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교육

- 언니네 집으로 8

by 고미젤리

명선의 며느리인 혜림은 일하느라 바쁘다는 핑계로 자기 시어머니 모시기를 남 일하듯 했다.

언니는 혜림이 돈도 얼마 못 벌면서 왜 일하는지 모르겠다고 투덜대곤 했다. 명주는 대학까지 나온 혜림이 버는 돈이 얼마인지는 몰랐지만, 언니가 저렇게 말할 정도니 정말 푼돈이나 버는구나 상상했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혜림에게 말 한마디 툭 던졌다.

“조카며느리야. 너는 왜 나가서 그 고생을 하니? 그냥 너네 시어머니 비위나 좀 맞춰주면 떨어지는 것도 많을 텐데.”

명주는 정말 혜림을 생각하며 한 말이었다. 하지만 혜림은 평소의 조용한 얼굴을 거두고 따박따박 따지기 시작했다. 그런 혜림의 태도와 바르르 떠는 입술을 보자 명주도 욱하는 마음이 들었다.

“내가 시이모면 시어머니랑 같지. 어디 어른 어려운 줄 모르고 목소리를 높여.”


명주는 그날 언니네 집을 나서며 이제 다시는 언니에게 가지 않겠다고 굳게 마음먹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언니를 간병하던 자신의 정성을 어린 며느리가 무시한다고 생각하니 너무 억울했다.

“지들이 아쉬우면 또 벌벌 떨면서 연락하겠지.”


명주는 조카 내외가 아이와 함께 여행을 간다며 자신에게 언니를 부탁하던 일을 떠올렸다. 어디 좋은데 가나 싶어 부러웠는데, 혜림은 날짜만 이야기하고 자세한 이야기는 해주지도 않았다.

“내가 지 시어미처럼 쫓아갈 줄 아나.”

명주는 좋은 말로 혜림에게 이것저것 꼬치꼬치 캐물어봤다. 하지만 혜림의 입에서 겨우 몇 마디 나온 건 ‘재석의 출장에 동반해 가는 것뿐이다, 남편이 일하는 동안 아이와 혜림은 호텔에만 있을 거다.’ 정도의 재미없는 이야기뿐이었다.

그렇게 2주간의 여행이 끝났을 때, 애들이 명주를 위해 사 온 건 겨우 초콜릿 한 상자였다. 2주 동안 집에도 안 가고 언니 옆에서 밤낮으로 간호한 대가가 이거라니.


“마트에 널린 게 이런 과자 나부랭이들인데...”


명주는 달디 단 초콜릿 하나를 입에 넣으며 맛을 음미할 새도 없이 단숨에 넘겨버렸다.


그날도 명주는 이제 언니네 집 발걸음을 끊어야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입속에서 살살 녹아버린 그 초콜릿처럼 명주의 결심도 오래가지 않았다. 혼자 있는 언니를 생각하면 이래저래 걱정이었고, 황량한 자신의 집에서 혼자 밥 해 먹는 것도 일이었다. 덥고 추운 날이면 더욱 언니 집이 그리웠다. 대보름이니 동지니 복날이니 하는 뭔가 먹는 날이 되면 그 집 밖엔 갈 곳이 없었다. 진짜 팥을 삶아 갈아 넣고 쫄깃한 새알심이 동동 뜬 따끈한 팥죽, 작은 영계 속, 대추, 인삼, 은행, 찹쌀을 꽉꽉 채워 넣은 복날의 삼계탕, 이런 모든 음식이 명주의 손에서 태어났다. 특히 재석이는 명주가 한 김치를 그렇게 좋아했다. 여름의 열무김치, 가을의 나박김치, 겨울의 김장과 동치미. 명주가 부엌에서 알싸한 마늘향을 풍기며 김치를 만들면, 재석은 코를 벌름대며 간 보기를 자청했다.


“노인네들은 밥이라도 같이 먹어야지, 안 그러면 외로워서 안돼.”

오랜만에 만난 간병인에게 명주는 설명하듯 말했다. 그래도 명주는 혜림이 퇴근하기 전 얼른 집을 나오는 건 잊지 않았다. 요즘 젊은 애들은 어른이 좀 타이르려 하는 걸 왜 그리 싫어하는지. 지난번처럼 따박따박 따지고 들면 이겨낼 자신이 없었다.

“언니 말마따나 혜림이가 가정교육을 잘 못 받아서 그런가 봐요.”

명주는 더운 여름날 언니네 집 시원한 에어컨 바람 아래서 수박을 먹으며 배시시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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