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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현 Oct 29. 2023

난 요리사지 마법사가 아니야

바질페스토와 방울토마토

올 해는 비가 많이 왔는데도 어린이집 앞에 심어놓은 바질이 잘 자랐다. 간간이 따다가 스파게티소스나 토마토마리네이드를 만들 때 넣었었다.

바질은 일 년생이라 노지에서는 7월쯤 잎을 다 따고 내년에 다시 심어야 한다.  두면 잎이 질겨지고 쓴맛이 나서 쓸 수가 없다.

무성하게 자란 바질잎을 보니 양이 제법  보였다.

저 정도면 바질페스토를 만들기에 충분했다.

저녁을 서둘러해 놓고 바질을 따러 나갔다.


중천까지 솟았던 해가 기울어 아파트 건물 뒤로 넘어가자 그늘진 땅은 기꺼이 아이들의 놀이터가  주었다.

만두샘이 아이들과 줄다리기를 하고 있었다. 만두샘은 해 우리 원에 온 남자 보조교사이다.

나의 인기를 능가할 만큼 아이들이 좋아한다.


어린이집은 금남의 집이 아닌가 할 정도로 여성인력이 대부분이다. 초등학교도 남자선생님이 부족해 남자아이들의 부모들이 불만이 있다고 하는데 그에 대한 뾰족한 대안은 없어 보인다.

어린이집의 경우는 더 하다. 보육은 여성의 일이라는 편견이 있어서 아직은 남성의 고용비율은 현저히 낮다.

나도 처음엔 20대 중반의 청년이 아이들을 어떻게 돌볼까 었다. 근데 정말 편견이었다.

보육이 여성의 타고난 기질이 아니라 교육으로 가능한 기술이고,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은 갈고닦아지는 것임을 깨달았다.


이런 심각한 얘기가 실은 필요 없다.

아이들은 남자샘의 힘과 활동성을 너무도 좋아한다.

오후가 되면 아이들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만두샘의 존재감도 커진다.

여러 명의 아이들이 동시에 매달리기도 하,

줄다리기나 공놀이 하며 아이들에게 남아 있을 체력을 다 소진시켜 주는 만두샘은

엄마들한테도 고마운 존재일 것이다.



만두샘이 밧줄 한쪽을 잡고 반대쪽에는 열명정도의 아이들이 나란히 매달려 있었다. 가만 보니 만두샘은 힘조절을 하며 아이들의 승부욕을 점점 돋우는 듯했다. 아이들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온 힘을 다해 줄을 당겼다.




한참을 지켜보다 텃밭으로 가서 바질을 따기 시작했다.

"조리사님 지금 뭐해요?"

멀리서 엄마와 원을 하던 도현이가 나를 보더니 물었다.

"어 바질을 따고 있어. 이걸로 바질페스토를 만들 거야. 좀 도와줄래?"

도현이가 고개를 들어 엄마를 쳐다보다가 나를 향해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어딘가를 가고 있었던 모양이다.

"괜찮아 샘 혼자 할 수 있어."

거리가 조금 떨어져 있어 엄마와는 고개만 서로 까딱하고 도현이는 엄마와 함께 가던 길을 갔다.


나는 마저 바질을 땄다. 따온 바질잎을 물에 가볍게 씻어내고, 캐슈넛과 파마산치즈 마늘 올리브오일을 넣고 믹서에 갈아 바질페스토를 완성했다.

주방이 바질향으로 가득 찼다. 



"조리사님 오늘은 도와줄 수 있어요."

어제 일이 마음에 걸렸는지 도현이가 나를 보자 말했다.

"그래? 근데 샘이 어제 다 만들었어 바질페스토."

"....."

"이따가 한번 먹어볼래?"

"네."


그날 오후 간식은 잼샌드위치였다. 

잼샌드위치는 식빵을 마른 펜에 살짝 구워서 기잼을 발라주는데 아이들이 좋아하는 간식 중 하나다.

그날은 바질페스토에 올리브유를 넣어 따로 담아 내주며 혹시 먹어보고 싶은 아이들은 줘 보라고 샘들께 했다.

어른도 호불호가 있는 바질페스토를 아이들이 좋아할 리가 없다.

"윽 맛이 이상해요." "냄새가 지독해요." "똥맛이에요.".....

그런 바질페스토에 호기심을 보이는 아이가 하나 있었는데 바로 도현이였다.

입맛이 까다로운 녀석이 용감하게 빵을 찍어 먹고 있는 것이다.


도현이는 표현을 잘하는 아이였다. 전에

"너무 맛있어서 이걸 먹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어요." 

이 말로 나를 심쿵하게 했었다.

바질페스토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는지 먹는 내내 오묘한 표정을 지으며 맛있다고만 했다.



도현이가 바질페스토를 맛있게 먹은  어제의 일과 무관하지 않아 보였다.

내가 바질잎을 따는 걸 직접 보았고 그걸로 뭔가를 만든다는 얘기를 들었으며 그 바질페스토를 직접 접하며 순차적으로 경험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스토리가 있어서다.

내가 아이들에게 주고 싶은 그 작고 즐거경험이 이런 것이다.

스토리는 음식을 담는 그릇이고 아주 좋은 양념이다.


하지만 부작용도 있었다.

며칠 후 도현이가 담임샘과 주방에 찾아왔다.

두 손방울토마토 다섯 개를 내게 내밀며 말했다.

"이걸로 맛있는 거 만들어 주세요 조리사님."

"....."

"오늘 아이들이랑 생태활동에서 방울토마토를 땄는데

조리사님 갖다 주면 알아서 맛있는 걸 주실 거라는 거예요."

샘과 나는 어이없이 웃었다.

"도현아, 난 요리사지 마법사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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