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디 Jul 01. 2020

2020년 상반기에 본 시리즈들 (1)

<기묘한 이야기> 시즌1 외 11편

나는 드라마보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1년에 본 드라마가 3편을 안 넘어갔다. 그러나 넷플릭스, 그중에서도 <기묘한 이야기> 시리즈는 나의 숨겨져 있던 정주행 본능에 불을 붙였다. 그렇게 넷플릭스, 왓챠플레이를 왔다 갔다 하며 시리즈 하나를 다 보면 또 다른 시리즈를 찾아보는 식으로 영상물을 정주행 한 것도 벌써 6개월. 시간 수로 따지면 영화보다 시리즈를 더 많이 봤을 것이다. (!) 그런 의미에서 (아마도) 처음 써보는 시리즈 리뷰 겸 상반기 정산. 2개의 글에 각각 12편씩 나누어 정리해본다.


<기묘한 이야기> 시즌1~3 (2016~2019)
어린 나이에 산전수전 다 겪은 아이들. 근데 시즌4가 남았어 (...)

SF 장르를 기반으로 하지만 드라마, 스릴러, 레트로 등 여러 장르와 컨셉이 혼합되어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혼합'되어 있어도, '혼잡'하다는 느낌은 전혀 없다. SF를 이런 식으로 키치하게, 하지만 결코 촌스럽지 않게 표현할 수 있다니! 좀 더 일찍 입덕하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내가 그동안 시리즈를 많이 보지 않았던 이유는, '오래 걸린다'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 작품의 결말을 보기까지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린다. 무언가에 쉽게 빠져들고, 쉽게 빠져나오는 나에게 맞지 않는 콘텐츠라고 느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시리즈물의 특징 자체를 선호하지 않았던 게 아닌 듯하다. 그렇게 긴 호흡을 가져가면서 얼마나 복선을 적확하게 회수하는지,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포인트가 존재해 나를 지루함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지 등 여부가 중요한 거였다. <기묘한 이야기>는 이 모든 요건을 충족하는 시리즈였기 때문에 쉬지 않고 이어 볼 수 있었다. 에피소드끼리는 물론, 시즌 간의 연계까지 확보하는 일을 잊지 않는 이 시리즈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기묘한 이야기>의 인물들은 팀을 이루어 행동하고, 위기를 극복한다. 그런데 이 팀플레이는 사실 분산된 형태로 이루어진다. A라는 큰 팀 안에서 a, b, 많게는 c까지 페어가 분리되어 서로 다른 공간 안에서 또 다른 팀플레이를 한다. (ex, 마이클+@로 이루어진 페어 / 더스틴+스티븐+로빈으로 이루어진 페어 / 조이스+짐으로 이루어진 페어) 겉으로는 서로 다른 목적성을 띤 서사처럼 보이지만 후반부로 향해갈수록 결국 같은 목적을 가진 끈끈한 팀 하나, 아니 가족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시즌 1이 가장 마음에 들었고 그다음이 시즌 3였는데, 초능력자 엘에게 전적으로 의존했던 시즌 2와 달리 인물들 모두가 각자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냈다는 점이 몹시 마음에 들었다. 시리즈 중간중간 제시되는 진취적 여성들의 연대도 참 좋았다. 모든 캐릭터들이 다 사랑스럽다. <해리 포터> 시리즈 이후로, 정말 오랜만에 좋은 '팀 플레이'를 경험했다. 시즌 4 어서 와!


*제 평가는요: 추천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 시즌2 (2020)
얘들아 전부 행복해야 해

성 상담사인 엄마 옆에서 주워들은(!) 지식을 갖고, 같은 학교 학생들의 고민을 상담해주지만 정작 본인 역시 문제가 많은 오티스의 이야기. 이전 시즌을 보고 느꼈던 가볍고 부담 없는 인상이 남아 있었기에, 시즌 2에 진입하는 데에도 무리가 없었다. 하지만 이전 시즌의 단점이었던 신파와 클리셰는 여전했다.


캐릭터 개개인에 집중하려는 태도가 좋았다. 각각의 이야기를 필연적으로 들어볼 수밖에 없는 '상담'이라는 소재 덕분일 것이다. 특히 에이미의 상처에 여성 캐릭터들이 귀 기울이고, 함께 이겨내는 장면은 이 시리즈를 통틀어 가장 좋은 부분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오티스는 너무나 우유부단했고, 내 기준 애덤은 여전히 폭력적인 캐릭터였다. 이걸 '현실적'이라는 말로 포장할 수는 있겠다만, 내가 굳이 판타지(장르가 아니라 스토리가) 안에서 현실을 또 경험해야 할까...? 시즌 3은 제발 사이다 같은 통쾌함 터져주었으면 한다.


*제 평가는요: 추천




<바이올렛 에버가든> (2016)
작화 예쁘죠? 하지만 비추입니다

전쟁에서 '인간 병기'로 (결코 영광스럽지 않은) 명성을 떨쳤던 바이올렛이, 일련의 사건을 겪고 사람들 대신 편지를 써주는 '대필 속기사'가 되어 다양한 사람들은 만나 감정을 배워간다는 내용의 옴니버스 애니메이션.


애니메이션 팬들 사이에서 작화 퀄리티로 손꼽는 작품이라고 한다. 시대 배경으로부터 비롯된 의복, 풍경이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비슷한 맥락에서 '타자기'라는 소재가 참 애틋하다. 종종 카페나 식당에서 타자기를 인테리어 소품으로 두는 경우를 보곤 하는데, 소품 하나만으로 가게 분위기가 달라지는 일을 경험했다. 모든 예술 작품이 그러하겠지만 특히 비주얼과 서사 모두를 보여줘야 하는 영상 콘텐츠 안에서, 소재는 앞으로 작품을 통해 시청자가 느끼게 될 분위기, 겪게 될 이야기를 결정짓는 데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바이올렛 에버가든>에도 전체 회차를 관통하는 주제가 존재하며 그것을 매 회차 꾸준히 상기시킨다. 그러나 이는 동시에 단점이기도 했는데 왜냐하면, 각 회차 20분 중 3분만 보면 뒤에 무슨 이야기 할지 각이 다 나오기 때문이다. (...)


넷플릭스에서 제작 투자를 해서 그런가. 일본 애니메이션의 전형성을 누그러뜨리려는 노력이 (아~주 일부) 보인다. 특히 주인공 바이올렛 자체의 성격/태도는 논 섹슈얼하다는 점이 그것이었다. 그러나 캐릭터의 태도만 바꾼다고 해서 여성 캐릭터의 성적 대상화가 그렇게 쉽게 해결되는 문제일까? 일단 '대필 속기사'라는 직업군에 속한 사람들이 여자뿐이라는 게 마음에 걸린다. 설정에서부터 순종적 여성상을 보여주는 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바이올렛이 논 섹슈얼하면 뭐하나. 기본 태생을 섹슈얼한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도록 잡아버렸는데 말이다.


*제 평가는요: 비추천




<드라큘라> (2020)
할많하않

고전 '드라큘라'를 각색해 총 3부작으로 구성한 짧은 드라마. <셜록 홈즈> 시리즈 제작진의 작품이라고 해서 기대를 많이 했고, 1~2편까지는 굉장히 두근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봤다. 상상도 못 한 방식을 통해 고전극을 현대극으로 재탄생시키는 제작진의 능력이 여기에서도 십분 발휘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게 웬걸. 3편에서 와르르. 너무 짧은 분량 안에 고전극에 대한 존중과 현대극의 번뜩이는 통찰력을 한 번에 담아내려 했던 것이 역효과를 불러일으켰다.


*제 평가는요: 비추천




<피키 블라인더스> 시즌5 (2019)
이대로 가면 시즌6는 한없이 더 어두워지겠군요 (실제로 시즌5에서 가장 톤이 밝은 장면일 듯)

킬리언 머피(주인공 토마스 셸비 역)에게 투블럭 헤어와 안경을 더할 생각을 한 제작진에게 상을 내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드라마. (!) 1차 세계 대전 이후 영국 버밍엄에서 활동한 범죄조직 '피키 블라인더스'와 그 속에서 권력을 쥐고 흔드는 셸비 가문의 이야기를 다룬 느와르 시리즈다.


이번 시즌은 토마스 셸비의 고뇌가 유난히 더 돋보였다. 시즌이 더해가는 과정에서 차곡차곡 지위, 명예 그리고 부까지 획득하고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생긴 걸까? 그는 타의에 의해 맡게 된 임무에서 대의를 찾고, 좋은 일(the right things)을 하려 한다. (그러나 그것이 실제로 모두에게 '좋은 일'인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지금껏 손에 묻혀 온 피들이 그가 그것을 면죄부로 삼게끔 놔두지 않는다. 어떻게 멈춰야 할지 모르는 그는, 더 이상 자신이 이길 수 없는 상대를 만날 때까지 이 일을 계속하겠다고 한다.


초반 시즌은 그냥 밑바닥에서 올라온 집시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해 큰 불편함 없이 보았지만, 시즌을 거듭할수록 토마스 셸비에 도저히 맹목적인 팬심을 바칠 수 없었다. 결과가 선의를 향한 것이라면, 과정은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행동해 온 그를 보며 '서사 수립 단계에서부터 도덕률을 논외에 두기로 결정한 캐릭터'를 응원하게 만드는 서사 구조가 과연 옳은 것일지 끊임없이 생각했다.


*제 평가는요: 그럭저럭




<F1, 본능의 질주> 시즌1~2 (2019~2020)
페라리의 레드는 정말 강렬하고 예쁘다

시즌1에서는 실제 F1 레이싱 2018 시즌을, 시즌1에서는 2019 시즌을 함께 따라가며 F1 레이싱 세계의 규칙, 문화, 비하인드 스토리를 속도감 있게 담아낸 다큐멘터리 시리즈다.


굉장히 다양한 층위의 '승부'를 담아냈다. 포디엄(=1등)을 향한 승부는 물론 중위권 팀 간의 승부, 홈 레이스에서 같은 국적 선수 간 벌어지는 승부, 팀 메이트 간 승부 등이 그것이다. 다양한 인생도 담겨 있다. 특히 치고 올라오는 젊은 선수의 패기 그리고 나이가 많은 편에 속하는 선수들의 고민이 대조적으로 병치돼 시청자로 하여금 이 스포츠의 원동력에 대해 생각해보게끔 만든다.


시즌1에서는 강팀 투탑인 메르세데즈와 페라리 이야기가 등장하지 않았는데, 시즌2에서는 다른 팀들과 마찬가지로 적극적으로 인터뷰에 임했다. 시즌2는 시즌1보다도 각 팀 내부 사정을 보다 구체적으로 들려주어서 흥미로웠다.


역시 스포츠를 좋아하게 되는 데에 팀과 선수의 캐릭터성은 큰 몫을 하는 것 같고, 이 다큐로 인해 F1 팬이 급증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특히 목숨을 걸어야 하는 위험한 스포츠(ex, F1, 격투기 등)에 대해 서양인들과 달리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동양인들에게 꽤나 상세한 묘사로 매력을 어필하지 않았나 싶다. 실제로 나 역시 이 시리즈를 보고 F1이라는 스포츠의 매력에 빠져, 2020 시즌을 실시간으로 따라잡겠다는 포부를 주변에 힘차게 밝히고 다녔으나...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경기 대부분이 연기되거나 취소되어 안타까울 따름이다.

"속도와 짜릿한 느낌과 더불어 혼자라는 느낌은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거죠." - <F1, 분노의 질주> 중에서
"과거에 의존하면 안 돼요. 새 시즌이기 때문에 포인트는 0부터 시작하거든요." - <F1, 본능의 질주> 중에서


*제 평가는요: 추천




<나만이 없는 거리> (2016)
회차가 지날수록 사토루의 인상도 바뀐다

무명 만화가 사토루에게는 특수한 능력이 있다. 위험한 일이 생기려 할 때,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바로 그 직전의 시간으로 타임슬립을 할 수 있다는 것. 매사에 무기력한 사토루이지만 이 능력 탓에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차마 외면하지 못하고 심심치 않게 구해주고는 한다. 그런 그가 어느 날 강력한 사건과 마주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그린 애니메이션이 바로 <나만이 없는 거리다>다.


스토리 전개는 예상을 뛰어넘고, 대사들은 잊지 않고 작품의 주제를 상기시킨다. 복선 역시 모두 회수된다. 이 모든 것은 '믿음', '동료애', '영향력', '용기' 등으로 대변되는 이 시리즈의 핵심이 적재적소에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예를 들어 [어릴 적 주인공이 다른 인물과 협력했던 내용]이 오랜 시간이 흘러 [주인공이 부재했던 동안 그 다른 인물이 사실은 서사를 진행시키고 있었다]는 식의 연출이 그것이다.


쓸모없는 성적 대상화는 없지만 그럼에도 범죄의 피해자는 대부분 여자다. 남자인 피해자조차 '여자로 착각해서'라고 언급하는 장면이 있다. 범죄를 서사의 일부로 다루어야 극이 진행되는 콘텐츠를 볼 때마다 불편한 지점이 한둘이 아니어서 고민스럽다.

"자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 생각하는 것은 자만이야." - <나만이 없는 거리> 중에서


*제 평가는요: 그럭저럭




<동쪽의 에덴> (2009)
여자 주인공 포뇨 닮았어...

'집단 지성'을 통해 세상을 구하는 내용의 SF 애니메이션. 강력한 추천을 받은 작품이라 기대는 했지만... 사실 큰 감흥이 나지 않았던 작품이다.


예술을 접하는 데에도 '타이밍'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이 영화에서는 '집단 지성'이라는 키워드가 굉장한 핵심이다. 작품이 제작된 2009년에 봤다면 그 키워드가 굉장히 새로운 것으로 다가왔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연치 않게도 학부 시절 '집단 지성'에 대해 꽤나 심도 있는(?) 공부를 한 경험이 있다 보니, 이런 기획이 신박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애니메이션 속에서 그리는 근미래의 모습은 실제 현대 사회와 많이 닮아 있다. (스마트폰과 유사한 휴대폰 / SNS를 연상시키는 커뮤니티 등등) '오, 어떻게 이런 걸 예측했지. 맞아떨어졌잖아!'라는 생각보다 '음... 아는 내용이지'라는 생각이 더 많이 들었던 건, 결국 기술의 진일보란 당연한 수순이라 생각했기 때문일까?


그러나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의무를 갖고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을 구해야 하는 '세레손'에 대한 세계관 설정만큼은 흥미로웠다. 100억 엔이 들어 있는 휴대전화를 배부받은 그들에게 그 돈을 전부 사용해야 하는 의무가 주어진다. 각 세레손은 자신이 옳다고 믿는 가치관을 중심으로, 세상을 구하는 플랜을 수립한다. 그 플랜은 너무나 천차만별이며, 통찰력 있는 대유로서 활용된다. 원작에서는 세계관이 좀 더 심도 있게 그려졌을까? 근데 찾아서 볼 일은 없을 것 같다.


*제 평가는요: 비추천





나머지 12편은 '2020년 상반기에 본 시리즈들 (2)'에서 계속

매거진의 이전글 2020년 상반기에 본 영화들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