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밀입니다 8
이미영 차장은 ‘야근 수당’이라는 달콤한 열매를 위해 항상 9시에 퇴근했다. 그 시간이면 법카로 당당히 저녁도 해결할 수 있고 ‘택시 퇴근’도 가능하니 굳이 마다할 이유도 없었다.
“기다리는 사람도 없고 먹을 것도 없는 집에 가봐야 뭐 해.”
그날도 이 차장은 7시 넘어 배달 음식을 시켜 먹고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중이었다.
하릴없이 이것저것 흩었지만, 그녀는 요즘 비서실만큼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찾을 수 없었다. 철저히 관찰자적 입장에서 요즘 지윤의 일거수일투족만큼 신나는 일도 없었다.
“설마 저렇게 새파랗게 어린애가?”
역시나 지윤의 청순한 겉모습에 속은 박상무는 그녀의 비밀을 듣자마자 반신반의했다. 그리고 사장의 뒤통수를 세게 내리친 지윤의 행동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런 녀석이었구먼. 무서운 놈일세.”
박상무는 혀를 끌끌 차며 요즘 어린것들은 제멋대로라는 둥, 믿을 놈 하나 없다는 둥, 세상 무서워 못살겠다는 둥 이리 쿵 저러쿵 한동안 투덜댔다. 박상무의 이런 궁시렁에 모두 동의하는 건 아니어도 이 차장은 지윤이 좀 이상한 애라고 단정 지었다. 아무리 예쁘다고 해도 그렇지 벌써 비서실에 들락거리는 생각 없는 놈들이 몇 명인지.
“저게 여우야 여우. 조심해.”
이 차장은 어제 수경의 이야기를 전했을 때 얼굴이 붉어지던 지윤을 떠올리며 자기도 모르게 실실 웃음이 터졌다.
이제 사무실에는 아무도 없고, 이 차장은 갑작스러운 호기심으로 지윤의 책상을 둘러보기로 했다. 처음엔 그냥 책상 위에 뭐가 있나 눈으로만 흩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점점 대담하진 그녀는 서랍들까지 하나하나 열고 흩기 시작했다.
서랍 속은 제법 깨끗이 정리되어 있었고, 남자 직원들이 보내온 과자와 초콜릿 간식으로 넘쳤다.
‘집에 갖고나 가던가, 나 줄 것도 아니면서 뭘 이리 쌓아놨대?’
이 차장은 비싸 보이는 초콜릿 하나를 까먹으며 그 안에 있는 엽서와 편지들을 펼쳤다. 요즘 애들은 다들 자기 손으로 직접 쓰는 건 불가능한 건지, 사랑의 메시지라는 게 다 같은 검색 사이트에서 나온 듯 모두 천편일률적이었다. 그 식상한 표현과 뻔한 내용에 질린 미영이 이제 그 호기심의 문을 닫으려는 순간, 파일박스 하나가 눈에 띄었다.
‘ひみつ’
그녀는 회사 내에서 쓸 일이 없어 잠시 잊고 있었지만, 지윤이 일본어를 잘한다고 했던 말을 떠올렸고, 곧 핸드폰을 열어 저 단어의 뜻부터 찾아보았다.
“‘비밀’? 너무 노골적인 거 아니야?”
이 차장은 기껏 ‘비밀’이라 써놓고 이렇게 허술하게 내팽개쳐놓은 지윤의 야무지지 못한 행동에 코웃음을 치며 파일 박스를 열었다. 23살 어린 여자애 머릿속에서 할 수 있는 얄팍한 수를 상상하면서도, 그녀는 왠지 가슴이 두근댔다. 그리고 이 차장은 그 안에서 프린트된 종이 몇 장과 포스트잇 몇 개를 발견했다.
거기에는 얼마 전 사장딸이 해달라고 한 그 문제의 과제도 있었다. 학교에서 받은 프린트 그대로인 듯, 딸이 직접 끄적댄 글씨도 있었고 지윤이 작성했다던 첫 번째 결과물과 첨부파일로 보내지 않은 두 번째 결과물도 모두 보관되어 있었다.
‘얘는 보내지도 않은 과제를 왜 프린트해 놨어?’
이 차장은 대수롭지 않게 넘기며 다음 장을 보고 숨을 헉 들이켰다.
거기엔 사장의 이메일이 몇 개 프린트되어 있었다. 주로 사장과 박상무가 주고받은 이메일들은 몇몇 임원들과 직원들에 대한 평가는 물론 회사의 주요 전략에 관한 여러 가지 이야기들로 넘쳐났다.
“이런 것들을 왜 프린트해 놓았을까?”
문득 이 차장은 이 서랍을 열어본 사실을 들키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미 먹어버린 초콜릿이 떠올랐다.
‘설마 개수를 셌을까?’
이미 먹어버린 걸 뱉어낼 수도 없고, 이 차장은 일단 서둘러 파일부터 제자리로 돌려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