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주인공

by 고미젤리

재작년 연극 강좌를 수강하며 꼭 다루고 싶었던 희곡을 독서 모임에서 같이 읽어 보기로 했다. 나는 영화 ‘원더’를 통해 알게 된 ‘우리 읍내’를 선정하며, 작품 토론뿐 아니라 강좌에서 배웠던 연극 놀이도 해보겠다는 야심 찬 기획을 발표했다. 의외로 모두들 흥미 있어하며, 내친김에 한 부분을 같이 연기해 보고 여우 주연상까지 뽑아 보자고 한다.


‘우리 읍내’는 작은 마을의 평범한 가족과 이웃에 대한 이야기이다. 주인공인 에밀리의 성장 과정을 잔잔하게 보여주는데, 그 일상적인 모습들은 지금 우리와 다름이 없다. 그렇게 조금 심심한 생활이 계속될 줄 알았지만, 젊은 에밀리는 아이를 낳다 허망하게 죽는다. 이승을 떠나기 전 인생의 가장 소중했던 순간을 되돌아보게 된 그녀는, 그 아름다운 시간들이 가족과의 평범했던 하루들임을 깨닫는다. 그 행복한 순간을 그때는 왜 느끼지 못했을까?


‘안녕. 이승이여, 안녕. 우리 읍내도 잘 있어. 엄마, 아빠, 안녕히 계세요. 째깍거리는 시계도, 해바라기도 잘 있어. 맛있는 음식도, 커피도, 새 옷도, 따뜻한 목욕탕도, 잠자고 깨는 것도. 아, 너무나 아름다워 그 진가를 몰랐던 이승이여, 안녕.‘


나는 일상을 보여주는 이 연극을 통해, 살면서 무슨 커다란 의미나 목적을 추구하기보다 주변의 가족과 이웃의 사랑을 알아채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렇게 감동적인 내용이지만 희곡을 혼자 읽어서는 그 감흥이 잘 안 온다. 회원들 모두 길지 않음에도 끝까지 읽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불평할 정도이다. 아마도 희곡은 독서를 위한 작품이 아니라, 무대와 배우에 의해 관객 앞에서 시현되는 것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우리 읍내’는 극 중 몰입을 일부러 방해하기 위해 중간중간 해설자가 끼어들고 극적 사건이나 커다란 갈등도 없다 보니 글로만 읽어서는 지루할 수 있다.

이렇게 작품에 대한 약간의 불만을 나누고, 우리는 놀이를 통해 연극을 이해해 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사실 연극 강좌라고 하면 처음부터 배역을 나누고 대사를 외우며 연기를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초반 몇 주 동안은 과연 연극과 무슨 상관일까 싶은 놀이들만 주로 했다. 몸을 써서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이나, 서로 호흡을 맞추기 위한 팀워크 쌓기 등을 통해 내공이 쌓여야 좋은 연기가 나오는 것이지, 연극은 하루아침에 뚝딱 만들지는 것이 아니었다.


연극 놀이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서로의 눈을 조용히 들여다보는 시간이었다. 아무 말없이, 그냥 이해한다는 눈빛으로, 그 사람의 마음을 읽어주고 공감해 주려는 눈빛을 보내며, 지그시 서로의 눈을 들여다본다. 처음에는 조금 쑥스럽지만 타인의 눈빛을 통해 굉장한 위로를 받는 느낌이 들었다. 나도 잠시 눈물이 핑 돌았고, 어떤 분은 소리 내어 울기도 했다.


다른 사람과 일정한 거리를 두는 놀이도 흥미로웠다. 우리는 연필 한 자루의 각 끝을 손 끝에 대고 연필이 떨어지지 않도록 하며 음악에 맞춰 움직였다. 앞사람이 뒤로 물러서면 내가 다가가야 하고, 내가 앉으면 같이 앉아 주어야 한다. 이렇게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각자의 행동을 읽으려 노력하다 보니 그 사람의 동작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말없이 연필 한 자루에 실려 오는 신호를 읽으며 상대방에게 집중하다 보면 ‘우리’라는 연대감이 피어오른다.


연극에는 보이지 않는 스태프들도 있지만, 무대 위에도 여러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중 가장 많이 나오는 주연도 있을 것이고 역할이 작은 조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사를 뱉는 그 순간만큼은 주연이든 조연이든 모든 관객의 주목을 독차지하게 된다. 그렇게 생각하니 아무리 작은 역할이라도 소홀히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몇 가지 놀이를 하며 몸을 푼 후, 우리는 에밀리의 명대사를 돌아가며 연기했다. 모두들 처음 해보는 연기라 어색하기 그지없지만, 전체 내용을 숙지한 후 다시 읽어보는 장면은 남다른 감흥을 불러온다. 특히 놀이를 통해 연극의 속성을 조금 이해하고 나니 의외의 명연기들이 쏟아졌다. 치열했던 ‘여우 주연상’을 선정하고 멋진 수상 소감까지 들어보며 왁자지껄 즐거운 시간도 보냈다.




‘살면서 자기 삶을 제대로 깨닫는 인간이 있을까요?’

연극이 끝나고 난 후, 지금도 잊히지 않는 에밀리의 마지막 질문을 되새겨 본다. 우리에게 그런 마지막 순간이 온다면 언제로 되돌아가야 할까?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들을 되새기며 행복하게 생을 마감할 수 있을까? 내 인생의 마지막 날, 주인공인 나에게 주연상을 안겨줄 수 있기를 바래본다.

이전 14화나도 배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