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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미젤리 Jan 23. 2024

다정한 이웃

 몇 년 전 윗집이 대대적 공사를 하는가 싶더니 새로운 가족이 이사를 왔다. 떡을 돌렸는지, 인사를 왔는지는 기억이 없다. 다만 어느 날부터 쿵쿵대는 층간 소음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코로나로 모두 집순이 집돌이가  되었던 시절, 아직 고등학생이었던 딸도 집에서 공부 중이다 보니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무작정 올라가 따지는 건 좀 망설여졌다. 이웃들에게 성격 나쁜 사람으로 낙인찍히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딸이 초등학교 때 생일파티를 집에서 한 적이 있다. 1학년 아이들이 20명쯤 참석한다고 했으니 그 혼란이 충분히 예상되는 일이었다. 나는 아랫집들과 옆집에 찾아가 일일이 상황을 설명했다. 다행히 모두 평일 낮 두 시간 정도는 충분히 참을만하다며 흔쾌히 받아들여 주셨다. 게다가 바로 아랫집은 낮에 사람이 없으니 마음껏 뛰놀라고까지 말씀해 주셨다.


 그때의 이웃들의 친절 때문에 윗집에 항의해 볼 생각을 못했다. 하지만 딸이 도저히 공부가 안 된다고 징징대고 천장 등이 흔들거리기까지 하는 지경에 이르니, 일단 어느 집에서 울리는 소음인지 확인만이라도 하기로 했다.


 쿵쿵 소리가 심해진 시간, 딸의 응원을 받으며 득달같이 달려 올라갔다. 스파이 마냥 복도에서 서성이며 어느 집인지 귀를 기울이고 있는데, 우리 윗집 문 안에서 아이가 소리 지르며 뛰는 소리가 들렸다. 이 집이구나 확인하며 전의를 불사르던 순간, 엘리베이터가 열리며 그 집 젊은 엄마가 나타났다.

  

‘누구시죠?’ 


 도둑질을 하다 걸린 마냥 얼마나 놀랐는지,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 아랫집에서 왔는데요. 뛰는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서 확인하려고요.’ 


쭈삣대며 말하는데, 젊은 엄마는 당당했다.


 ‘네, 저희 집 아이가 맞아요. 그동안 말씀이 없으셔서 층간 소음이 없는 집인 줄 알았어요.’


그러면서 자기 집 현관을 여는데, 안에서 남자애 둘이 축구공을 들고 헉헉 숨을 고르는 게 보였다. ‘요놈들이구나. 잘 잡았다.’ 싶은 마음도 잠시, 젊은 엄마가 아이들을 부르더니 나에게 인사를 시켰다. 친구가 놀러 와서 같이 논 거 같은데, 앞으로 주의하겠다는 말도 덧붙이고 말이다.


이렇게 화통한 사람이 다 있구나.’ 싶었다. 며칠째 끙끙댔던 게 미안할 정도로 깨끗이 인정하는 모습에 미안한 마음까지 들 정도였다. 어쨌든 좋게 마무리 짓고 싶은 마음에 초콜릿 한 상자를 문 앞에 걸어두고 왔다.


 ‘요즘 애들이 학교를 안 가다 보니 집에서 시끄럽게 할 수 있다는 건 이해합니다. 하지만 우리 딸이 고등학생이고 집에서 공부하다 보니 조금만 양해해 주세요.’


라는 쪽지와 함께 말이다.


 그리고 다음 날 저녁, 조그만 신사 한 명이 꽃을 한 아름 안고 우리 집을 찾아왔다. 윗집 초등3학년 꼬마였다. 그동안 시끄럽게 해서 죄송하다며 90도로 인사하더니 나에게 꽃다발을 건넸다. 보통 아이들은 엄마가 이런 걸 시켜도 안 할 텐데, 똑 부러진 젊은 엄마의 똘똘이 아들이었다. 기쁜 마음으로 꽃을 받고, 나도 갑자기 찾아가서 미안했다고 저절로 사과가 나왔다.


 이후로도 아이는 길에서 만나면 반갑게 인사하고, 엄마 심부름이라며 대봉감이나 귤을 접시 가득 가져오기도 했다. 어느새 키도 훌쩍 커 이제 중학교에 들어가는데 그 싹싹함은 여전하다. 젊은 엄마의 화통함도 마찬가지다. 윗집에 누수가 생겨 천장에 곰팡이가 피었을 때도, 군소리 없이 바로 처리해 주었고 가끔 문자로 천장 상태가 괜찮은지 물어봐주기까지 했다.




 내가 저 나이였을 때, 이웃들에게 얼마나 친절했는지 자문해 본다. 직장 다니느라 바쁘다는 핑계로 반상회 한 번을 안 갔고,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도 눈길 한 번 안 줬던 것 같다. 이 집에 이사 온 지 14 년째, 알면 알수록 이웃들이 참 다정하다. 명절마다 선물을 나눠 주시는 앞집, 들어온 선물 먹을 사람이 없어 나누는 것뿐이라고 아무것도 사 오지 말라고 당부하시는 모습에 미안하기까지 하다. 주차하다 실수로 우리 차를 박았다며 몸 둘 바를 몰라하시던 1층 이웃분도 감사하다. 남편이 차를 보더니 말 안 하고 넘어갔어도 몰랐을 것이라 했는데, 굳이 선물을 두고 가셨다. 우리 딸이 집 앞에서 자기가 보던 책, 비디오를 팔았을 때, 손녀에게 주시겠다며 모두 사가셨던 아랫집 할머니도 감사하다.  




다정한 이웃들은 나의 행운이지만 나 자신을 돌아보라는 공부이기도 하다. 젊은 날 놓친 나의 인색함, 이제라도 알아챘으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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