 왕국의 문화에 따라 그 언어로만 말해야 하며, 그걸 어기면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한다.

나는 졸지에 어린이집 왕국에서 범법자가 되었다.




평소대로 오전 오후간식과 점심을 하고, 30여 명의 저녁식사에 음날 쓸 도시락재료까지 준비해 놓고 나니 퇴근시간이 조금 지나 있었다.

하루종일 마음은 복잡했지만 순진한 몸이 우직하게 해주었다.


다음날 출근해서 쌀을 씻고 있으니 원에서 아이들과 자고 있던 원장이 부스스 일어나 컵과 접시등을 들고 주방으로 왔다.

전날밤 몇몇 아이들은 늦게 잠들었을 것이고, 들도 잠을 을 것이다. 애고 어른이고 모두 피곤해 보였다.

작년에는 캠프 다음날 아침에 아이들에게 감자수프를 끓여 모닝빵과 함께 주었는데, 올해는 현장학습 때문에 간식 먹을 시간도 없다고 했다.

하루종일 돌아다녀야 할 텐데 아무래도 이건 무리인 듯싶었다.


지난번 나와 둘이 얘기할 때 원장은  현장학습은 원래 계획에 없었다고 했다. 이달의 주제가 공룡이라 그것과 연계시키면 좋겠다 싶어 공룡박물관 견학을 급히 잡다 보니 그리되었다고 했었다.

원장의 열정이 시초가 된 것이다.



닭살카레볶음밥과 핫도그, 사과주스, 김치가 원장이 제안한 메뉴였고 그대로 도시락을 싸 주었다.

그날 이후 원감과는 냉랭해졌지만 그녀와 나는 그런 냉랭함에 익숙했다. 

"저녁준비해 놓고 좀 일찍 가도 되죠?"

현장학습날은 일찍 나와 도시락을 싸주고는 저녁을 해놓고 한두 시간 일찍 퇴근하곤 했었다.

"몇 시에 나오셨지요?"

"7시쯤."

"그럼 4시에 퇴근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날의 앙금이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원장이 짐을 챙겨 나서면서 눈을 찡긋거리고는 입을 과장되게 움직였다. 일찍 가라는 말이었다.



나는 할 일을 다해 놓고 원장에게 편지를 써서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3년일하며 느낀 소회가 담긴 이의신청의 글이었다.

대화의 주도권을 내주지 않는 원장에게 내 생각을 끊기지 않고 전달할 방법은 이것밖에 없었다.



아이들과 샘들은 4시쯤 모두 지쳐서 돌아왔고

나는 인사를 하고 정확히 4시에 퇴근하였다.


그날 나는 일기에 이렇게 썼다.

".... 나는 내 할 일은 다 했고,

비겁하지 않았으며, 약속은 지켰다.

나는 당하지도 누구를 해하지도 않았다. "


그런데 어린이집 왕국에는 그리 순진한 사람들이 있는 곳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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