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수영 강사님이 ‘회원님. 정말 수영을 잘하시네요. 즐기는 게 보여요.’라고 말씀하셨다. 너무 뿌듯했다. 평소에도 다른 회원들 앞에서 내 수영을 많이 칭찬해 주셔서 혼자 입꼬리가 씰룩대긴 했지만 애써 점잖은 척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이 기쁨을 어떻게든 표현해야겠다.
내가 만든 우리 집 가훈은 ‘집 안에서만 잘난 척 하기’이다. 밖에서는 겸손하게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천만에요.’ 하더라도 가족끼리는 그 재수 없는 잘난 척을 모두 받아주자고 정한 것이다. 사실 내가 정했으니 내가 제일 잘 활용하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오늘 드디어 칭찬 스티커를 붙일 날이 왔다. 나는 저녁에 퇴근한 남편을 붙잡고 뒤늦게 아침의 칭찬을 전했다. ‘내가 참 수영을 잘해. 어떻게 잘하는지 나도 모르겠어. 그냥 하는 건데 남들이 잘한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스스로를 칭찬하고 났더니 지친 남편이 ‘그래서 좋아?’라고 측은하게 쳐다본다. 이런 반응은 금지다. 잘난 척은 더 치켜세워주어야 한다.
남편이 듣는 주요 칭찬은 외모이다. 얼마 전 딸이 아빠의 젊은 시절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더니 친구들이 모두 놀랐다고 했다. 그런 반응, 나에겐 아주 익숙하다.
남편이 남자 친구였던 시절, 내가 사진을 보여주면 다들 난리였던 것이다. 연예인이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고, 혹시 헤어지면 자기에게 알려 달라며 사진을 지나치게 뚫어지게 들여다보는 친구도 있었다. 둘째 언니 결혼식에 온 남편을 보고 언니 친구들도 난리였지만, 동생 남자친구라고 했더니 많이들 아쉬워했다고 했다.
결혼 후 남편 회사 남자 직원 인기투표에서 일등을 한 적도 있다. 무슨 그런 쓸데없는 짓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면서도 은근 기분 좋은 얼굴이었다. 그다음 해 2등으로 밀렸다고 다소 실망하더니, 일등을 한 직원이 자기보다 한참 어린 미혼이 더라며, 그런 사람이라면 2등도 받아들일 만하다고 잘난 척을 했다.
어느 잡지에 회사 대표로 인터뷰를 한 적도 있다. 사진이 두세 장 같이 실렸는데, 그 사진을 싸이 월드에 올렸더니 우리 회사 사람들이 또 난리가 났다. 사실 겉으로는 다들 칭찬하면서도 뒤따르는 걱정은 매번 같았다. 인물값을 할 거라는 둥, 바람을 피울 거라는 둥 하지만 지금까지 몇 십 년의 결혼 생활을 하면서 나는 그런 걱정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사실 남편은 밖에서 지나치게 예의 바르다. 문제는 그게 밖에서만 이지 집에서는 또 다른 인격이 돌출된다는 데에 있다. 목소리 톤도 바뀌는 데다 어린애 같이 유치해진다. 한 번은 언니들에게 남편의 이중인격을 이야기했는데, 그럴 리가 없다며 믿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남편의 일거수일투족을 나와 함께 지켜보는 딸이 생겼다. 딸도 아빠의 그런 모습을 알고 즐거워하는데, 가만 보니 딸이 또 아빠를 닮아간다. 밖에서는 세상 진지하고 예의 바른 사람처럼 행동하면서 집 문을 들어서면 3살 먹은 어린애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이 둘이 꼭 붙어서 대화하는 걸 들어보면 정말 누가 들을까 걱정되는 내용들이다. 코믹 댄스를 기획해서 같이 추기도 하고, 어린애들이 좋아하는 똥, 방귀 얘기도 좋아한다. 잘 생긴 얼굴을 망가뜨리며 사진 찍기도 즐기고 말이다.
어쨌든 딸도 아빠가 잘생긴 걸 알아서인지, 사람들이 아빠 닮았다고 하면 더 좋아하는 것 같다. 내가 보기엔 80%는 나를 닮은 것 같지만, 딸은 나머지 20%의 닮음을 확인하는 걸 참 좋아한다.
오늘 나의 잘난 척은 수영으로 시작했지만 결국 잘생긴 남편으로 마무리되어 간다. 글쓰기 수업 선생님이 항상 강조하셨던 것이 ‘글을 통해 잘난 척하지 말라’는 것이었는데. 오늘은 새해의 시작글이니 양해해 주시길, 오늘만큼은 부디 인내심을 갖고 읽어 주시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