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2017)
'기대했던 것 만큼은 아니지만 어쨌든 좋았어'라고 말할 작정이었다. 하지만 그런 무심한 감상평을 던지기에는 이미 바탕 화면도 영화 속 대사를 적은 타이포그라피로 바꿔버렸고, 알레시오 박스의 곡은 연속 재생 설정을 해놨으며 원작 도서는 이틀 만에 다 읽어 버렸다 (...)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여름을 그리게 만드는 영화다. 그 여름은 다가올 여름이기도 하지만 지나간 여름이기도 하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나에게 이런 여름이 있었던가'라고 돌이켜 보게 만드는 영화다. 숱하게 지나온 여름 가운데 오로지 한 가지 대상에만 모든 신경을 기울였던 그런 여름이 나에게도 있었던가. 이를 둘러싼 풍경이, 소리가, 사소한 모든 것들이 나를 들뜨게 만든 그런 여름이 있었던가.
이런 감상이 가능한 것은 이 영화가 시각과 청각을 동시에 그리고 다채롭게 만족시키기 때문이다. 짙게 드리운 녹음, 투명한 푸른빛의 바다, 높다란 건물이 많지 않은 탓에 자주 그 모습을 비치는 넓은 하늘, 작은 움직임에 펄럭이는 엘리오(티모시 샬라메)의 티셔츠와 올리버(아미 해머)의 남방 셔츠. 푹푹 찌는 한여름 가운데에서도 여유를 느낄 수 있게 하는 시각적 요소들이 마음을 동요시킨다. '이곳이라면 너 또한 사랑에 빠질 수 있을 거야.'라고 말하는 듯이.
청각적 요소 역시 이에 한몫한다. 이때 모든 영화가 그렇듯 청각적 요소는 음악, 음성,음향의 3가지로 크게 나눌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극이 진행될수록 이 셋의 직접적 구분이 무의미해진다는 것이다. 피아노 편곡을 즐기는 엘리오의 설정과 맞물려 음악은 음향이 되고, 서로를 나지막히 부르는 두 남자의 음성은 음악이 된다.
시감각과 청감각이 풍부해질 때 그것이 촉감각을 제법 대체할 수 있다는 것을 이 아름다운 퀴어 영화를 통해 실감했다. 따스한 햇볕의 느낌, 튀어올라 피부에 달라붙는 물방울 그리고 맞닿는 두 사람의 손 등은 결코 낯선 감각이 아니지만 나는 저도 모르게 첫사랑을 시작한 어린 소년의 입장에 스스로를 대입하고, 모든 걸 새로워했다.
먼훗날 엘리오는 그 여름날을 어떻게 기억할까. 아니 말을 조금 바꾸자. 엘리오는 '어떤 날에' 그 여름을 떠올리게 될까. 그 여름은 힘든 일상 속에서 꺼내 맛보는 단비일까 아님 멍하니 보내던 어느날 사무치는 아픔으로 올까. 나같은 경우는 마음이 편할 때는 겨울을 그리워 하고, 오히려 힘들 때에는 여름을 기다리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