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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미젤리 Sep 27. 2023

잠시, 안녕

1년 동안 꼬박 해 온 글쓰기 수업을 잠시 쉬기로 했다. 경력 단절 여성을 위한 지원금을 받게 되어 자격증을 주는 다른 강좌를 듣게 된 것이다. 사실 많고 많은 날들 중 하필 글쓰기 수업과 겹치게 되어 좀 망설이기는 했다. 하지만 ‘자격증 강좌는 단기 3개월이고, 글쓰기는 내년에 다시 돌아가면 되지.’라고 나 자신을 설득했다.




1년 전 ‘초보 작가 글쓰기’ 수업을 등록할 때가 생각난다. 50이 넘은 내가 상당히 젊은 축에 속할 만큼 모인 분들 거의 연세가 지긋해 보이셨다. 살아오신 세월만큼 글로 남기고 싶은 일도 많으신 듯, 수강생들 모두 겪은 일과 걸어온 길들이 참 다양하셨다. 강의를 하시는 선생님도 겉모습의 젊고 세련된 인상과 달리, 시골 생활의 구수함을 재미있게 말씀하시는 분이셨다. 집에서 만들던 옛 음식, 감나무를 오르고 반딧불이를 쫓던 어린 시절들을 이야기하실 때는 신이 나서 어깨춤을 추시기도 했다.


이 강좌의 또 다른 매력은 다른 회원님들의 작품을 듣고 이야기하는 시간이었다. 사실 일주일에 매주 한 편씩 산문을 써오는 건 대단한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그런데도 꾸준히 자신만의 이야기를 써 오시고 그걸 직접 들려주시니, 모든 글들이 반짝반짝 살아났다.  


클래식 콘서트를 즐기다 아이돌 콘서트까지 체험했던 일, 금주령이 있던 시절 명절술을 빚었다 발각됐던 이야기, 탁구에 진심인 마음, 젊은 시절 어렵게 사업을 일궜던 과정, 가족의 병으로 힘들었던 마음 등등, 모든 이야기들 안에는 회원님들의 눈물과 웃음이 가득한 얼굴이 있었다. 




지난주, 잠시 쉬었다 가겠다고 말씀드렸더니 선생님이 직접 쓰신 시집을 한 권 주셨다. 첫 장을 펼치자마자 내 마음과 똑같은 글이 보인다. 


‘지금 막 모퉁이를 돌아섰다.


잡고 있던 무엇인가 내 속을 빠져나갔다.


마음은 텅 비고 허전한데


자꾸 저 먼 길이 궁금하다.’


(공화순 선생님의 시집 ‘모퉁이에서 놓친 분홍’ 중, 시인의 말 전문)


선생님, 회원님들, 

저는 그 궁금한 길,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수업은 참여 못 해도 브런치를 통해 꾸준히 쓰도록 노력할게요. 내년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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