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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츠심 Oct 24. 2021

늦었지만 고마워 그리고 미안했어

나를 가장 많이 좋아해준 S 이야기

내가 그에 대해서 글을 쓰는 날이 올 줄 몰랐다. 아마 S가 이 글을 읽었다면 놀라지 않았을까, 내심 좋아했을지도 모르겠다. S와 나도 참 오랜 인연이다. 20살 때 알게 되었으니 벌써 십 년이 지났다. 한 때는 그 누구보다 가까웠지만 한 때는 다시는 안 볼 것처럼 멀어졌다. 그리고 다시 가까워졌다가 다시 멀어졌다.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사이었다. 그의 곁에서 멀어진 건 항상 나였다. 일방적으로 항상 그를 떠났다.


우리는 이십 대 초반에 함께 시간을 보냈다. 너무 오래된 일이라 흐릿하지만 1년이 채 되지 않은 시간으로 기억된다. S는 큰 키에 까무잡잡한 피부, 늘씬한 멋들어진 체형을 지녔고 쌍꺼풀은 없지만 긴 눈을 가지고 있었다. 얇고 긴 손가락에 상처가 잦았지만 섬섬옥수 그 자체였다. 아마 그때부터 누군가의 손을 카메라로 찍는 것을 좋아했던 것 같다. 간드러진 손가락은 아주 예쁜 피사체가 된다. 내가 나열한 내용만 보면 현실에 몇 없는 연예인 같은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 정도는 아니다. 평균 이상의 사람은 맞으나 아주 조금 평균 이상의 사람이다. 이 문장을 읽은 그는 어이없다는 듯이 피식 웃겠지.



S는 자상하고 섬세한 성격의 소유자로 나에게 참 잘해줬다. 내가 원하는 것을 모두 해줬다고 말할 순 없지만 그가 가능한 선에선 최선을 다해해 줬다. 누가 봐도 그는 나에게 푹 빠진 사람이었고 나를 좋아했다. 그것도 아주 열렬하게.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 시절 나는 그의 마음이 부담스러웠다. 누군가에게 격렬히 사랑받는다는 일이 익숙하지도 않을뿐더러 내가 그럴 자격이 있나 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받는 사랑에 익숙하지 않았다. 사랑을 받을 줄 몰랐던 거지. 지금 생각하니 참 복에 겨운 소리다. 그땐 내가 어려서 몰랐다. 이 말을 정말 싫어하는데 어려서 몰랐던 게 맞다. 그가 베풀었던 애정이 흔하다고 생각했다. 내 인생에 잇따라 자주 있을 거라 생각했다. 어려서 몰랐던 거지, 그런 사랑은 흔하지 않다는 것을. 이 사실을 10년이 지나고 깨달았다.

그 시절 나는 내 마음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참 모질게 대했다. S에게 많은 상처를 줬다. 그를 미워하기도 했고 싫어하기도 했다. 그렇게 까지 할 일인가 싶지만 그랬었다 나는. 내 마음의 불편함을 차가운 말과 행동으로 표현했다. 많은 사람과 만나고 헤어졌지만 유독 그가 내 마음 한 구석에 자꾸만 남는 건 나에 대한 그의 사랑은 아주 절절했고 나는 잔인할 만큼 모질었기 때문이다. 내 인생에서 나를 가장 많이 사랑해준 사람임과 동시에 내가 상처를 가장 많이 준 사람은 그가 아닐까 생각된다.



나는 S의 사랑이 부담스러워 그를 떠났다. 누군가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다는 일은 분명 행복한 일이지만 그 사랑에 대한 보상은 필요하다. 언젠가는 그 사랑을 똑같이 돌려줘야 할 것 같다는 부담감이 생긴다. 그가 돌려받을 생각으로 준 게 아니라고 한 들 나는 똑같이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의 사랑이 더 무거웠다.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지는 거란다. S는 나에게 진 거다. 근데 꼭 이기고 지고 해야 하나? 적당히 비슷하게 마음을 주고받으면 승자도, 패자도 없는데 그건 어려운 일일까? 같은 마음의 무게로 사랑할 수 없는 것인지 항상 생각했다.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그런 사랑을 원했지만 그의 사랑은 늘 과하도록 넘쳐흘렀다.



S를 떠나 잊고 지냈다. 그 시절 그는 나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지 않았기에 기억을 되뇌는 일은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나는 이십 대 후반이 되었다. 스물여덟 번째 생일을 맞던 해에 생각지도 못한 메시지를 받았다. 그에게서 생일 축하 메시지가 왔다. 기분이 묘했다. 답장을 할까 말까 고민했다. 모질게 대했던 내 행동에 대한 부끄러움과 그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의 기억이 자꾸만 맴돌아 마음이 복잡했지만 고맙다고 답장을 했다. 고마운 건 사실이고 내 진짜 감정이니까. 그 답장을 시작으로 서로의 안부를 묻게 되었고 만남을 기약하게 되었다. 그에 대한 나쁜 기억들이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에 대한 감정은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시간이 해결해준 것인가? 역시 시간은 생각 이상으로 많은 것을 해결해준다.


몇 년 만에 만난 S는 내 기억 속의 모습과 같았으며 성숙한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는 아무렇지 않은 척 담백하게 말과 행동을 이어 나갔지만 그의 눈동자는 복잡한 마음을 담고 있었다. 그 까만 눈동자에 담긴 근심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나는 S의 마음을 부정하지 않기로 했다. 오랜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그의 마음을 존중하기로 했다. 나의 어떠한 행동도 그의 마음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말이다. S의 주는 사랑을 그대로 존중하기로 했다. 이후 잘 지냈다 우리는.


하지만 결국 나는 또 S를 떠나게 되었다. 이번엔 정말 정말 떠나고 싶진 않았다. 정말로. S의 사랑이 우정으로 바뀌길 바랬다. 사랑과 우정은 비슷한 마음이니까 바뀔 수 있지 않을까 작은 희망을 걸었던 것이지. 내가 뭐라고 사람 마음을 이렇게 저렇게 바뀌길 바라나, 여전히 나는 나쁘네. 나의 가치를 잘 알아봐 주고 늘 항상 나를 응원해주는 사람, 내 눈빛과 표정만 봐도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는 사람. 같이 있으면 재밌고 편해서 나를 내려놓게 되는 사람. 내가 어떻게 보일지 신경 쓰지 않은 채 온전한 나를 보여줄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을 친구로 두고 싶은 건 누구나 같은 마음일 것이다. 이기적인 생각이지만 그렇다. 인생을 통틀어 놓치고 싶은 사람이 아니었던 거지. 내 마음과는 다르게 그의 사랑은 여전히 사랑으로 남아있었다. S의 사랑은 우정으로 바뀔 리가 없어 보인다.



아마 우리의 이야기는 이렇게 끝난 것 같다.

그들은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다가 결국 각자의 길을 가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영원히 멀어졌어요. 둘은 서로의 자리에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동안 벅찬 관심과 과분한 사랑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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