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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디 May 02. 2018

그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영화 <원더>(2017) 그리고 <플로리다 프로젝트>(2017)

  언뜻 생각했을 때 <원더>와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어린 아이들을 중심 인물로 내세웠다는 것 외에 공통점이 많다고 보기 어렵다. <원더>는 선천적 안면기형으로 태어나 사람들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한 10살 소년 어기(제이콥 트렘블레이)의 이야기로, 그를 보듬는 화목한 중산층 가족 구성원과 주변 인물들의 연대를 그린다. 반면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올랜도 디즈니월드 인근 모텔촌에 거주하는 미국 하층민들의 삶을 무니(브루클린 프린스)라는 6살 소녀의 일상에 맞춰 전개한다. 전혀 다른 환경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는 두 아이의 이야기로 비춰지지만 두 영화는 ‘함부로 연민하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원더> - 힘겨운 싸움을 하는 우리 모두의 특별한 이야기
 
   홈스쿨링을 해오던 어기는 처음 학교에 입학해 친구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하고 일부 무리에게 괴롭힘을 당한다. 그리고 대다수의 성장 영화가 그러하듯 소중한 친구들을 만나 시련을 극복하고 성숙한다. 하지만 <원더>의 진정한 매력은 영화가 어기 이외의 인물들에 초점을 옮기는 순간 발현한다. 지금껏 이야기의 주인공이었던 어기는 주변 사람들 각자의 이야기에서 탁월한 조연으로 활약한다.

  어기의 누나 비아(이자벨라 비도빅)가 주연인 이야기 속에서, 그녀의 표현대로 어기는 배려하는 동시에 감내해야 할 집안의 태양이다. 행성처럼 늘 주위를 돌며 어린 나이에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던 비아는 새로운 만남과 도전을 통해 자존감을 회복한다. 어기가 학교에서 처음 사귄 친구 잭 윌(노아 주프)은 어기를 괴롭히는 위압적인 친구들 앞에서 어기를 험담하는 잘못을 저지르지만 결국 본래 마음이 향했던 대로 우정을 유지해낸다. 비교적 짧게 다뤄지지만 일생을 어기에 헌신했던 엄마 이자벨(줄리아 로버츠)은 어기의 입학을 계기로 아들을 놓아주는 법을 터득한다. 이 외에도 어기를 괴롭혔던 동급생들, 용기를 내지 못했던 많은 이들이 어기와의 만남 이후 괄목할 만한 내적 성장을 이룩한다.

   현실에서 어기와 같은 아이를 맞닥뜨렸을 때 가장 전형적인 반응 유형은 간간이 등장하는 동급생 샬롯(엘 맥키넌)의 경우일 것이다. 배려하고자 하는 마음은 있지만 여전히 낯설고 다가가기엔 두렵다. 하지만 <원더>는 어기를 ‘특별 대우’하지 않는다. 다만 ‘평범한 우리들’의 ‘특별한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평범함과 특별함의 간극을 좁힐 뿐이다.

  이러한 점에서 말미의 종업식 신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어기가 선행상을 받는 장면 사이로 ‘우리가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면 그 누구도 평범하지 않을 것’이라는 어기의 내레이션이 흐르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 뒤로 이어지는 격언이 결코 허망한 것이 아님을 영화는 방증하고자 했던 것일까. <원더>의 인물들은 각자 ‘힘겨운 싸움’을 해내는 와중에도 서로에 대한 ‘친절함’을 잃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자벨이 어기에게 속삭이는 한 마디는 위로나 연민이 아니라, 그가 있어 가능했던 모든 변화에 대한 고마움의 표현으로 읽힌다. “넌 기적이야, 어기.”

 
<플로리다 프로젝트> - 당신이 볼 수 있는 건 현실 뿐이다
 

   <플로리다 프로젝트>가 다루는 공간의 힘은 강력하다. 작품 전반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단연 알록달록한 색감이다. 무니와 핼리(브리아 비나이트) 모녀가 사는 연한 보랏빛 모텔 ‘매직 캐슬’은 러닝타임 내내 빈번히 노출되며 작품의 톤을 유지한다. 아이들의 ‘모험’이 펼쳐지는 장면에서 빠지지 않고 배경으로 등장하는 아이스크림 가게, 기념품 샵 등 건물의 외관 역시 마찬가지다. 업종 혹은 가게 이름과 연관된 상징으로 디자인된 외양은 흡사 유원지의 놀이기구를 연상시키며 작위적이고 키치한 느낌을 준다. 길 바로 건너편에 자리 잡은 디즈니월드를 모방하려 발버둥 친 들, 결코 그것이 될 순 없음을 냉소하는 듯하다.

   이러한 묘사는 디즈니월드 옆에 살고 있지만 정작 그곳을 방문하는 것은 꿈조차 꾸기 힘든 무니의 현실 속 모텔촌 풍경과 오버랩된다. 아이들은 폐허가 된 콘도에서 불장난을 하고, 아이들이 뛰노는 곳 한 켠에는 소아성애자가 두리번거린다. 자선단체는 주기적으로 모텔촌을 찾아와 사람들에게 빵을 나누어 주고 아이들은 아이스크림 먹을 돈을 구걸한다. 변변한 일자리를 찾지 못해 생활고에 시달리던 핼리는 매춘을 시작하고, 관리국의 불법 장기 투숙 감독을 피해 딸 무니와 한 달에 한 번씩 방을 비워야 한다. 이처럼 모텔촌 깊숙이 침투한 어둠의 그림자를 굳이 파고들지 않는다 해도, ‘매직 캐슬’을 ‘매직 킹덤(- 디즈니월드의 첫 테마파크)’으로 착각한 부하직원 때문에 모텔촌에 불시착한 신혼부부가 좌절하는 모습은 해당 장소에 대한 외부인들의 시선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이와 같은 묘사들 중 일부는 두 번 이상 반복되며 이것이 결코 특별한 에피소드가 아닌 일상적 상황임을 암시한다

  하지만 이러한 현실에 비해 무니와 친구들은 해맑기 그지없다. 아이들은 어떤 곳이든 놀이터로 만들고 그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뛰논다. 그러나 이는 아이들을 미성숙한 화자로 상정해 역설의 효과를 획득하는 것과는 다르다. 냉혹한 현실에 놓인 아이들을 애써 무지한 상태로 그려내 그들을 연민하는 것은 <플로리다 프로젝트>가 존재하는 방식이 아니다. 감독 션 베이커는 인터뷰에서 ‘대상을 존중하는 관찰 방식은 그들이 사는 곳에 직접 가보고,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공간과 현실에 대한 세밀한 묘사가 3년 여간 진행된 감독의 현장 답사로부터 촉발되었다면, 아이들의 해맑은 모습은 감독의 이러한 가치관으로부터 출발했다. 실제로 영화는 아이들의 감정과 생각에 대한 묘사를 절제하는데, 무니가 부정적인 감정 표현을 하는 것은 오직 엄마 그리고 친구와의 이별이라는 보편적 슬픔을 앞둔 순간 뿐이다.

  연민은 많은 것을 가린다. 그 의도가 선한 것일지언정 이 감정은 ‘이입’이라는 행위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대상의 입장과 가치관을 마음대로 구성해 본다. 필요한 것은 어림짐작 후 이어지는 어설픈 대안 제시가 아니다. 있는 그대로 바라보되 그 모든 것이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와 무관한 일이 아님을 직시하는 작업이다. 스티븐 크보스키와 션 베이커는 각자의 전작 <월 플라워>, <탠저린> 이후 이러한 흐름을 주도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시종일관 모든 일이 잘 될 것이라는 동화적 환상을 심어주기 보다 우리 모두가 함께 일상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하는 영화. 우리가 알지 못했던 또 다른 보편적 일상을 보여주는 영화. 과연 두 작품은 관객들에게 거짓말하지 않는 영화라 칭할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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