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마음 다치지 않게 잘해봅시다."
출근시간보다 30분이나 일찍 와서 조리복과 개인컵, 칫솔등을 줄줄이 꺼내어 개인 사물함에 넣고는 내게 던진 첫마디였다.
..... 학교, 어린이집등 단체급식을 20년 가까이하셨는데 5년 전 정년퇴직하셨데요, 자기는 집에서 쉬지 못하는 성격이라 하시더라고요....
원장이 같이 일할 시간제 보조 조리사에 대해 알려줬을 때도 느낌이 좀 쎄하긴 했다,
그 느낌이 틀리지 않을 것 같은 또 느낌이 들었다.
"그럼요, 잘 부탁드립니다 선생님."
나는 불안한 속내를 감추고 밝게 인사했다.
보조샘은 첫인사만 서울말씨로 또박또박 말하고는
그다음부터 따끈따끈한 남도사투리를 구사하기 시작했다. 서울 온 지가 40년이 다되어 간다는데 그럼에도 오리지널리티가 살아 있었다.
"여수에 사는 잡것들은 오히려 서울말씨를 쓴당께, 나안 모뎌!"
그렇게 존재감 있게 나타난 나의 보조샘은 매 순간 존재감을 까먹지 않게 해 주었다.
처음 경험해 보는 소란스러움이었다.
그건 수다스러움과는 좀 달랐다.
"으매 더운거 으매 더운거... 겁나게 덥구마이.... 그려그려 선풍기를 켜야겠구먼....으매 시원한그...이제야 살 것 같네그려..."
"으매 배부른 거 배터져 죽게고마.....아이고 배불러라...느무 많이 먹어부렀네..."
매일 그 걸쭉한 남도사투리로 자신의 감각상태를 실시간으로 생중계하셨다. 거기에 틈나는 대로 지금의 일상은 물론, 수십 번도 더 얘기했을 굵직굵직한 경험까지 소상히 알려주셨다.
나는 사흘 만에 그녀의 가족관계와 반려견 감자에 대해서도 잘 알게 되었고, 그녀가 처음 단체급식조리를 시작한 건 ㅇㅇ여고였다는 것까지 기억하게 되었다.
그쯤이야 적응의 범위에 둘 수 있다.
그런데 보조샘은 자신의 화려했던 단체급식 경력을 며칠에 거쳐 얘기하더니 조리사 경력으로는 4년이 채 안된 나를 병아리처럼 대하기 시작했다.
20년간 쌓은 단체급식의 노하우를 병아리 메인조리사에게 잘 가르쳐줘야겠고 나름 큰 그림을 그리고 온 듯했다.
"..... 이럴 땐 더 쉬운 방법이 이쓰.....고것을 세로로 고러코럼 썰지 말고 가로로 길게 썰어 크게 부쳐서리 가위로 똑똑 잘라내면 훨씬 빠르자녀..."
그녀가 대단한 팁처럼 알려주는 방법은 매번 내게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렇긴 하죠... 근데 그러면 가지전이 물컹물컹해서 맛이 없잖아요, 전은 표면의 바싹한 맛으로 먹는 건데..."
"....."
자신의 기대와는 달리 나의 호응이 없자 그녀는 잠시 후퇴한 듯 잠잠하다가 다시금 기회가 생기면 처음인냥 떠들었다.
"달걀찜을 바트에 하나도 안 달라붙게 하는 기똥찬 방법이 이쓰."
그녀는 재빠른 동작으로 수납장에서 롤팩을 꺼내 들었다.
"뜨거운 찜기에 넣을 건데 비닐을요?.... 안 되죠."
그러자 이내 포기하고는 롤팩을 도로 넣두었지만,
아직 내게 전해줄 아흔아홉 개의 꿀팁이 남아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쉽지 않은 일 년이 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그녀를 뽑은 애꿎은 원장에게로 점점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