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밀입니다 6
얼마 전 사장이 고등학생인 딸의 과제를 지윤에게 맡겼다.
“이 정도는 해줄 수 있지.”
지윤은 사장방을 나오며 그의 말꼬리가 물음표였는지 마침표였는지 생각해 봤지만 끝내 기억나지 않았다. 그녀는 사장이 종이 한 장을 던져주며 퇴근 전까지 작성해 프린트 해오라길래 그 내용도 모르면서 ‘네!’라고 씩씩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뒤늦게 지윤은 그때 사장의 목소리나 태도, 표정을 기억하고 싶었다.
수경이 인수인계하면서 사장의 사적인 업무가 좀 있을 것이라고 지윤에게 전해주긴 했다. 하지만 자신과 몇 살 차이도 안 나는 딸의 과제를 대신하게 될 줄이야. 게다가 퇴근 전까지는 두 시간도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멍하니 고민할 시간조차 없던 지윤은 그냥 쉽게 가기로 결정했고, 인터넷과 챗GPT를 이용해 적당히 과제를 완성했다.
하지만 그날 밤, 퇴근한 지윤에게 그 딸이 직접 전화했다. 수행평가에 들어가는 내용이라 이렇게 무턱대고 베끼면 안 된다고 말이다. 짜증이 묻은 목소리의 사장딸은 과제가 다 되면 자신의 이메일로 보내라고 했다. 그 목소리에는 어떤 부탁이나 미안함, 부끄러움 같은 것은 없었다. 하지만 그 전화를 받고 있는 지윤은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애써 티 내지 않고 “네. 알겠어요.”라고 순순히 답하는 순간은 더욱 부끄러웠다.
박상무는 이 이야기를 전하며 지윤을 또 “아주 나쁜 녀석”이라고 불렀다. 그날 밤, 그녀가 사장 딸에게 첨부파일 없는 이메일을 보냈다는 것이다. 딸이 밤새 몇백 통의 전화를 했음은 당연하다. 지윤은 답하지 않았고, 그나마 가던 신호도 ‘전화기가 꺼져 있어...’라는 기계음으로 바뀌었다. 1교시 수업 과제라며 울고불고 난리를 치던 사장딸이 아빠를 들들 볶았음은 안 봐도 뻔했다. 평소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출근한 사장은 씩씩대며 지윤을 기다렸다.
하지만, 그날 그녀는 출근하지 않았다.
10시가 넘어서야 겨우 전화한 그녀는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밤새 몸이 너무 안 좋아 응급실에 왔다고 전했다. 전화를 받은 이 차장은 지윤에게 속사포처럼 빠르고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사장님 지금 난리 났어. 어제 이메일 첨부파일이 없었다면서? 이거 어떻게 수습해야 돼?”
지윤은 그제야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듯, 새벽에 응급실에 오느라 핸드폰이 방전되어 있는 것도 아침에야 알았다고 변명했다.
다음 날 출근한 지윤은 정말 안색이 좋지 않았다. 그럼에도 사장은 그녀를 불러 한 시간씩 세워놓고 소리를 질렀다. 이 차장은 평소 사장의 성격을 생각하면 더한 발광을 부릴 수 있는 일이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도 딸의 학교 과제로 직원을 나무라는 게 좀 걸렸는지, 아니면 지윤이 금방 쓰러질 것처럼 보이는 게 무서웠는지 그 정도 선에서 마무리를 지었다. 그런 사장의 모습을 보며 이 차장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사장님 성격 다 죽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