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 락다운이 끼니에 미치는 영향

한 끼는 소중하고 위대하다

by 이츠심

21년 7월 29일 목요일

하루종일 맑을 것 같은 얼굴이었는데 금세 뿌옇게 우울해졌다. 심지어 세차게 눈물도 흘리더라. 날씨도 우리처럼 힘든가보다.


답답하고 지루한 마음이 자주 들어서일까? 창가 앞을 서성이는 횟수가 부쩍 늘었다. 투명한 유리창을 통해 바라본 바깥세상은 먹먹하게 고요하고 깨끗하게 한적하다. 이 도시는 잠시 잠들어 버린 것인지, 멈춰 버린 것인지. 적막함이 깨질 생각이 없어 보인다.


거리의 수많은 오토바이들이 하루 사이에 반 넘게 줄어들었다. 오토바이의 나라에서 오토바이가 귀해질 줄이야. 예상하지 못한 하노이의 락다운에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지만 어찌 지내다 보니 5일이 지났다. 10일 남았다. 하루가 3시간 정도 늘어 27시간을 살고 있는 것 같고, 고장 난 시계의 시간처럼 점점 더디게 가는 느낌이 짙어진다. 괜히 그런 기분이 든다. 괜히 그렇다. 하루가 이리도 길었냐는 의문은 자꾸만 새어 나온다.



락다운으로 인해 가장 큰 변화는 배달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배달 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하던 사람들에겐 아주 난처하고 곤란한, 절망적인 상황으로 집에서 직접 요리를 해야만 굶주린 배를 달랠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이 당연하게 요리를 잘하면 좋겠지만 당연하게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다. 단정 지을 순 없지만 그러한 사람들을 의도치 않게 마트에서 종종 발견한다. 김치와 라면, 즉석밥, 참치 통조림, 김만 잔뜩 사가는 이들은 아마 요리와 거리가 먼 사람들일 것이다. 인스턴트만 가득 담긴 건조한 장바구니가 자꾸만 눈에 밟힌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아무도 알지 못하도록 나지막하게 그들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한다.


나 또한 배달이 불가능해지자 오늘은 뭐 먹지, 내일은 뭐 먹나 하루 종일 깊은 고민에 빠졌다. 고민한 지 3일째가 되던 날, 내내 같은 고민에 지칠 대로 지쳐 결국 일주일치 식단을 짰다. 단지 한 주의 식사 메뉴를 정한 것일 뿐인데 이까짓게 뭐라고 마음이 홀가분하고 편했다. 이래서 계획을 세우며 살아야 하나보다. 이 시점에 새삼스레 깨닫게 된 계획의 중요성은 피식피식 웃음으로 이어졌다.




먹고사는 일은 너무나도 당연하나 생각보다 중요하고, 그러나 생각 이상으로 쉽지 않다. 하루 두 끼씩 10번의 식사를 꼬박 차려 내고 나니 엄마 생각이 간절했다. 매일 다른 메뉴로 맛있는 밥상을 차려주셨던 엄마는 빛이 나도록 대단한 사람이었고, 당연하게 느껴질 수 있는 이 행위는 생각보다 많은 고뇌와 정성이 들어가는 힘든 일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한 끼는 위대했다.


이런 시대가 올 것을 미리 본능적으로 대비했던 것일까?

어릴 적부터 엄마와 아빠가 주방에서 요리를 할 때면 쫄래쫄래 다가가 어깨너머 흥미로이 구경했다. 본능적인 어깨너머 덕분에 20살이 되어 독립을 하게 되었을 때, 눈과 머리에 고이 담아두었던 부모님의 어깨너머 레시피를 흉내 내며 적당히 먹고 살 정도는 되었다. 쓸모없는 경험은 하나도 없더니 정말 그렇다. 사랑하는 이들이 만든 한 끼 한 끼의 밥상이 나의 한 끼를 만들어냈다. 함께 만들어낸 한 끼여서일까? 입과 마음이 흠뻑 즐겁다.



하노이의 락다운 덕분에 요리 실력은 제법 늘었고 나름 두터운 관계가 되었다. 코로나가 나를 집순이로 만들었다면 락다운은 집순이를 밥순이로 만들었다. 나는 집순이이자 밥순이다. 신선하고 든든한 식재료들과 랜선 속 요리 고수들의 레시피 그리고 맛있는 한 끼에 대한 애정 어린 의지로 오늘도 맛있는 한 끼를 뚝딱 해냈다. 잘했다, 잘하고 있다.


익숙하고 친숙했던 일상과 서먹하게 지낸 지 5일째다. 어색하고 서투르지만 그럭저럭 지낼만한 하루이며 이래저래 느끼는 바가 많은 나날들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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