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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미젤리 Nov 30. 2023

잔소리도 유전

 요즘 딸의 잔소리가 부쩍 늘었다. 남편한테는 운동 안 한다, 술 끊어라, 담배 끊어라 잔소리고, 나에게는 커피 마시지 마라, 많이 걷지 말아라 별별 잔소리다.


 지난번엔 횡단보도 앞에서는 내 앞을 손으로 가로막더니 서두르지 말라고 한다.  무단 횡단을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빨간불에 가만히 서 있었는데 말이다. 뭐 내가 성격이 급해서 파란불 바뀌자마자 튀어나간다나 뭐래나. 아직 내 눈에는 코 찔찔이 유치원생 같은 딸인데, 갑자기 우리들의 처지가 바뀐 느낌이다.


 지난 주말, 딸이 친구들과 저녁 약속이 있다 길래 남편과 나는 오붓한 술자리를 갖기로 했다. 집에서 마시려면 얼마나 잔소리를 하는지 없을 때 좀 맘 편히 먹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막 집을 나서려는 순간 딸이 약속이 취소되었다고 톡이 왔다. 순간 한숨이 푹 나왔다. 오늘 술은 다 마셨다. 남편과 나는 애 오기 전 얼른 한 병 마시고 안 먹은 척하기로 했다. 하지만 반도 마시기 전 빨리도 나타난 딸은 우리에게 폭풍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술이 몸에 안 좋은 거야 세상 사람 누구나 알지만 그래도 가끔 마시면서 스트레스도 푸는 거지, 우리가 무슨 알코올 중독도 아닌데 얼마나 질책을 하는지, 옆 테이블에서 들을까 민망하기까지 했다. 딸은 한참 늘어놓은 잔소리에 스스로 지쳤는지 결국 우리가 나중에 아프면 자기는 모른 척할 거라는 극악한 엄포까지 놓았다. 참 치사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나도 우리 엄마에게 잔소리꾼이었다. 엄마가 이모랑 싸웠다고 투덜대면 사정도 듣기 전 엄마 잘못이라고 지레짐작을 했고, 엄마 집 냉장고를 열어보고 이런저런 잔소리도 많이 퍼부었다. 그중 가장 큰 나의 불만은 엄마의 뜨개질이었다. 그냥 한두 시간 수세미나 몇 개 뜨는가 싶더니, 목도리에 모자 세트를 뜨고, 소파 커버에 커튼까지 뜨고 있었다. 점점 커가는 스케일과 함께 엄마의 손목 통증도 더해 갔다. 매일 파스를 붙이고 살면서도 손에서 놓질 못해 그만 좀 하라고 말렸지만 엄마는 듣지 않았다.

 

 하루는 엄마가 몇 날 며칠을 새어가며 만든 숄을 가져와 시어머니에게 선물했다. 알록달록하지만 꽤나 따뜻해 보여서 거기에 들인 노력과 정성이 상당해 보였다. 하지만 그런 걸 알아봐 주고 고마워할 시어머니가 아니기에 나는 엄마의 노력이 속상했다. 결국 겨울 내내 어디 갔는지 찾아볼 수 없었던 엄마의 숄은 기부 물품을 담아 둔 상자 안에서 발견됐다. 역시나 그런 걸 고마워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도 그렇지 돈 주고 산 물건도 아니고 직접 짜 선물한 것을 저렇게 취급하다니, 지금도 화가 난다.


 굳이 변명하자면 내가 엄마에게 했던 잔소리는 모두 그럴 만한 것이었던 것 같다. 과연 엄마도 나와 같은 생각인지는 모를 일이지만 말이다. 엄마에게 퍼부었던 잔소리만큼 이제 딸에게 되돌려 받는다. 막 성인이 된 딸의 잔소리가 벌써부터 귀에 거슬리니 앞으로가 더 큰일이다.




 그래도 딸을 통해서 엄마의 속상했을 마음을 조금 느껴본다. 어쩌면 ‘너도 똑같이 당해 보라’는 의미로 나에게 딸이 생긴 건 지도 모르겠다. 내가 엄마에게 했던 잔소리를 되갚기 위해서라도 나 잘되라고 하는 딸의 잔소리를 경청해야겠다. 잔소리도 유전인 걸 어쩌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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