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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현 Oct 11. 2023

부담임이 조리사?

떡볶이와 닭칼국수

9시 반이 되면 오전간식을 담은 카트를 밀고 복도로 나간다.

어린이집의 간식과 급식은 보이지 않는 시간을 물리적으로 가르는 역할을 한다.

"얘들아 이제 정리하고 간식 먹을까?"

담임샘의 말에 아이들은 하던 놀이를 정리하며 다른 시작을 알게 된다.

복도에서 나와 마주치는 6,7세 아이들이 오늘의 간식을 내게 묻는다.

나는 문제로 낸다.

"노란 껍질의 과일인데 안에 씨가 들어 있고 두 글자야."

"망고" "망고"... "망고!"

(여기서 "어?"소리가 나왔다면 나이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아이들은 대부분 망고라고 대답했다.

바트에는 참외가 들어 있었다.

 ..... 아! 망고가 있었구나.....

나는 할 말이 없어졌다.

예준이가 다가와 바트뚜껑을 살며시 열었다.

"? 참외네..."


사과는 자주 나오는 과일이라 만한 말조합은 이미  해버렸다.

"ㅇㅇ같은 내 얼굴 예쁘기도 하지요."

이젠 노래까지 불러야 한다.

"사과" "사과" "사과"


토마토를 갖고 나갈 때는 고민이 되었다. 오늘은 몰래 갔다 놓고 와야지 했는데 아이들한테 걸렸다.

"조리사님 오늘 간식 뭐예요?"

"...... 음..... 나는야 케첩 될 거야 나는야 주스 될 거야"

"토마토!!!"

아이들은 합창을 했다.

재미와 호기심은 음식과의 거리감을 좁혀준다.

이게 이렇게 길게 갈 줄 모르고 시작했는데 이제 밑천이 다 떨어졌다.




조리사인 나는 곳에서 3년을 일한 덕분에 아이들과도 친하다. 점심을 먹고 나면 각반을 돌면서 늦게 먹는 아이들 밥도 먹여주고 모자란 반찬도 채워주곤 한다. 그렇게 굴을 자주 보니 아이들의 마음에 내 자리가 생긴 것 같다.

내 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저 오늘 밥 세 번 먹었어요."

"오늘 짜장밥 너무 맛있었어요."

"오늘 탕수육 짱이었어요."

"저 오늘 제일 빨리 먹었어요."

이뿐 다.

"이도현이 저 놀렸어요."

"조리사님, 다호는 김치 맵다고 안 먹어요."

쏟아지는 아이들의 얘기를 듣느라 정신이 없다.

주방과 가까운 곳에 있는 6세 반 아이들은 특히 더 친해서 나는 자칭타칭 6세 반 부담임이다.



오후간식이 떡볶이였다.

어린이집 떡볶이는 궁중떡볶이, 크림떡볶이, 짜장떡볶이, 로제떡볶이 그리고 그냥 떡볶이가 있다.

나는 그냥 떡볶이는 떡볶이답게 한다. 약간 매콤하다.

4세 아이들이 매운 걸 먹어준 덕분이다.

6세 반에 갔더니 몇몇 아이들이 매콤한 떡볶이와 시름하고 있었다.

"얘들아 매워?"

"네, 너 매워요." "저는 쪼금 매워요."

"그래? 샘이 4세 반에 갔더니 동생들도 잘 먹던데..."

4세 반에 동생이 있는 채아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내게 물었다.

"하니가 이걸 먹었어요?"

"으응, 하니도 먹었어."

"진짜요?"

"응 다 먹고, 아 매워 아 매워 그랬대."

그 말에 아이들은 까르르 웃었다. 

웃고 난 아이들이 또 물었다

"조리사님 하니가 어떻게 했다고요?"

"응 다 먹고 아 매워 아매워 그랬대."

뭐가 웃음 포인트인진 모르겠지만 아이들은 이번에도 까르르까르르 웃고는 한번 더 해달라 했다.

같은 얘기에 몇 번씩 웃는 게 6세 아이들의 특징이다. 아이들의 까르르 웃음이 나를 동기화시켰다.




나는 어린이집 식단의 음식은 다 잘하는 편이다.

한 가지 내 맘에 들지 않는 게 있는데 그건 칼국수였다. 어린이집 식단의 칼국수는 한 번에 많은 양을 끓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불게 된다. 더구나 좀 식혀 나가야 해서 더 그렇다.

게다가 시중에 파는 면은 전분가루를 너무 많이 혀놔 국물이 탁하고 걸쭉해지는데, 털어내 씻어내고 끓여도 맑은 국물이 나오지 않았다.

 .... 면을 만들어볼까?....

만들어 본 적은 없었지만, 나의 "쉬워"가 발동되어 아이들과 칼국수면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재밌겠는데요...."

6세 아이들이 밀가루 반죽을 만지는 일은 앞뒤로 손이 많이 가는 일인데도 내 제안에 샘은 흔쾌한 찬성 했다. 

"내가 반죽을 밀대로 밀어서 빵칼이랑 준비해 줄게요. 아이들은 둘둘 말아서 썰기만 하면 될 거예요."



오전부터 서둘러 준비를 마치고는 담임샘과 얘기한 대로 한시쯤 그 반에 갔다.

"얘들아 오늘 오후간식이 닭칼국수야."

"맛있겠다." "저 칼국수 좋아하는데." "저는 싫어요."......

"근데 오늘은 칼국수의 면을 너희들이랑 만들어 볼 거야"

"왜요?" "진짜요?" "전에는  안 만들었어요?"..........


 아이들은 특히 말이 많다.

나도 말 많은 아이를 키웠지만 하나만 키운 나로선 아이들의 그 많은 질문을 다 듣고 대답해줘야 하는 샘들이 대단해 보인다.  


"그럼 우리가 만들어서 우리가 먹는 거예요?"

도현이의 질문이 반가웠다.

"맞아 그거야. 너희가 오늘 샘을 도와주는 거야."

"어떻게 도와줘요?"

"너희가 면을 만들면 샘이 그걸로 칼국수를 끓일 거야."

아이들은 이게 시시한 밀가루 놀이가 아니라 자신들이 먹을 오후간식을 만든다는 생각에 사뭇 진지졌다.


재료준비를 해주고 주방으로 와서 나도 똑같이 면을 만들기 시작했다.

칼국수의 반죽은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져서 수제비보다 훨씬 되직하게 반죽을 해야 하고 밀대로 힘을 주어 여러 번 겹쳐 밀어야 다. 그날 알았다.


아이들이 만든 면과 내가 만든 걸 합쳐 닭육수에 넣고 한소끔 끓어냈다. 찢어놓은 닭살을 넣어 김을 뺀 후

오후간식으로 내주었다.

각반에 가서 6세 반에서 만든 면으로 끓였다고 전해주고 6세 반에 다시 가보았다.

도현이가 다시 내게 물었다.

"형님들에게 말해줬어요 우리가 만들었다고?"

"그러엄 동생들한테도 다 말해줬어."

아이들은 흐뭇해하며 칼국수를 먹었다.


아이들과 동기화 시켜준 떡볶이와 닭칼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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