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니네 집으로 9
오래된 임대 아파트에 혼자 사는 명주의 집은 살림살이랄 것도 없이 황량했다.
오랜 관절염에 고생했다지만 엄마는 90이 훌쩍 넘기도록 장수하셨다. 결혼도 안 하고 별다른 수입도 없던 명주는 생활보호대상자가 되었고, 엄마를 모시고 산다는 이유로 이 임대 아파트 주민도 되었다.
엄마가 쓰던 안방에는 붙박이 장이 하나 있을 뿐, 가구라고는 서랍장 하나와 작은 TV 하나가 전부였다. 어차피 집에 잘 붙어 있지 않은 명주는 이불 한 장을 들고 잠도 여기저기 기분 내키는 데서 잤다. 안방은 다 엄마랑 같이 쓰던 물건들뿐이라서 인지 엄마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부엌에 있는 얼마 안 되는 살림살이도 엄마랑 같이 쓰던 그릇, 냄비 그대로였다. 솜씨 좋게 이것저것 뚝딱 근사한 요리가 만들어지던 그 부엌은 이제 물 한 방울 없이 바짝 메마른 날이 며칠씩이었다.
그래도 요즘 이 작은 집에 새로운 물건이 하나 둘 늘고 있었다.
“있는 집이라 그런가?”
언니는 물건을 잘도 버렸다. 얼마 전 명선의 방에 있던 화장대를 버리려고 하길래 명주는 얼른 자기가 가져가겠다고 했다. 요즘은 버리는 것도 돈이라 혜림은 명주의 결정을 좋아라 했다. 그렇게 언니네 집에서 얻어 온 물건들이 자신의 집에 차곡차곡 쌓여갔다. 약간 구식이지만 전자레인지도 어렵게 들고 왔고, 성애가 잘 껴서 골치 아팠던 언니 방 작은 냉장고도 카트에 싣고 왔다. 한번 쓰고 불편하다 버린 베개에 이불, 옥장판이며 마사지기, 심지어 에어프라이어에 토스트기까지 명주는 그 집에서 버리려고 하는 물건들은 일단 실어오고 봤다. 하지만 명주가 진짜 눈독 들이고 있는 건 큰 옷장에 여러 벌 걸린 저 반지르르한 밍크코트였다.
명주는 이번 겨울, 저 코트만 입으면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며 언니가 목욕하는 사이 살짝 입어보았다. 그 은은한 갈색빛 털들이 가지런하면서도 촘촘히 명주의 몸을 감쌌다. 역시 자신의 흰 얼굴에는 약간 진한 이 갈색털이 제격이었다. 언니는 은빛 코트를 더 즐겨 입는 것 같았지만, 역시 밍크는 중후함이 생명이었다.
‘어차피 언니는 외출도 못하고, 그 집 며느리는 이런 스타일은 촌스럽다고 입지도 않을 테고.’
명주는 이 반질반질한 밍크가 제값을 하려면 자신이 나서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처음엔 언니에게 이야기를 꺼내볼까 생각했지만, 굳이 그렇게 일을 크게 만들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예전에 언니가 엄마에게 코트 하나 사드리겠다고 했을 때, 외출할 일도 없는 엄마에게 밍크가 뭔 소용이냐고 거절했던 기억이 났다.
‘그때 엄마에게 선물했던 그 코트라고 퉁치면 되지.’
명주는 속으로 이런저런 셈을 마치고, 아무런 거리낌 없이 코트 하나를 준비해 간 가방에 쑤셔 넣었다.
이후로 명주는 언니네 집으로 가는 발걸음이 참 가볍고 즐거웠다.
언니가 목욕하는 동안 장롱도 한 번 열어보고 서랍도 한번 열어봤다. 그녀는 자신의 것인 양 화장품도 발라보고 반지도 이리저리 껴보고 했다. 항상 좋은 물건만 쓰는 언니의 서랍은 포장도 뜯지 않은 물건들이 수두룩했다.
오늘도 명주는 비싸 보이는 명품 립스틱 하나를 주머니에 넣었다. 간병인 아줌마 말로는 다 오래돼서 기한이 지난 거라고 했지만, “누가 그런 걸 따지나. 상표만 보여주면 다들 부러워할걸.” 중얼대며 더도 말고 딱 한 개만 주머니에 챙겼다.
“그동안 언니네서 일해준 거 생각하면 이 정도야 당연한 거지.”
명주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오늘도 그녀는 언니와 함께 잘 고아진 삼계탕 한 그릇을 뚝딱 나눠먹고 잠시 누워 노닥거리다 집으로 돌아왔다. 아침에 가져갔던 참외는 명주가 몇 개 먹고 나머지는 다시 그녀의 손에 들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