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미젤리 Mar 10. 2023

로봇이 아닙니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라는 책은 신경학 전공의인 올리버 삭스가 본인이 진료했던 환자들에 대한 증상과 원인들에 대해 알기 쉽게 서술한 의학 에세이다. 이 중 책의 제목과 같이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인 P 선생에 관한 사례는 상당히 흥미롭다. 그는 지능, 시력, 신체적 능력 등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사람의 표정, 남녀의 구별 등 사물을 인식하는 데에 문제가 있었다. 신기하게도 그는 정육면체나, 십이면체 등 추상적 형태는 쉽게 구별하는데, 바로 옆에 있는 아내는 알아보지 못한다. 그에게 부족한 것은 자신이 본 것을 관계와 연결시키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우리의 뇌는 하나의 기계라고 할 수 있지만, 우리가 감각으로 받아들이는 대상을 분류하고 범주화하며 판단하고 느끼는 것은 기계가 할 수 없는 인간만의 능력이라고 말한다. 


나는 이 에피소드를 읽으며 뇌과학자인 정재승의 ‘열두 발자국’이라는 책을 떠올렸다. 정재승 박사는 강아지 치와와와 초콜릿이 세 개 박힌 머핀을 AI가 구별해 내지 못한다고 한다. 아래의 그림을 보면 머핀과 강아지가 좀 닮아 보이긴 한다. 하지만 인간이라면 이 정도쯤 이야 거뜬히 맞출 수 있는데, 그렇게 잘났다는 AI가 이것도 못한다고 하니 좀 우쭐해지기도 하다.

그래서 웹사이트에 회원 가입할 때마다 우리에게 ‘로봇입니까?’라고 물으며 비슷한 문제를 냈나 보다. 프로그램을 통한 가상의 유령 회원가입을 막자는 의도였겠지만, 매번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왜 내가 이런 이상한 질문에 답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어쨌든 올리버 삭스는 P와 비슷한 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들의 사례가 계속 발견되고 있으며, 이런 환자들은 시각 능력의 문제가 아닌 시각적 상상력과 기억력, 즉 시각으로 들어온 정보를 해석하는 능력이 손상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AI 또한 인간이 당연하게 가지고 있는 감각을 해석하고 관계를 연결하는 상상력과 기억력이 부족한가 보다. 하지만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과학기술을 생각하면 이 정도 격차쯤 이야 금방 따라 잡힐 것이 분명하다. 이제 ‘로봇입니까?’라는 질문과 그림 맞추기 퀴즈가 더 이상 로봇과 인간을 구별하지 못하는 날도 올 것이다. 




그래도 AI가 따라올 수 없는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성은 항상 존재하기를 바란다. 특정 분야에서 인간이 그들을 따라갈 수는 없겠지만 이 또한 인간의 편의를 위해서일 테니 지혜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적응해야겠다. 인공지능 로봇 덕분에 우리의 일상이 얼마나 편해질 수 있을지에 대한 기대가 더 크기 때문이다. 

작가의 이전글 초짜 도둑의 운동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