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미젤리 Nov 11. 2022

갤러리 둘레를 걷다

마을 독서 모임에서 미술 관련 책을 다루기로 했는데, 참여 인원이 적어 연기되었다. 다행히 나의 아쉬운 마음을 알아챈 한 분과 미술관에 가기로 했다. 그렇게 초봄의 어느 쌀쌀한 아침, 우리는 요즘 뜨고 있는 동네인 한남동 갤러리를 둘러 보았다.

전에 한강진 역 주변 사무실에서 근무한 적이 있어 나는 이 일대가 익숙하다. 예전에는 다소 이국적인 동네로만 알려져 있었지만, 리움 미술관 주변으로 아기자기한 작은 갤러리, 예쁜 식당, 카페들이 많이 생기면서 요즘은 유행에 민감한 젊은이들을 위한 소위 뜨는 동네가 되고 있다. 무엇보다 내가 이 곳에서의 근무를 즐겼던 이유 중 하나는 우리 사무실의 건물주가 연예인 ‘장동건’이었다는 것이다. 매달 임대료를 청구하는 세금 계산서가 우편으로 배달되어 왔고, 우리는 장동건에게 러브 레터라도 받은 양 즐거워하곤 했다.  그렇게 철없는 회사원들인 우리는 점심 후 운동삼아 산책을 즐겼고, 갤러리들은 그런 산책길 중간 중간 잠시 쉴 수 있는 휴식점이 돼 주곤 했다.

나는 그 때의 추억에 젖어 자신있게 이 곳을 둘러보자고 제안했고, 그 첫 방문지로 블루 스퀘어 큰 길 건너편에 있는 ‘갤러리 박’으로 향했다.

그날 1층과 지하1층에서는 브리타니 패닝 (Brittany Fanning)의 작품이 전시 중이었다. 선명한 색의 대비와 테두리 선은 만화 같은 느낌을 주고, 인물들의 옷에 놓은 자수가 입체감을 살려준다. 특이한 건 의상과 배경은 화려하지만, 인물들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얼굴을 헬멧으로 가리거나, 뒤를 보거나, 아예 화면 밖으로 얼굴을 자르고 목 아래만 그리고 있다.  

‘The whipped cream daydream’ 이라는 작품을 본다. 한 젊은 여성이 푹신해 보이는 카펫 위에 배를 깔고 누워 와인잔을 들고 있다. 하지만 여자가 쳐다보고 있는 창 밖으론 화산이 폭발하고 있다. 지극히 개인적인 일에만 관심을 두는 현대인들이 자연 재해 같은 외적인 일에는 방관자 적인 점을 비판하는 것일까?


                                                     

                                                     


두 번째 방문한 갤러리는 스튜디오 콘크리트이다. 가정집을 개조한 듯한 건물의 1층은 카페로 운영되고 있어 진한 커피 향이 내부를 감싼다. 2층에서는 박그림 작가의 ‘호로’가 전시 중이다. ‘호로’란 말 그대로 호랑이의 길이다. 그의 회화 작품에서는 민화 속 작고 귀여운 호랑이들이 등장한다. 반면 호랑이들과 같이 묘사된 사람들의 모습은 상당히 사실적이다. 작품 설명에 따르면, 현대 성형 의학, 화장품, 디지털 보정이 현실을 왜곡하고 있으며, 작가는 이런 왜곡에 의한 자기 혐오를 극복해 나가는 방법으로 호랑이를 미술적 페르소나로 선정했다고 한다. 어째 그림보다 작품 해석이 더 어려운 것 같다. 그림 속 호랑이들은 사람들의 심장을 파먹는 상당히 잔인한 행동을 하고 있지만 이들의 외모가 너무 귀여워서 그 행위의 심각성을 간과하게 되는 현실을 비판하는 듯 하다. 예쁘면 다 용서된다는 외모 지상주의에 빠져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제 길을 건너 리움 미술관 쪽으로 자리를 옮긴다. 조은 갤러리에서는 최명애 작가의 작품들이 ‘Green Days’ 라는 제목으로 전시 중이다. 정말 봄이 다가왔음을 느끼게 하는 그림들은 모두 밝고 화사하다. 가까이서 들여다 보니 물감이 두껍게 덧칠되어 있어 유화의 질감이 더욱 정성스레 느껴진다. 소파 위에 걸어두면 온 집안에 봄이 필 것 같은 그림들이다. 그림을 보는 즐거움이 ‘아름다움’에 있다면 정말 온 마음이 즐거워지게 하는 작품들이다.


                                                                                                                                         


이렇게 한강진역 주변 세 개의 갤러리를 둘러보는데 1시간이 좀 넘었다. 각 갤러리마다 자기 색이 뚜렷해 전시관 출입구를 여는 것은 선물 상자를 여는 것 같은 작은 설레임을 준다. 전시 준비중이라 아쉽게 못간 페이스 갤러리와 예약이 필요한 리움 미술관은 다음 숙제로 남겨두기로 하고 우리는 전망 좋은 카페로 옮겼다. 눈에 아름다운 양식을 채우고 속은 향기로운 음식으로 채우니 더 이상 바랄 게 없는 기분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