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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디 Aug 15. 2018

역사의 소용돌이 안에서 중심을 잡는다

영화 <공작>(2018)

  한국 현대사의 한 조각은 영화적 순간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작은 반도를 둘러싸고 펼쳐졌던 치열한 역사는, 노련한 배우들 그리고 실화를 고증하면서도 영화적 논리를 탄탄히 세운 연출을 통해 신선한 첩보물로 재탄생했다. 남한의 정치 판도를 이리저리 뒤흔들던 ‘북풍’과 모든 것을 목격한 공작원 ‘흑금성’. 이 글에서는 영화가 되기 위한 조건을 두루 갖춘 역사의 한 페이지를 진정 ‘영화적’으로 다듬어 낸 요인에 대해 짤막하게 이야기하고자 한다.

  영화가 흥미로운 서사를 갖추기 위해서는 인물의 입체성이 담보되어야 하는가? 이것이 <공작>을 보고 난 직후 떠올린 질문이다. 그 이유인 즉 <공작>의 주역들의 시작과 끝에는 큰 이변이 없다. 북한의 해외사업을 담당하는 리명운 처장(이성민)은 특유의 침착함과 포커페이스로 남한의 대북 사업가 박석영(황정민)을 경계하며 끊임없이 그를 테스트한다. 리명운의 말들에서 확인할 수 있듯 그의 행동 대부분은 조국을 염려하는 가치관에서 비롯된다. 보위부 정무택 과장(주지훈)의 경우 옳다고 믿는 것에 대한 고집이 강한데 그만큼 자신의 이해 관계와 일치하는 경우라면 정도(正道)에서 벗어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박석영의 경우 후반부에 이르러 상부의 지시에 반기를 들지만, 애당초 그를 움직이게 한 것이 애국심보다는 임무 완수에 대한 책임감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이는 아주 놀라운 선택은 아니다.

  이 첩보 영화는 짧은 순간 동안 내려야 하는 수많은 선택들의 연속이다. 그 중 크게 두 가지 선택에 주목해 본다. 첫 번째는 안기부 최학성 실장(조진웅)의 선택이다. 그는 기존 정부에 유리한 방향으로 선거 결과를 끌고 오기 위해 두 차례의 북풍을 주도하기로 ‘선택’한다. 두 번째는 박석영과 리명운의 선택이다. 두 사람은 대선 직전의 북풍을 막기 위해 협업을 ‘선택’한다. 이 선택들은 정반대 위치에 놓여 있지만 공통점이 있다. 필연적으로 이념의 이슈가 곳곳에 산재한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결국 인물들의 개인적 이해 관계에 초점을 맞춘 결과라는 점이다. 더욱이 인물 중 그 누구도 공공의 이익을 위해 선택하지 않는다. 최학성의 경우 정부가 바뀔 시 자신의 자리가 위협당할 것을 우려해 그 가능성을 차단하려 한다. 박석영과 리명운의 선택은 흡사 프로타고니스트의 영웅적 선택으로 취급될 수 있는 여지가 있으나, 각자 맡은 바 임무에 대한 고민과 분투가 서사를 이끌고 온 원동력이었다는 점에서 그들 역시 개인의 가치관에 방점을 뒀음을 확인할 수 있다.

  다시 처음 떠올렸던 질문으로 돌아가 본다. 영화가 흥미로운 서사를 갖추기 위해 인물의 입체성이 반드시 담보되지 않아도 좋은 듯 하다. 다만 <공작>이 보여준 것만큼의 영화적 재미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선결 조건들이 수반되어야 한다. 이념과 역사의 소용돌이 한 가운데에 놓여 있다해도 인물 개개인의 역사와 신념에 줌을 당기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 그것이 첩보 영화를 남북의 단순 대립과 화해의 이야기로 만드는 오류를 방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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