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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디 Sep 09. 2018

사랑스러운 불확실성

영화 <우리의 20세기>(2016)

  <우리의 20세기>(2016) 개봉 직후 많은 키워드들이 평단과 대중 사이에서 유영했다. 20세기, 평크, 가족, 여성 등의 단어들은 독립적으로 또는 결합된 형태로 노스탤지어의 무드를 형성한다. 배경이 된 1970년대를 기준으로 설정한 신세대와 기성세대를 묘사하는 내레이션과 인서트 컷들은 그렇기에 주요하다. 도로시아(아네트 베닝)의 살렘 담배나 애비(그레타 거윅)의 펑크 음반과 페미니즘 서적, 제이미(루카스 제이드 주만)의 스케이트 보드 등 영화 속 셰어하우스 구성원들의 취향이 반영된 오브제들은 물론, 러닝 타임 내내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당대 자동차 모델들 역시 이에 일조한다. 하지만 이것이 영화를 이끄는 힘의 전부라면 <우리의 20세기>는 그저 감각적 소재를 예쁘게 나열한 컨셉 영상에 불과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20세기>는 어떻게 영화가 되었을까.


  소재만큼 이 영화를 채우고 있는 것은 인물들 간 대화다. 도로시아와 제이미 모자의 첫 번째 대화는 앞으로 영화가 이에 대한 변주와 반복으로 진행되리라는 것을 암시한다. 마트에 간 사이 주차장에서 불타 버린 포드의 잔해를 보고 도로시아는 아쉬워하며 “예쁜 차였는데”라고 말한다. 제이미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하고는 답한다. “맨날 과열되고 기름 냄새났잖아. 고물이었어.” 이후 다른 대화들 역시 유사한 형태로 제시된다. 영국 여성 포스트펑크 밴드 ‘더 레인코츠’의 음악을 처음 듣고 좀 더 듣기 편한 음악을 들을 수 없느냐고 묻는 도로시아에게 애비는 자신이 생각하는 밴드의 매력을 소신껏 피력한다. TV에 방송된 지미 카터 대통령의 ‘자신감의 위기 연설(Crisis of Confidence Speech)’을 듣고 모두가 코웃음을 칠 때, 도로시아는 홀로 근사한 연설이었다고 말한다. <우리의 20세기>에 등장하는 많은 대화들은 하나 이상의 대상에 대해 각자의 견해를 주고 받는 식으로 진행된다.

 


  이러한 대화들은 필연적으로 불확실성을 담보한다. 옳고 그름을 가릴 수 없기 때문이다. 해당 관점에서 제이미의 오랜 친구 줄리(엘르 패닝)와 도로시아가 차안에서 대화를 나누는 신은 흥미롭다. 줄리는 도로시아가 이혼 후 만나 온 남자들이 ‘적절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이에 도로시아는 ‘좋아하는 사람을 찾기가 어렵다’고 답한다. 이후 대화는 함께 담배를 피던 줄리가 도로시아에게 라이터를 돌려주고 자리를 떠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그러나 영화는 애써 다음 장면으로 빠르게 넘어가지 않는다. 줄리가 할 일을 마쳤다는 듯 인사와 함께 차문을 나서고, 도로시아가 조금 복잡한 표정으로 그녀를 떠나 보낼 때까지 카메라는 계속 그 자리에 남아 이 과정을 온전히 담아낸다.

 


  줄리의 치기 어린 고집도, 도로시아의 무조건적인 연륜도 느껴지지 않는 위 대화를 포함해 <우리의 20세기>에서 주목할 것은 대화가 오가는 과정에서 인물들이 보이는 반응이다. 그들은 대화의 불확실성을 해소하는 데에 하등 관심이 없다. 누구의 말이 더 납득할 만한 지 가려내려는 시도 혹은 자기 주장을 밀어붙이는 태도가 이 영화에는 부재하다. 이때 대화는 서사의 다음 국면을 전개하는 직접적 계기가 되지 않는다. 이전의 대화들을 좀처럼 다음 장면에서 다시 언급하지 않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대화가 다음 서사로 이어져야 한다거나 이전 대화를 다음 서사가 책임지고 마무리해야 한다는 의무감은 전제되지 않는다. 이 영화가 긴 서사가 아닌 단편적 에피소드로 구성됐다는 인상을 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답을 향해 가지 않는 대화이기에 더 많은 생각들이 자유로이 오간다. 장면과 장면 사이의 연계성이 느슨하기 때문에 대화 자체의 목적성은 강해진다. 대화를 위한 대화를 통해 인물들은, ‘당신의 세계가 내게 불확실한 만큼 나의 세계 역시 불확실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간다. 영화는 자신의 것과 다른 세계를 마주할 용기를 내어가는 과정이다. 심리 상담사인 어머니의 권유로 집단 상담에 억지로 참여하면서도 단 한 마디도 꺼내지 않던 줄리는, 셰어하우스의 식사 자리에서 애비의 주도로 여성의 생리를 주제로 한 대화가 시작되자 불현듯 과거 경험들을 풀어 놓는다. 애비의 가이드로 처음 펑크 클럽을 방문해 어색함을 감추지 못했던 도로시아는 제이미가 바다로 떠났다는 편지를 읽고 다시 홀로 클럽을 찾아가 ‘아들이 믿는’ 시대의 전유물들을 직접 마주한다.


  

 <우리의 20세기>에서 여러 번 반복되는 장면 중 하나는 넓고 구불구불한 차로에서 홀로 스케이트 보드를 타고 달리는 제이미의 모습이다. 단 한 차례 도로시아가 자동차를 운전하며 제이미의 뒤를 쫓지만 이때 희미한 미소와 함께 시선을 던지는 쪽은 도로시아일 뿐 제이미는 곧장 앞만 보고 달린다. 이러한 점에서 결말부의 변주 장면은 특기할 만한데, 머리를 노랗게 물들인 제이미가 여전히 스케이트 보드를 타면서도 옆에서 나란히 달리는 도로시아의 자동차 창문을 붙잡고 달리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제이미가 도로시아와 시선을 맞대며 웃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인물들의 궁극적 행복을 쉽게 보장하지 않는다. 인물들의 미래에 대한 내레이션이 암시하듯 그들 모두 각자의 인생을 계속해서 살아간다. 도로시아는 재혼 후 폐암에 걸려 사망하고, 나머지 인물들은 결혼 후 제각기 삶을 이어 나간다. 이러한 점에서 영화는 꽤나 현실적이다. 영화 속 대화들이 사건으로 이어지지 않았던 것처럼 인물들의 성장은 무조건적인 행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다만 영화는 서로를 기만하지 않은 채 조금씩 어긋나는 이 사랑스러운 불확실성을 그저 있는 그대로 응시할 뿐이다. 시종일관 인물들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 느껴졌던 이유 역시 이 때문일 것이다. <우리의 20세기>는 그렇게 영화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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