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명주는 아픈 엄마를 홀로 돌봤다.
딱 둘뿐인 자매인데, 언니는 그런 일을 하기엔 너무 귀한 사람이었다. 그 시대에 대학 나와 박사까지 하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언니는 잘나서 저렇게 ‘교수님’ 소리도 듣고 사는데, 명주는 아픈 엄마 뒤치닥 거리에 시름시름 앓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노력을 모르고 엄마는 정신이 나간 와중에도 죽은 오빠만 그렇게 찾았다.
‘그게 벌써 50 몇 년 전인가...’
오빠가 갑작스레 사고를 당하고 그 뒷바라지에 무슨 짓이든 하겠다고 나섰던 엄마는 항상 넋빠진 텅빈 얼굴을 하고 다녔다. 아직 중학생이었던 명주는 엄마가 장독 안에 구더기를 모으고 그걸 말리고 갈아서 오빠에게 먹이려 했던 그 정성을 기억했다.
“이게 속에 상처 난 사람들한테 그렇게 좋다더라. 가루를 파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걸 어떻게 믿냐. 우리 명석이는 내가 살려야지.”
마룻바닥 가득 펼쳐진 거머리들 때문에 발 디딜 팀도 없던 그 여름, 언니 명선은 엄마 방에 들어가 장롱을 뒤졌다. 엄마는 낮이고 밤이고 병원에 붙어 있으니, 말린 거머리 관리는 명주 차지였다. 하지만 학교 다니느라 바쁘다며 얼굴도 안 보이던 명선이 오랜만에 들이닥쳤고, 명주는 안중에도 없는 듯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무슨 일인지 영문을 몰랐던 명주였지만 왜냐고 묻지도 못했다. 그냥 빼꼼히 열려 있는 방문 틈으로 언니 옆에 놓여 있던 가락지 몇 개, 지폐 뭉치들이 눈에 들어왔다. 엄마가 월초마다 우리 남매를 불러놓고 용돈을 꺼내주던 그 장롱이었다. 돌아가신 아빠가 남긴 값나가는 물건들이 좀 있었을까? 언니는 옷들이며 이불이며 모두 들춰내고 솎아내더니 의기양양한 얼굴로 명주를 돌아봤다.
명선은 그때 그 돈으로 마지막 학기 등록금을 냈다고 했다. 정신없는 엄마가 오빠를 살리겠다고 집이라도 팔지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진 언니가 그날 금고를 차지한 거였다.
어쩌면 명선의 행동은 옳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정성을 들인 오빠가 끝내 거머리를 삼켜보지도 못하고 병원에서 눈을 감았으니 말이다. 이후로 엄마는 우울의 늪에 빠졌고, 명주는 생활의 늪에 빠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