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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미젤리 Jun 29. 2023

101세 호상

남편 외할머니가 10여 년 전 101세로 돌아가셨다. 경조사 휴가를 위한 증빙용으로 사망확인서를 발급받아 보니 1919년생이셨다. 하지만 할머니가 기억하시는 생일은 그 보다 몇 년 전이셨으니, 아마도 그때는 출생신고를 제때 못해서였던 것 같다. 어쨌든 3.1 운동이 발생했던 1919년생이시라니, 그런 역사적 사건이 있던 때 태어나셨다는 것을 문서로 확인하는 것은 신기했다.


내가 결혼하면서 할머니를 처음 뵈었을 때도 할머니는 80이 훨씬 넘은 노인이셨다. 관절이 안 좋아서 오래 걷지 못하셨지만, 드라마나 연예인들을 나보다 더 많이 아셨다. 누가 누구와 실제 부부인지, 어디 출신인지, 지난번 어떤 드라마에 나왔는지는 물론 줄거리 요약까지 해 주실 정도였으니, 가끔은 연세를 가늠하지 못할 정도였다.


할머니는 가끔 옛날 앨범을 보여주시곤 했다. 일제강점기에 여학교를 졸업한 엘리트셨던 할머니의 앨범에는 곱게 머리를 딴 어린 할머니가 계셨고, 여러 친구들과 함께 있는 금강산 수학여행 사진도 있었다. 할머니는 이때를 회상하시며 내가 세상에서 제일 잘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사셨는데, 결혼과 함께 모든 게 무너졌다고 슬퍼하시곤 했다. 할머니 시아버지가 너무 엄하셨던 것이다. 할머니는 시아버지 기침소리에도 벌벌 떨었다고 하셨다. 사대문 안 부잣집 며느리로 남들 보기에는 참 행복해 보였을 테지만, 신여성이었던 할머니에게는 많이 답답한 생활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다소 전형적인 진부한 이야기 같지만, 시아버지의 첩이 모든 재산을 들고 날라버려 모든 가족이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생활력이 강하지 않았던 남편과 어렵게 살림을 꾸려가며, 할머니는 해방과 6.25와 전쟁 후의 가난을 견뎌내셨다.


그런 굴곡진 삶을 사셨던 할머니의 인생에서 가장 자주 하시던 말씀 중 하나는 병으로 일찍 돌아가신 막내아들에 관한 이야기였다. 좋다는 약을 찾아 안 가본 데가 없다고 하셨다. 심지어 구더기가 좋다는 말을 어디서 듣고 정성스레 말려 갈아 먹이기까지 했지만, 막내는 허망하게 죽었다고 했다. 지금 있는 자식들 중 제일 잘 생기고 착한 아들이었는데, 그 아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너무 슬프다고 하셨다.


할머니는 혼자된 큰아들과 같이 살고 계셨다. 집에 여자가 없다 보니 몸이 좀 안 좋을 때마다 몇일씩 또는 몇 달씩 우리 집에 머물다 가시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할머니의 딸들인 이모들도 자주 방문하셨다.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손주 며느리인 나로서는 시어머니의 어머니에 시이모님들까지 바글바글해지는 상황이 반가울 리 없었지만, 할머니는 나에게 언제나 관대하셨고, 자잘한 일들은 이모들이 맡아하셨기에 큰 불만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가 화장실에 갇혔다. 그날따라 시어머니와 시이모 들도 안 계시고 나만 있었는데, 할머니가 화장실 안에서 잠금장치를 누른 거 같았다. 관절염으로 혼자 일어설 수 없는 상황이라 내가 들어가서 부축해야 했는데, 안에서 잠겨 버렸으니 나로서는 속수무책이었다.


할머니에게 문 손잡이를 돌려보시라고 했지만, 갑자기 어린아이가 되어 버린 할머니는 엉엉 소리 내 우시며 못하겠다고 하셨다.

어쩔 수 없이 화장실 열쇠를 찾아봤지만, 한번도 쓸 필요를 느껴보지 못한 열쇠의 행방은 오리무중이었다. 여기저기 서랍을 뒤지느라 몇 분이 소비되었고, 그동안 할머니의 공포는 배가되었다. 급기야 ‘살려주세요!’라는 비명이 터져 나온다. 그런 소동을 느끼며 열쇠를 찾는 동안 내 마음도 공포에 젖었다.


겨우겨우 열쇠를 찾고 문을 열고 보니 할머니는 정말 사시나무처럼 떨고 계셨다.

시간이 많이 지난 후 좀 여유를 찾게 된 할머니는 말씀하셨다. 나이 들고 몸이 제 것 같지 않아도 죽는 건 너무 무섭다고, ‘늙으면 죽어야지, 이제 죽을 때도 됐지’라는 생각을 하지만, 그래도 막상 죽음이 현실이 되는 순간 너무 공포스러웠다고 하셨다.




그렇게 겁 많고 여린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하니 마음이 안 좋았다. 모든 사람이 태어났으면 죽는 시간도 다가온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자신의 죽음은 당연하지 않다.

할머니 장례가 끝나고, 사망 확인서를 발급받아 회사에 제출하니 모두들 호상이라고, 백수를 누리셨다고 좋은 말들만 건넸다. 오래 앓으셨으니 이제 정말 편안하실까?


그날 화장실 안에서 살려 달라고 외치던 할머니를 생각하면, 단지 나이만으로 죽음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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