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인데 느닷없이 남편이 휴가란다. 별다른 취미가 없는 남편은 내가 억지로 끌어내면 좀 다닐까, 회사에 안 나가는 날은 낮잠이나 TV 시청으로 하루를 보내기 일쑤다. 하지만 오전에 오시는 요양 보호사님에게 방해가 될까 걱정되는지 어디든 나가자고 한다.
나로 말하면 매주 하루하루가 정해진 일정으로 꽉 짜인 사람이다. 아침마다 수영을 하고 동네 문화센터에서 하는 통기타와 글쓰기 수업을 들으며, 한 달 6개의 독서 클럽에 참여하기 위해 틈틈이 책도 읽어줘야 한다. 바로 오늘 월요일 오후는 기타 수업이 있는 날이고, 그중에서도 나훈아의 ‘테스형’을 마무리하는 날이었다. 오늘 빠지면 나의 ‘테스형’은 영원히 반쪽짜리로 남을 운명이었다.
남편에게 혼자 가라고 했더니 딸 학교 앞 카페에서 책을 읽겠다고 했다. 얼마 전 내 친구가 자기 동생이 쓴 책을 하나 줬는데 그게 나름 재미있었나 보다. 그럴 거면 그냥 집 앞에서 읽으면 되지 뭐 하러 학교까지 가냐고 했지만, 전망 좋은 카페를 알아 놨다고 자신만만했다. 나 보고도 수영 끝나고 그 카페로 오라며 기타는 한 번 빠져도 되지 않냐고 유혹했다.
‘테스형’이냐 남편이냐, 그것이 문제였다.
하지만 내키지 않는 발걸음으로 남편을 따라나서는 게 나의 운명이리라. 남편은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책을 끼고 몇 시간씩 카페에 있을 사람이 아니었다. 아마도 커피만 마시면 벌떡 일어나 나가자고 할 게 뻔했다.
오늘따라 날은 귀 빠지게 춥고, 눈바람까지 날리는 최악의 상황, 운전하기 싫다며 차도 안 가지고 나섰으니 속에서 구시렁 소리가 안 나올 수 없었다.
어쨌든 41층 카페는 정말 전망이 끝내줬다. 넓디넓은 호수가 한눈에 들어오니 가슴이 탁 트이는 느낌도 들었다. 하지만 아침부터 사람이 정말 많았고, 시간이 지날수록 통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이 거슬렸다. 밖은 영하 십몇 도라지만 안에서는 쪄 죽을 판이었다. 결국 한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밖으로 나왔다.
슬슬 눈치를 보는 남편이 가방을 들어주겠다며 잡아 끄는데, 손을 주머니에서 꺼내기 싫었던 나는 더 화가 치밀었다. 30여 년 전, 도대체 이 취미도 특기도 없는 심심한 남자를 내가 왜 만나고 있는 건가 고민할 때, 술 한잔 한 남편이 나에게 사과했다.
‘내가 너무 재미없어서 미안해.’
그때 이성적으로 좀 생각했어야 했는데, 나는 같이 취미를 찾아보자고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마무리했다.
그날의 긍정의 힘에 책임지기 위해서라도 오늘은 그냥 이렇게 하루를 보내야 한다. 이러고 집에 돌아가면 낮잠이나 잘 게 뻔하지만, 몇 십 년 겪어 온 일이니 그냥 나는 옆에서 책이나 읽어야겠다. 그나마 내가 독서를 취미로 가지고 있어, 취미 없는 남편과도 이렇게 산다.
혹시 독서가 취미신 분들, 나처럼 남편이 심심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