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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미젤리 Nov 02. 2023

책은 드라마틱

북캉스 3

아침 눈을 뜨자마자 커튼을 살짝 젖혀보니 눈이 내리고 있었다. 어제 낮은 분명히 따뜻한 가을 날씨였는데 하루아침에 이게 웬일인가? 핸드폰을 확인해 보니 영하 1도, 아무리 그래도 10월에 눈을 보다니 무슨 공간 이동이라도 한 느낌이다. 1박 2일 짧은 일정이라 따로 챙긴 옷도 없고 지금 입고 있는 찢어진 청바지 하나뿐이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어제까지는 별 문제될 게 없었는데, 오늘은 이 바지 하나로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 


밤에 잘 때 입으려고 챙겨 온 웃옷을 다 껴 입었더니 상체는 든든했다. 북캉스의 마지막 일정으로 곤돌라를 타게 되어 있었고, 걸어 올라가는 등산을 하는 것도 아니니 뭐가 문제랴 싶었다. 그렇게 올해, 겨울이 아닌 가을의 첫눈을 강원도 정선에서 맞게 되었다.


호텔 로비를 나서자마자 매서운 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허벅지 사이로 찬 바람도 쌩쌩 들어왔다. 애써 안 추운 척했지만 마주치는 사람들마다 괜찮겠냐고 걱정들을 해 주신다. 곤돌라가 있는 산 중턱까지 버스를 타고 이동해 보니 예상보다 많은 사람들이 운집해 있었다. 아마도 무슨 걷기 대회가 있었나 보다. 아이들부터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온 가족이 출동한 사람들은 저마다 가슴에 번호표를 붙이고 있었다. 물론 이들의 표정에도 낭패감이 보였다. 바람이 이렇게 수평으로 불어와 눈을 뜰 수 없을 정도일 거라고도 생각 못했을 것이다. 동반한 강아지들도 고개를 못 들고 유모차 속에 똬리를 틀고 있는 게 보였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곤돌라가 있다. 일단의 단체들이 모여서 준비 운동을 하는 동안 남편과 함께 한적한 곤돌라에 올랐다. 우리는 곤돌라가 생각보다 오래 올라가서 놀랐고, 그 안이 추워서도 놀랐다. 바람에 따라 약간씩 흔들리는 게 이러다 무슨 사고라도 나는 건 아닌지 걱정도 되었다. 부쩍 말 수가 줄어든 남편은 이쪽저쪽 옮겨 다니며 사진을 찍는 나를 보며 가만히 좀 있으라고 한다. 그렇게 한 참을 올라서 드디어 산 정상에 올랐다. 거기는 지상보다 더 바람이 세고 눈보라도 몰아치고 있다. 올해 첫눈을 건물 안에서만 감상할 수 없던 나는 밖으로 나가 사진도 찍고 비디오도 찍으며 뛰어다녔다. 건물 안 많은 사람들이 동물원 구경하듯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 게 느껴졌다. ‘저 아줌마가 저러다 사고 나지.’ 싶은 얼굴로 말이다. 


바지만 좀 튼튼했으면 더 뛰어다녔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무릎이 시뻘게진 데다 발가락은 동상이라도 걸린 듯 감각이 없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다시 곤돌라를 탔다. 내려오는 길에 반대편에서 올라가는 사람들의 얼굴이 보였다. 아까 번호표를 단 사람들이 곤돌라에 가득 앉아 있었다. 아마도 이 걷기 대회는 올라가는 게 아니라 꼭대기에서 내려오는 대회였나 보다. 이미 정상의 눈보라를 경험한 나로서는 그들의 미래가 보이는 듯했다. 




그렇게 북캉스 1박 2일의 일정이 마감되었다. 다 같이 버스를 타고 정선 시장 근처에서 맛있는 손만둣국도 먹었고, 그냥 돌아오긴 아쉬워 정선 5일장 구경을 하며 마른 나물도 몇 가지 샀다. 얼마 전 책을 출간하신 분의 따끈따끈한 신간도 받았고, 명상 시간에 언급된 힐링 책도 두권이나 받았으며, 그냥 헤어지기 아쉽다는 분이 돌리신 박카스도 한 잔 시원하게 마셨다.




책을 혼자 읽고 덮어 버린다는 것은, 길게 쓴 에세이를 저장하지 않고 지우는 것 같다. 아니면 샤워하고 바디 로션을 빼먹고, 밤고구마를 먹고 물을 안 마시는 것 같다고 할 수도 있겠다. 책을 읽고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면, 같은 느낌을 말하는 사람들을 통해 공감을 얻고, 다른 느낌을 말하는 사람들을 통해 새로운 영감도 얻는다. 


이번 북캉스를 통해, 책을 읽고 그와 연계된 체험까지 하면 더 좋다는 것을 깨달았다. 깊은 가을, 강원도 정선의 변화무쌍한 날씨와 함께 인생의 희로애락을 떠 올렸고, 다양한 사람들을 통해 세상의 다채로움도 느꼈다. 


책과 함께 하는 삶은 얼마나 극적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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