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라는 책은 신경학 전공의인 올리버 삭스가 본인이 진료했던 환자들에 대한 증상과 원인들에 대해 알기 쉽게 서술한 의학 에세이다. 이 중 책의 제목과 같이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인 P 선생에 관한 사례는 상당히 흥미롭다. 그는 지능, 시력, 신체적 능력 등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사람의 표정, 남녀의 구별 등 사물을 인식하는 데에 문제가 있었다. 신기하게도 그는 정육면체나, 십이면체 등 추상적 형태는 쉽게 구별하는데, 바로 옆에 있는 아내는 알아보지 못한다. 그에게 부족한 것은 자신이 본 것을 관계와 연결시키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우리의 뇌는 하나의 기계라고 할 수 있지만, 우리가 감각으로 받아들이는 대상을 분류하고 범주화하며 판단하고 느끼는 것은 기계가 할 수 없는 인간만의 능력이라고 말한다.
나는 이 에피소드를 읽으며 뇌과학자인 정재승의 ‘열두 발자국’이라는 책을 떠올렸다. 정재승 박사는 강아지 치와와와 초콜릿이 세 개 박힌 머핀을 AI가 구별해 내지 못한다고 한다. 아래의 그림을 보면 머핀과 강아지가 좀 닮아 보이긴 한다. 하지만 인간이라면 이 정도쯤 이야 거뜬히 맞출 수 있는데, 그렇게 잘났다는 AI가 이것도 못한다고 하니 좀 우쭐해지기도 하다.
그래서 웹사이트에 회원 가입할 때마다 우리에게 ‘로봇입니까?’라고 물으며 비슷한 문제를 냈나 보다. 프로그램을 통한 가상의 유령 회원가입을 막자는 의도였겠지만, 매번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왜 내가 이런 이상한 질문에 답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어쨌든 올리버 삭스는 P와 비슷한 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들의 사례가 계속 발견되고 있으며, 이런 환자들은 시각 능력의 문제가 아닌 시각적 상상력과 기억력, 즉 시각으로 들어온 정보를 해석하는 능력이 손상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AI 또한 인간이 당연하게 가지고 있는 감각을 해석하고 관계를 연결하는 상상력과 기억력이 부족한가 보다. 하지만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과학기술을 생각하면 이 정도 격차쯤 이야 금방 따라 잡힐 것이 분명하다. 이제 ‘로봇입니까?’라는 질문과 그림 맞추기 퀴즈가 더 이상 로봇과 인간을 구별하지 못하는 날도 올 것이다.
그래도 AI가 따라올 수 없는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성은 항상 존재하기를 바란다. 특정 분야에서 인간이 그들을 따라갈 수는 없겠지만 이 또한 인간의 편의를 위해서일 테니 지혜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적응해야겠다. 인공지능 로봇 덕분에 우리의 일상이 얼마나 편해질 수 있을지에 대한 기대가 더 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