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미젤리 May 11. 2023

모멸당하지 않기

 친구들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최근 겪은 인간관계에 대한 한풀이가 시작되었다. 어차피 친구가 욕하는 상대를 내가 직접 만날 일도 없고, 무슨 거창한 정의의 실현이 필요한 것도 아니니 모두들 편하게 이야기하고 공감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A는 어버이날을 맞아 시댁에 모여 식사를 했다. 하지만 언제부터 인가 형님이 이유 없이 냉랭 해졌다. 왜 그런지 물어봐도 대답하지 않고, 다른 식구들이 모두 눈치챌 정도가 되자 본인도 불편해졌다. 결국 시어머니가 두 며느리를 화해시키려 노력했고, A는 혹시나 자신이 잘못한 건 없는지 스스로를 반성해 보기까지 했다. 온 가족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형님은 입을 꼭 다물고 있다고 한다. 우리도 명탐정 셜록이 되어 이런저런 이유를 추측해 봤지만, 결국 결론은 없었다. 아마 형님의 서운한 마음이 꼭 A에게서 비롯되었다기 보다, 결혼과 시댁이라는 복잡한 관계 속에서 조금씩 독처럼 자라났을지도 모르겠다. 


 B는 고등학교 때부터 친하게 지냈던 친구 그룹이 있는데, 그중 두 명의 관계가 멀어지면서 다른 친구들까지 곤란 해졌다. 항상 형편이 어렵다고 투덜대는 친구 하나가 최근 해외여행을 다녀온 걸 보고 다른 친구가 ‘어렵다더니 잘 놀러 다니네.’라고 이야기한 것이 화근이었다. 결국 화난 친구는 카톡방을 나가버렸고 모두를 차단해 버렸다. 원래 세상의 어려움과 고통은 모두 자기 것인 양 이야기하면서 실제로는 꼭 그렇지도 않은 친구들이 있다. 삶의 수준에 대한 자기 관념이 달라서 그런 거겠지만, 그걸로 다른 친구들까지 모두 차단하는 건 너무했다.


 C는 어떤 모임의 회원이 단체 사진을 자신의 카톡 프로필에 올렸는데, 거기에 C 자신도 올라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번호만 알면 누구라도 보게 되는 공개된 프로필이 불편해 내려 달라고 했는데, 쓸데없이 예민한 사람이라며 면박까지 당했다. 약간의 언쟁이 이어진 끝에 이들도 서로를 차단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다른 사람의 사진을 올리면서 승낙도 받지 않고, 게다가 자신이 못 생기게 나온 사진이 타인의 프로필에 박제되다니 싫을 만도 했겠다.


 D는 회사 상사 때문에 곤란해졌다고 했다. 중요한 조찬 일정이 있었는데 상사가 그 자리에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알고 보니 그 상사는 불륜이 들통나는 바람에 부부 싸움이 크게 일어나 도저히 회사에 올 상황이 아니었다. 결국 상사는 D에게 적당히 핑계를 대 달라고 부탁했다. 그 적당한 것을 찾지 못한 D는 상사의 부인이 아프다고 둘러댔는데, 말이 여러 사람을 거치면서 부인이 큰 병에 걸린 것으로 확대되었다. 황당하게도 상사는 D에게 짜증을 냈고 D는 자존심이 상했다. 지저분한 사생활로 업무까지 영향을 준 게 누군데 적반하장이 따로 없다.



 이 상황에 쓸데없이 진지하게 나는 ‘모멸감’이라는 책이 떠올랐다. 심리학자인 슈템러가 쓴 이 책은 ‘끝낸다고 끝이 아닌 관계’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현대 사회의 개인은 모두 높은 자기 가치감을 가지고 있고 그걸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문제는 상대방도 자기 가치감이 높기 때문에 서로를 인정해 주지 않고, 결국 존중 욕구의 좌절이 모멸감으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친구나 가족, 직장 동료 등 인간관계는 보통 다수와 엮이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한 사람 차단한다고 해서, 또는 한 사람에게만 거짓말을 한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내 입장에서는 내가 피해자, 저쪽이 가해자지만,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는 딱히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니 형님을 화나게 한 것이 나는 아닌지 고민해야 하고, 나보다 잘 살면서 없는 척하는 친구는 정서적 가해자일 수 있다. 프로필에 올린 내 추억을 내리라고 요구하는 건 나를 무시하는 것이고, 곤란한 상황을 더 곤란하게 만든 직원에게 제대로 화도 낼 수 없는 상사는 모멸감을 느낄 수도 있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무엇일까? ‘모멸감’이라는 책은 대화에 신중하라고 한다. 언행을 주의하고 예절 관습을 중시하며 타인에 대한 비판은 단도직입적으로 하지 말란다. 상대방이 나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방식대로 상대에게 행동하라고도 한다. 모멸감은 결국 해석의 문제이므로 자신이 나르시시즘적이진 않았는지, 타인에게 너무 많은 기대를 한 건 아닌지 겸손하게 돌아보라고 한다. 




 모멸감을 주고받지 않기 위해 이렇게 피곤하게 따지고 살아야 하다니, 그냥 나에게 모멸을 주는 사람과는 관계를 끊어버리는 게 편하겠다. 책은 그냥 참고 자료일 뿐, 시키는 대로 다 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냥 오늘처럼 친구들과 모여 모멸감을 준 그들을 욕하고, 내가 나쁜 게 아니었다는 위로를 받고 풀어버리자. 그게 오늘 우리 대화의 결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로봇이 아닙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