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명

- 비밀입니다 9

by 고미젤리

다음 날 아침, 해외 바이어와의 조찬 미팅에 박상무가 나타나지 않았다. 곧이어 바이어 쪽 에이전트 장대리가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했다. 계약은 이미 체결됐기 때문에 오늘은 그냥 예의상 조식일 뿐이긴 했다. 하지만 이렇게 시간이 넘도록 박상무가 연락이 안 되는 건 이상했다. 장대리의 난처함이 지윤에게도 전해졌다. 사장이 이 사실을 알면 극대노할 것이 분명했지만, 박상무는 지윤의 전화도 받지 않았다.

“이 차장님에게 알릴까?”

지윤은 잠시 망설이다 일단 자기 선에서 좀 더 알아보기로 했다.

그녀는 받지 않는 박상무의 전화 대신 그의 아내 핸드폰으로 연락했다. 좀 길게 신호가 이어지고 아무런 응답이 없다고 포기하려던 순간, 갑자기 통화가 연결되었다. 하지만 지윤이 들은 소리는 누군가의 다툼과 무언가 부서지는 것 같은 소란스러움이었다.

도둑이라도 든 건가? 집 안에 침입자가 있는 걸까? 경찰에 신고해야 하나?’


수만 가지 생각이 듦과 동시에 지윤은 ‘녹화’ 버튼을 눌렀다. 그렇게 그녀는 조용한 구석 회의실로 들어가 통화 연결이 끊어질 때까지 숨죽였다. 10분이 지났을까? 통화 연결 중이라는 걸 깨달은 누군가에 의해 전화가 급히 끊어졌다.

침착함을 되찾고 지윤은 곧바로 에이전트 장대리에게 전화했다.

“상무님 사모님이 갑자기 많이 아프신가 봐요. 지금 경황이 없으신 거 같습니다. 바이어 분께는 잘 말씀 전해주세요. 죄송합니다.”


그날 오후가 돼서야 사무실에 돌아온 박상무는 들어오자마자 지윤을 불러들였다.

“자네가 전화했나? 아침에 장대리한테?”

그는 일단 사태를 무마해 준 건 고맙다고, 정말 고마운 것 같지 않은 목소리로 얼버무리듯 전했다. 지윤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천진한 표정으로 박상무에게 대답했다.

“사모님이 아프시다고 둘러댔는데요. 어디가 아프시냐고 자꾸 집요하게 물으시더라고요. 혹시 큰 병인가 걱정하시는 것 같았어요. 제가 그럴지도 몰라 검사받으시는 중이라고 얼버무렸습니다. 작은 병인데 미팅 못 나오시는 거라면 아무도 안 믿잖아요.”

순간 박상무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하지만 할 말을 찾지 못한 입을 달싹대기만 할 뿐, 그는 눈을 슬며시 내리깔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고마워요. 나가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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