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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미젤리 Jan 12. 2024

50일의 연애

 딸이 남자친구가 생겼다. 같은 과 동기에게 먼저 다가갔고 다행히 상대방이 그걸 받아주었다고 했다. 딸의 들뜬 마음과 달리 우리 부부는 왠지 맘이 착잡해졌다. 볼 가득 분유 먹고 ‘쿠르릉’ 트림하던 아기 때 모습이 선한데, 어느새 커서 ‘사랑’이라니, 빨라도 너무 빠른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남자 친구의 호구 조사를 하고 종교, 취미는 물론 외모까지 꼬치꼬치 캐묻기 시작했다. 묻는 대로 대답하던 딸이 점점 내 질문이 호기심이 아닌 꼬투리 찾기가 목적이라는 것을 깨닫더니 그만 물어보라고 화를 냈다. 옆에서 귀만 열고 있던 남편은 궁금한 게 한 바가지인 듯했지만 애써 참는 거 같았다. 차라리 나처럼 꼬치꼬치 캐묻는 게 낫지, 남편은 그날부터 밤잠을 설치며 심란해했다.


 이런 엄마 아빠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딸은 한동안 ‘오빠, 오빠’ 이야기로 온 세상을 가득 채웠다. 하지만 한창 좋아야 할 시기에 한 두 가지 불만들이 벌써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그중 가장 큰 건 시험 기간 동안 얼굴을 볼 수 없다는 거였다. 공부에 진심인 남학생인 것 같은데, 그래도 그렇지 시험 3주 전부터 만남이 뜸하고 카톡 연락도 너무 느리다고 했다.


 가만히 듣고 있자니 내가 화가 났다. 남의 집 아들은 저렇게 열심히 공부하는데 우리 집 딸은 뭘 하고 있는 거냐고 물었다.  딸은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며 내 말을 자르더니, 자기도 같이 공부하자고 했지만 거절당했다고 했다. 같이 있으면 집중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말이다. 정말 올곧은 청년이었다.


 결국 이들의 사랑은 50일 만에 끝났다. D day를 세어 가며 첫 번째 기념일이라고 좋아하더니 바로 그 50일 되는 날 헤어지게 되었다. 이별의 주된 이유는 종교였다. 남자친구의 어머니가 비종교인을 사귀는 걸 반대하셨던 것 같다. 자신의 아들에게 1년 안에 우리 딸에게 신앙이 생기지 않으면 헤어지는 게 좋겠다고 하셨다는 것이다. 그동안 기꺼이 교회에 따라나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던 딸이지만, ‘1년’이라는 D-day 에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했다. 먼저 좋아했다는 이유로 끌려다니고 맞춰주기만 했던 걸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호기롭게 이별을 외치고 집에 돌아왔지만 며칠 동안 이랬다 저랬다 난리가 났다. 로미오와 줄리엣인 줄 아는 건지, 사랑하는데 왜 헤어져야 하는 거냐고 물었다.


‘다시 시작하자고 해야겠어.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야지.’ 그러다가도,


‘자기에게 맞추라고만 하고 나를 존중해주지 않았어. 다시 만난다 해도 똑같은 갈등이 생길 거야.’ 단호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새벽까지 친구들과 전화하며 울고 웃고 떠들더니 이제 차츰 제모습을 찾아가는 것 같다.

 

얼마 전엔 나보고 어떻게 하면 결혼할 생각이 들 정도로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거냐고 물었다. 한 마디로 대답하기는 쉽지 않았다. 첫 남자친구였던 남편과 결혼해 지금까지 살고 있으니 무언가 파란만장한 사랑 이야기를 들려줄 것도 없었다. 그냥 네 내면을 가꾸고 성숙해 가다 보면 비슷한 사람을 만나게 될 날이 올 거라는 교과서적인 말이 나왔다. 딸이 아빠와 내가 전혀 비슷하지 않다고 반박했다. 맞는 말이다. 우리 부부는 모든 게 다 같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중요한 부분에 있어서는 비슷한 성향이 있고, 이런 점들을 보충하고 나누는 것이 사랑일 것 같다.


 모두의 사랑이 그 이유도 전개도 결말도 다 다른데 하나의 이론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그러니 수많은 노래와 드라마와 영화가 다 ‘사랑, 사랑’ 하지 않겠는가?




 오늘은 풀 죽어 있는 딸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평소 안 하던 입에 발린 칭찬과 전 남친에 대한 욕을 남발해 주었다.


‘너 같은 보물을 못 알아본 그 남자가 눈이 삔 거다. 어디 가서 너 같은 애를 만나겠니? 너도 이번 일을 통해 어떤 사람을 사랑해야 하는지 좀 배웠을 거야. 하지만 적어도 외모는 좀 봐라. 너 전 남친 못 생겼더라. 난 네 아빠 얼굴 보고 만났다.’


 일 년의 기한으로 두 아이를 헤어지게 만든 전 남자 친구 어머니,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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