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에 역마살이 꼈단 거, 여행작가에게 축복 아닌가요?
"앉아서 듣고만 있으셨다? 그쪽 사주에 역마살이 꼈단 소릴 지껄이는데도?"
게리가 열을 올린다. 탁한 목소리로.
뭘까? 게리란 이 남자.
아까부터 소파에 반쯤 누워, 노트북만 들여다보고 있길래 내 얘긴 뒷전이겠거니 싶었거늘.
듣고는 있었던 모양이다.
목이 늘어난 회색 반팔 티셔츠, 시커멓게 그을린 얼굴, 면도라곤 안 한 수염, 어딘가 시비조의 말투를 해가지고서는.
"끼었으니 끼었다 했겠죠? 강남에서도 이름난 역술가라던데, 있지도 않은 역마살 얘길 지어냈겠어요?"
목덜미를 긁으며 느릿느릿 응수한 나였다.
성의껏 답을 하기가 힘들었다.
간만에 차려입은 긴소매 원피스가 말썽인지, 목걸이에서 쇳독이라도 올랐는지, 가렵기도 몹시 가려웠다.
남의 집 거실에서, 그것도 저녁 초대를 받은 자리에서, 궁상맞게도 목이나 긁어대는 신세였다.
"서른 넘도록 뭘 하셨나? 그쪽 면전에다 대고 욕을 하는데. 내 말은... 본인 사주에 역마살이 끼었단 소릴 가만히 듣고만 있음 어떡하냐고. 아, 나 같음 그 자리에서 당장 한 마디 했지. 역술가인지 뭔지 하는 놈이랑 한 판 붙었어. 우선 줬던 복채부터 도로 빼앗아버린 뒤에."
흥분하는 게리.
"여기서 나이 얘기가 왜 나와요? 꼰대도 아니고."
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는 나.
입씨름은 여간해선 끝이 안 난다.
'꼰대'라는 단어에 게리가 단단히 자극을 받은 모양이다.
강남 제일이라는 역술가로부터 사주에 역마살이 끼었단 풀이를 들은 사람은 나건만.
오지랖이 넓다고 해야 하나. 남의 일에 저 야단이다.
게리. 이곳 런던에 거주 중인, 40대로 추정되는 한국 남자. 아마도 회사원.
소개팅 얘길 입에 달고 사는 스타일이라 싱글 같긴 한데. 정확히는 모른다. 어차피 이 모임이 아니면 마주칠 일 없는 사이라, 자세히 캐묻지도 않았다.
게리를 알게 된 건, 바로 이 모임에서다. 런던 사는 한국인들끼리 돕고 지내자는 취지의 모임.
또래 한국인들 대여섯이 주기적으로 만난 지가 햇수로 벌써 몇 년이려나.
모임이 형성될 시기에 젖먹이였던 리암이 초등학교 들어갈 나이라니, 짧지 않은 기간이다.
그런데도 서로 이름도 모른다.
영국 생활에서 쓰는 영어 이름을 아는 수준이었지, 한국 이름은 모른다는 뜻이다.
그나마 나 같은 사람이야 '게리, 게리' 하면서 이름을 불러주기라도 했지, 상대방은 내 이름이나 알고 있으려나.
그의 입에서 '샐리'라는, 내 영어 이름이 나오는 꼴을 못 봤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줄곧 그쪽이란 표현으로 나를 불러온 게리였다.
"그쪽은 한국말 뜻도 모르시나? 리암처럼 여기서 태어난 것도 아니면서. 아, 내 말은, 사주에 역마살 꼈다는 거, 그거 순전 욕이라고. 옛날에는 역마살의 '역' 자만 나와도 입에 거품을 물었어. 백 퍼센트."
게리는 참견을 그만 둘 생각이 없어 보인다.
어디 역마살뿐인가. 도화살? 홍염살?... 뭔 살이란 살은 죄다 읊으며 역술인 행세를 한다.
마침 어린아이 목소리가 끼어들었으니 망정이지, 자칫하다간 굿판이라도 벌일 기세였다.
"역크... ? 왓 이즈, 맛트... 솰?"
그런 질문으로 게리의 입을 막은 것은, 오늘 모임을 주최한 부부의 외동아들 리암이었다.
웬일인지 오늘따라 어른들 대화에 적극적으로 끼어들며 관심을 보인 것이었다.
비글을 닮은 눈매를 해가지고는, 게리에게 한 번, 내게 한 번, 역마살의 뜻을 물어온다. 역마살이란 단어를 매번 힘겹게 발음해 가면서.
정수리가 내 허리 높이에도 못 미치는 어린아이가 역마살의 참뜻을 어찌 알겠냐마는, 게리는 꿋꿋하게 설명을 시도한다.
영국에서 태어나 자란 터라 한국어가 능숙하지 못한 리암에게, 늘 영어 반, 한국어 반, 섞어 사용하는 그 아이에게, 손짓 발짓 섞어가며 열심이다.
한국에서는 말이다, 전통이 말이다, 구구절절 늘어놓으며 괜한 헛힘을 쓴다. 듣다 못한 내가 나설 때까지.
역마살 따위, 애들은 몰라도 되는 단어라고, 그런 식으로 내가 리암을 토닥거렸던가.
별안간 게리가,
"거, 예의는 씹어드셨나? 사람 말하는데 갑자기 끼어들어서는..."
라고 투덜거린다.
나로 인해 심기가 불편해졌음을 감추지 않는다. 감추기는커녕 훤히 드러낸다.
게리의 투덜거림을 못 들은 척, 그냥 넘겼더라면 좋았으려나.
나도 질세라 되받아쳤고, 이내 거실 전체가 시끄러워졌다.
어린애를 사이에 두고, 다 큰 어른 둘이서 목청을 높였다.
"얘, 리암아! 아저씨 설명 귀담아 들어둬라. 역마살이란 거, 어디 한 장소에 붙어있질 못하고 이리저리 떠돌다 객지에서 졸지에 꼴까닥, 죽어버리는 신세가 된다는 뜻이걸랑. 알아듣냐? 진짜 진짜 무서운 거라고."
"어머, 게리 아저씨가 옛날 사람 같은 소릴 하네. 세상 변한 지가 언제인데 그런 얘길... 리암이 너, 학교에서 배웠지? 글로벌 어디든 맘껏 돌아다닐 수 있는 시대란 거. 너 스스로 찬찬히 생각해 보렴. 꼼짝 않고 한 곳에만 붙어살다간, 큰일 나지 않겠니? 바깥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적응을 못해서 도태될 거야, 아마. 너도 들어는 봤지? 우물 안 개구리란 한국 속담."
"뭐요? 개구리?"
게리의 목소리가 거실을 뒤흔들었고, 리암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말싸움이 이어졌다.
"하하! 꼰대 취급도 모자라, 이번엔 세상 물정 모르는 놈 취급이시네. 한 번 따져 봅시다. 아무리 시대가 변했어도, 역마살이 욕이지 어떻게..."
"어머, 욕이라뇨? 내 귀엔 축복으로 들리던데."
"축복? 지금 축복이라 그러셨나?"
"엄연히 축복이죠. 나 같은 여행작가한테 역마살보다 더한 축복이 어디 있겠어요? 글로벌 방방곡곡 떠도는 걸로 밥 벌어먹고사는 처지에."
"축복 좋아하시네. 축복은 무슨 놈의 축복."
"게리도 내 입장이 되어봐요. 한 장소에 머물러 살라는 소리가 어떻게 들리는지. 여행작가더러 굶어 죽으란 소리도 아니고."
"여행 다니시면서 해골물이라도 구해 잡쉈나? 원효대사 납셨네. 세상만사, 혼자 통달을 하셨어."
게리의 빈정거림이 나를 들끓게 만들었다.
가만히 앉아 듣고 있으려니, 속에서 부글부글 반발심이 끌어 올랐다.
조금 전에도 말했거니와, 나는 여행작가다.
회사 때려치운 뒤로 여행을 직업으로 삼았다. 그러고도 계절이 수차례나 바뀐 뒤였다.
세계여행까진 아니나 웬만한 장소는 다녀봤고, 게리의 지적처럼 세상만사를 관통할 진리도 나름대로 깨우쳤다.
라고, 멋지게 반박을 해주려던 찰나, 버퍼링이 걸렸다.
내 온몸이 버벅버벅, 마치 버퍼링 걸린 동영상과 유사한 장면을 연출했다.
진동이었다.
원피스 주머니 속 휴대폰이 나를 이도 저도 못하게 만드는 중이었다.
그래봤자 휴대폰 진동음에 지나지 않는 것을.
나의 사지가 움찔움찔 춤을 춘다. 나의 단발머리가 질세라 찰랑찰랑, 헤드뱅잉을 한다.
내가 이토록이나 과민반응을 보이는 데는 까닭이 있다.
누구 전화인지 짐작이 갔기 때문이다.
지구 반대편에서 딸을 애타게 찾고 있을, 나의 단 하나뿐인 가족. 아버지...
아버지 전화일 것이다.
아니, 아버지 전화임이 명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